시가 뭔데?
시는 어렵다. 열두 살에 처음으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었다. 그날 선생님은 칠판 시간표 뒤에 겹쳐진 화이트보드를 쓱 당겨서 꺼냈다. 화이트보드에는 시가 예쁜 손글씨로 또박또박 적혀있었다. 여자애들은 글씨를 욕망하는 눈을 반짝거렸고, 남자애들은 선생님의 슬리퍼 굽높이를 보며 쪽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교탁 위에 놓인 선착순 막대사탕 다섯 개를 흘깃 보며 종합장에 시를 베꼈다.
시에 두 갈래 길이 나온다. 남자 화장실로 들어갈 거 같은 프로스트 씨는 몸이 하나라서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사람이 덜 지나간 길을 선택했다. 시라기엔 너무 길어서 펜을 쥔 손이 저렸다. 시에 그림도 그려야 해서 아침에 다녀온 학교 뒷길을 떠올렸다. 모래가 깔린 넓은 길과 구불구불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 오솔길에 어제 본 청설모도 그렸다.
까놓고 말하면 프로스트 씨는 바보다. 어디로 갈지 선택하지 못한다니, 몸이 둘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꿈으로 괴로워한다. 프로스트 씨는 욕심쟁이가 틀림없다. 나중에 다른 길을 가면 되는데, 나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로 했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에 또 오기 힘든가보다.
어쨌든 프로스트 씨는 천하태평한 시인이라서(아마도 부자?) 산책로나 고민하는구나. 시가 뭔지 모르지만 나는 이 외국인의 소소한 고민을 덕분에 막대사탕을 하나 더 받을 수 있었다. 왜 윤동주 씨는 별을 보다가 엉엉 우는지, 프로스트 씨가 산책로에서 쓸모없는 고민을 하는지 상관없었다. 그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2반, 너희는 어느 쪽으로 가고 싶니?”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시는 얼핏 알 것 같은데 아리송한 친구다. 엠비티아이로 치자면 아이(I)로 시작하는 내향인이다. 우리는 엄청나게 친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금 어색한 사이로 몇 가지 오해를 갖고 서로를 어려워하다 그저 그렇게 남을 것만 같다.
프로스트와 다르게 나는 주로 넓은 대로를 선택했다. 큰 길만 연속해서 선택하면 평탄하고 안전한 마음만 들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몽글몽글한 감정이 찾아온다. 아프면 아프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시인은 참 강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세상의 슬픈 조각을 가장 빠르게 알아차린다.
카페에 앉아서 생각해보니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쓸수록 좋은 장소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효율적이지 않은 것에 관심이 많아진다. 시를 지어야 살아지는 이의 영혼이 얼마나 맑은지 감히 상상한다. 나보다 강한 마음을 가진 시인의 위로가 필요하다. 자꾸자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