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비싼 거
취업 준비를 하다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성수동 카페거리의 인스타에서 핫한 카페. 자리가 부족해서 골목까지 나와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멀리서 보였다.
친구와 들린 에코백과 보세 옷을 파는 이층 매장. 거긴 2호선 라인에서 월세 70인 방보다 약간 컸고, 유명 브랜드의 손바닥만 한 에코백 팔 만원에 팔았다. (정말 휴대폰보다 약간 큰 사이즈였다).
순식간에 구경하고 나가려는데, 작은 진열대에 비즈반지가 눈에 든다. 비즈반지가 담긴 바구니 위에는 포스트잇 종이에 검은 매직으로 구천 원이란다. 무지개 사탕처럼 알록달록한 반지와 화이트 비즈를 베이스로 한 금색의 우아한 반지가 있었다. 그걸 보는데 조금 심란하다. 동시에 불필요한 소비라는 이성이 전전두피질 어딘가를 팍팍 후려친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점심을 걸렀다. 왜 아까 하필 지에스 편의점에서 천삼백 원짜리 삼각김밥을 사 먹었는지. 커플링도 아니고 바비인형 머리끈처럼 생긴 게 진심으로 필요해? 구천 원이면 버거킹 세트메뉴야.
평소에 반지 따위 끼지도 않았으면서 꼼꼼하게도 봤다. 이 비즈알이 더 큰가 저 알이 더 큰가. 혹시 사이즈가 다른 반지가 있나. 이쯤 지났으면 예리한 눈으로 예상치 못한 커다란 단점을 발견해야 한다. 아니면 무의식에 있는 그저 그런 호기심이 충족되길 바랐는데. 책 읽을 때, 공부할 때, 일을 할 때, 손가락을 살짝살짝 쳐다보면 기분 좋겠지?
몇 달 전에 아는 언니를 따라 얼떨결에 했던 네일 아트가 떠올랐다. 이제는 그런 거 안 한다. 매달 오만 원을 적금으로 넣으면서 육만 원이 넘는 젤네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비즈반지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합리화를 하는 사이에, 네 명이 계산대를 지나갔다. 고작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돼? 가슴뼈 중앙에서 뜨겁게 끓는 덩어리가 올라온다. 그래서 구천 원짜리 비즈반지를 산거다.
반지를 사고 층계가 높은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마음이 묘하게 울렁인다. 친구는 팔만 원짜리 에코백을 들고 거울 앞에 섰다 멀뚱히 쳐다보더니 비즈반지를 계산하며 말했다. “이 줄 갑자기 팍 하고 끊어지면 만원도 휙 날아가는 거야.” 깔깔 웃는 우리의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힘이 빠졌다.
오기 전에 봐 둔 카페는 앉을자리가 없어서 근처에 한적한 애견 동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아아를 마시며 고등학교 때 몇 반 걔, 대학 동기 누구, 요즘 만나는 그 사람을 슉슉 넘나드는 얘기를 하는데, 커피를 든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다. 왼손 검지에 끼웠던 반지를 어색하게 엄지로 살짝 굴리자 그새 눌린 비즈알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집에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어학연수를 할 때 알고 지내던 외국에 있는 친구다. 잘 지내냐, 보고 싶다는 말에 나도!라고 허공에 뜬 대답을 했다. 2호선 창밖으로 보이는 분홍빛 노을은 태평하다.
검지에 낀 비즈반지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구천 원에 줄어든 마음, 천삼백 원짜리 점심, 사천 오백 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한강 창밖을 둥둥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