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게 말걸기 - 열린의사회와 함께 한 몽골 의료봉사기(9)
국내에서 간 의료봉사자의 수만큼 몽골 현지의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행정적인 일은 몽골 적십자사에서 맡았고 의료통역은 대부분 한국어에 능통한 젊은 친구들이 해줬다. 그들 대부분은 한국어를 현지어처럼 구사했고 외모에 억양까지 비슷해 마치 한국인 같았다. 의료통역은 전문통역이기도 하다. 환자의 몸상태 뿐만 아니라 심리적 상태까지 파악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소통법이다. 의사와 통역자와 환자가 지식으로만 닿을 수 없는 것이 의료통역이다.
툴가는 내가 알라딘의 아그라바 왕국 시장통 같은 일반외과 앞에서 환자들을 안내하고 있을 때 일반외과 통역을 맡은 몽골 청년이었다. 말걸기 좋아하는 내가 의자에 앉아서 쉬는 툴가에게 말을 걸었다. 27세 툴가는 한국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서울 시립대학을 졸업했고 몽골 국비 장학생으로 한동대에서 석사를 받은 재원이었다. 도시재생 분야를 공부했지만 몽골의 정치적 현실이 공부한 것을 펼치기엔 제약이 많다며 국제 교류에 대한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대륙으로 펼쳐진 지리적영향 때문인지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과 러시아 쪽으로도 관심이 많았다. 몽골은 미완의 땅이며 그래서 국제적 관심이 높은 가능성있는 국가라는 게 툴가의 전망이었다.
테무진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저녁을 먹을 때 툴가가 나에게 다가왔다. 매구경을 시켜주겠다는 거였다. 몽골에서 매는 신성한 동물이며, 툴가가 가장 좋아하는 새라고 했다. 매가 집안에 들면 길운이 함께 깃든다고 했다. 매가 집안에 든다고? 나는 깜짝 놀랬다.
어릴 때 먼 하늘에 매가 날아다녔다. 어린 나에게는 ‘출몰했다’가 맞는 표현일지 모른다. 매가 동네 상공을 나타나면 놀던 것을 팽개치고 집으로 행했다. 어른들은 매를 조심하라고 했다. 마당에 놀고 있는 병아리들을 우선 우리 안으로 몰아넣어야 했고, 아기를 키우는 집은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우리 집에는 나보다 9살이나 어린 귀한 아들이 한 명 있다. 그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넷이나 낳았고 나는 그중에 둘째이다. 매가 아기도 물어 간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매가 하늘을 비행하며 먹을 것을 찾는 순간에도 어른들은 어린 우리만 남기고 일을 나가셨다. 집을 돌보는 건 형제 중에 맏이가 하는 일이다. 맏이의 명을 받은 둘째도 예외는 될 수 없다.
매가 하늘을 날면 실눈을 뜨고 하늘을 노려봐야 했다. 매의 비행은 참으로 우아했으나 위험했다. 매는 한 번도 내가 노려본 하늘에서 마을로 내려온 적이 없었다. 병아리를 물고 가는 일도 사람 아기를 물고갔다는 말도 못 들었다. 그래도 매가 있는 하늘은 뭔가 스산할 만큼 두려움과 동경이 존재했다.
그렇게 신성한 매가 호텔 스카이라운지 모퉁이에 둥지를 틀었다니, 헨티 은드르항에서 가장 높은 호텔인 테무진 호텔은 무려 15층이다. 초원에 고만고만한 집들 속에 테무진 호텔은 마치 미래 공상 영화에 나오는 괴건물처럼 우뚝했다. 매가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생각한 매가 둥지를 튼 모양이다. 무슨 강남 갔다 온 제비도 아니고, 사람의 주거지에 둥지를 틀다니.
툴가가 가리키는 방향이 나는 보이지 않았다. 몽골인의 시력은 4.0까지 나온다는데 4.0까지 아니어도 보일법한 거리였으나 내 눈에는 그 신성한 날짐승의 둥지가 보이지 않았다. 툴가의 말에 의하면 지금 5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어린 매들이 제비몰이를 하고 있다는 거다. 우리는 스카이라운지 밖으로 나와 제비몰이를 하는 새끼 매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제비도 매도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시선으로도 쫓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신기하기만 했다. 나에게 매는 해동청이라는 신성한 이름으로도 기억된다.
「바람도 쉬여 구름이라도 쉬여 넘는 고개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라도 다 쉬여 넘는 고봉 장성령 고개
그 너머 님이 왓다 하면 나는 한 번도 아니 쉬여 넘으리라」
이 시조에 나오는 해동청 보라매가 우리나라 전통 매다. 18세기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인데 여기서 산진이는 산에서 자란 매, 수진이는 집에서 기른 매, 해동청, 보라매도 모두 매를 지칭한다. 매도 넘기 힘든 장성령 고개를 님이 왔다고 한 번도 아니 쉬고 넘으리라는 시조이다. 다시 오지 않을 님이고 다시 못 볼 님이다. 닿을 수 없는 사랑의 높이 만큼 멀고 아득한 것이 해동청이다.
지금 내 앞에서 제비몰이를 하며 놀고 있는 저 천진한 새. 툴가가 좋아하는 저 신성한 매가 신기하기만 하다. 몽골의 창공엔 흔하게 날아다니는 새가 매였다. 심지어는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둥지를 튼 매도 있다. 멀리 높게 나는 매는 늘 나의 눈을 가늘게 오래 붙잡았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매의 비행에는 내 심장 깊은 곳을 찌르는 부리가 존재했다. 그 도도한 아름다움. 매는 나에게 아주 먼 존재였는데 몽골에 오니 우리 집 처마 밑에 둥지를 짓고 살던 제비가 생각난다. 우리와는 스케일이 다른 대제국의 후예들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