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이를 힘들게 하고있는지도 모른다
내 배로 낳은 아이지만,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거나 하루 종일 아른아른하게 그리운 마음이 넘쳐흐르진 않는다.
가끔은 그런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뉴스에 나오는 ‘모성’이라는 단어, SNS 속 육아일기들이 말하는 ‘사랑스러움’은 내 모습과 너무 달랐다.
남편은 다르다.
아이를 볼 때마다 눈빛이 달라진다.
그 모습이 참 다정하고 고맙지만, 어쩐지 나를 더 작게 만든다.
나는 그 정도로 아이를 매일 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두었을 때, 훨씬 숨이 쉬어지고 관계도 덜 날카로워진다.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학업’에는 집착했다.
아이의 영어유치원 성과, 단어 테스트 결과, 수학 진도표.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을 무겁게도 하고, 묘하게 만족스럽게도 했다.
사실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안엔 내 불안과 조급함이 더 많이 들어 있었다.
나는 안다.
이 아이가 영재는 아니라는 걸.
수십 권의 영재 육아서를 읽으면서도, 내 아이는 그 기준에 닿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어쩌면, '비스무리하게라도' 닿았으면 하는 욕심이 자꾸 생긴다.
선행학습, 진도 계획, 오늘 풀 문제집의 장 수.
멀리 보이는 미래와 오늘 해야 할 체크리스트 사이에서
나는 매일 머릿속이 복잡하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이의 놀이는 아이의 전부라고.
놀이가 곧 발달이고, 놀이가 곧 배움이라고.
그런데 나에겐 그 말이 그리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정서적 교감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더 안심되는 나는,
결국 불안 속에서 공부를 고집한다.
그리고, 그 불안은 어김없이 아이와 부딪힌다.
어제, 아이가 수학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또 다그쳤다.
그러자 아이가 울면서 외쳤다.
“엄마, 내가 사랑하게 해줘.”
심장이 내려앉았다.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눈물이 나려 했다.
그 작은 입으로 꺼낸 말이, 나의 집착과 사랑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엄마가 미워져?”
하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아이에게 사랑으로 내민 손이, 아이에게는 벅찬 무게였다는 걸.
아이와 나 사이엔 분명 거리가 있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미안해진다.
나는 그 사이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매일 균형을 잡고 있다.
사실은, 나도 처음 엄마가 되어본다.
누군가 가르쳐준 적도 없고, 마음처럼 되지도 않는다.
하루하루가 낯설고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와 잘 지내고 싶다.
조금은 느슨하게,
조금은 단단하게,
내가 버틸 수 있는 방식으로 아이 곁에 있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흔들림들이 우리 사이를 단단하게 이어주는 따뜻한 다리가 되어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