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의 평화를 찾아 몽골 - 열린의사회와 함께한 몽골 의료봉사기(7)
이렇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일 수 있게 한 힘은 무엇일까? 한 번도 본 적 없고 볼일 없을 듯한 사람들이 모여 같은 목적의 일을 한다. 경쟁 속에 내몰린 사람들, 삶이 피로한 사람들, 그런 사회의 일원으로 살 때가 있다. 그 속에서 나를 찾고 평화를 찾고 행복을 찾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은 노력을 한다. 혼자가 될 수도 있고 함께가 될 수도 있다.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뜻을 모은 사람들의 연대에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곁에 있어야 해. 넌 내 곁에 있으면 안 되겠니?’ 이런 고백이 퍽 어울린다.
어쩌면 나는 위의 고백 뒷부분만 하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넌 내 곁에 있으면 안 되겠니?’ 누군가의 곁에 있어야만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는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내 곁에서 아파하면 누군가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마음은 어느 순간 조금씩 비워지고 있는데 몸은 여전히 그 옆에서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떠나는 것은 늘 힘든 일이지만 마음이 떠난 자리에 몸을 두는 일은 더 힘든 일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는 빨리 떠나는 연습을 했다. 내 안에는 ‘그의 곁에 있어야 한다.’라는 연민의 마음이 자리하지 못한 탓이다.
내 개인의 마음이 연민이라면, 사회적 마음은 ‘연대’가 아닐까? 피하고 도망치고 방관하는 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같이 해야 하는 일이다. 누군가가 나의 손을 잡고 나는 또 다른 이의 손을 잡는 일처럼. 손과 손을 잡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면 연민이 연대가 되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의미 있는 일’ 열린의사회의 처음을 이렇게 말해 준 사람은 사무국의 김종현실장이다. 의료봉사 기간 내내 인솔자로서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의료봉사를 무사히 마치고 적십자 캠프의 만찬 자리에 앉은 그는 조금 여유로워 보였다. 만찬 중에도 무리의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행여나 놓쳤을 마음자리를 다독이는 모습 또한 믿음을 줬다. 편안한 얼굴로 우리 자리에 앉은 그는 열린의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열린의사회는 1997년에 창설되었다. 의학 기자였던 현 이사장이 병원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계획적이고 의미 있는 일에 쓰자며 사단법인 ‘열린의사회’를 만들었고 국내는 물론 해외 의료봉사까지 시작했다고 한다. 1997년 첫 해외 의료 봉사지는 몽골이었다. 몽골은 1992년까지 사회주의 국가였고 1996년이 되어서야 총선을 거쳐 대통령을 선출한 나라이다. 그런 나라의 개방화 정책에 맞추어 의료봉사를 온 것이다. 이는 매우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해외에 나가 자원봉사를 한다는 생각에 상기되어 있는 우리에게 운영팀은 이런 안내문을 나누어주었다.
“감성적 자원봉사는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도 하지 말고 너무 많은 요구에 응하지도 말라. 반드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활동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과 자만은 봉사활동 자체에 대한 실망과 회의를 줄 수 있다.”
누군가의 곁을 빨리 떠나는 연습을 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하는 마음과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 적어도 내가 해준 만큼은 나에게 주어야 한다는 마음. 그 사이에서 방황하다 결국은 감정에 지쳐간다. 도움은 모든 것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같이 길을 걸어 주는 것이면 좋다. 상대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의 끈을 조금씩 건져 당겨주는 일.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고 각자가 들고 있는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 그래야 내 불씨가 꺼지는 순간 불씨를 빌려 붙일 수 있다.
열린의사회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사회적 신분으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라는 가치를 목적으로 한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내국인과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국내 봉사와 저개발국가의 보건의료지원을 위한 해외 의료봉사, 아동·청소년을 위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기회가 주어졌고, 몽골이어서 갔고, 봉사라는 의미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서 환자를 차별하지 않는 아름다운 의사를 만났고,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봉사자들을 만났다. 나서지 않으면서 묵묵히 잔일을 처리하는 운영팀의 구슬땀과 몽골 현지 자원봉사자의 따뜻함을 마주했다.
‘나는 그의 곁에 있어야 해’ 이런 마음자리 하나 비워두면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그래야 ‘넌 내 곁에 있어 줘’가 가능해 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