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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아, 그거. 뉴스에서 본 적 있어. 공무원들 밖에서 놀다 몰래 들어와 지문 찍고 수당 타가는 거잖아.’
국민이 인식하는 공무원 초과근무는 이게 아닐까요.
알아요. 정말 일이 많아서 초과근무 하는 분들도 있어요. 9급 때 축제 업무에 파견 간 적 있어요. 축제 개최 한 달 전이었고요. 지나고 보니 초과근무를 100시간 정도 했더라고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땐 수당을 40시간까지만 줬던 것 같아요. 최근 코로나로 보건소 직원분들이 정신이 혼미한 상태까지 근무하시는 걸 보니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밖에서 일하고 밤 11시, 12시 퇴근이 일상인 업무를 할 때였어요. 시청까지 다시 가 지문 찍는 것보다,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초과 인정 안 받고 그냥 퇴근한 적 많아요.
옆에서 보던 동료가 일한 거 돈은 받아야 한다며 시청까지 억지로 차로 태워다 주기도 했어요.
시골 공무원이 여의도 출장 다니느라 일주일에 3일을 서울에서 밤까지 근무기도 했지요. 타지에서 근무하는 건 초과근무 인정이 안 됐어요. 초과로 일하고 돈 못 받는 이 생활도 꽤 오래 했었지요.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한 건, 일이 많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이런 어쩔 수 없는 때도 있는 걸 저도 알지만 그래도 되도록 하지 말자는 거예요. 왜일까요?
지금부터 말하려는 건 막연히 하는 초과근무에요. 일이 많지도 않은데 말 그대로 그냥 앉아 있는 거요. 아니면 긴장감 없이 일을 한없이 느릿느릿 하는 거죠.
결국 돈 때문이지요. 요즘은 많이 바뀌긴 했어요. 초과보다 빠른 퇴근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죠.
그래도 여전히 막연히 초과하는 분들이 있어요.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거죠. 초과근무를 많이 하는 분들은 보통 한 달에 30만 원에서 60만 원 정도 받으실 거예요.
문제는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죠. 한번 급여가 60만 원 늘면 어떻게 될까요? 소비 수준이 그 금액에 맞춰집니다.
매달 카드값이 같은 수준이거나 더 늘어나게 되는 것처럼요. 한 번 늘어난 소비는 쉽게 줄지 않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강제로 매달 47시간~57시간을 더 근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과근무의 덫에 빠지는 거죠.
한 달에 47시간을 더 근무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아이들을 볼 시간이 없다는 뜻이지요. 1년이 가도록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다는 뜻이지요.
피곤하니 업무 효율은 갈수록 떨어진다는 뜻이지요. 돈 쓸 시간도 없었는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존경하던 4급 공무원이 계셨어요. 그때는 초과근무가 더 만연하던 시절이죠.
그분이 하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직접 들은 게 아니라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취지의 내용이었어요.
‘생계 때문에 수당 받으려는 걸 너무 뭐라 할 수 없지만 되도록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과도하게 초과근무가 발생하면 살펴봐야 한다.
한 사람에게 너무 일이 많이 몰렸는지, 그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안 되는 직원이 배치된 것은 아닌지. 그러면 업무를 조정하는 것이 맞다.’
저는 올바른 관리자의 역할은 바로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조직 경쟁력 역시 향상되지 않을까요?
저는 제도적으로도 초과근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인사 조직 분야 업무를 담당해 본 적이 없어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사례를 통해 느낀 점이 있어요. 지방 공직에서 5급 사무관은 과장입니다. 그 위로는 소수의 4급 국장, 한 명인 3급 부시장이 있지요. (지방 규모별로 약간 다릅니다.)
지방에서 5급 사무관은 한 부서를 책임지는 관리자입니다. 수년 전 사무관 초과근무가 사라졌습니다. 사무관도 연봉제 적용을 받게 됐거든요.
연봉제라 초과근무 수당도 사라졌지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특별한 일이 없어도 사무실에서 도무지 퇴근 않던 사무관들이었습니다. 6시가 되자마자 집에 가기 시작하네요??? 세상 충격이었습니다.
사무관 눈치 보느라 퇴근 못 하던 직원들이 수두룩했거든요. 사무관 초과 폐지는 조직의 퇴근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습니다.
성과의 객관적 측정이 어려운 공직. 거기다 하위직의 초과 수당을 어떤 방식으로 대체해야 할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개선을 생각할 시대가 된 것 같네요.
초과로 딸려오는 돈에 익숙해지면, 결국 내 삶이 노예처럼 그 시간에 끌려갈 수밖에 없지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내 삶을 위해서 초과를 줄여나가면 좋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일을 많이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어찌해야 할까요? 초과로 받는 수당이 삶의 고정 지출이 되지 않도록, 가계 운영을 하는 게 필요하겠지요.
그래야 일이 정상적인 수준이 되었을 때 수당의 노예가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겠죠.
제 전임자가 어떤 사업 서류를 만드는 일은 한 달 정도 걸린다고 알려주더라고요. 서류 양은 많은데 같은 정보가 계속 이리저리 조합된 신청서들이었어요.
저는 이 단순한 업무 때문에 한 달씩 시간을 소모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엑셀 데이터와 한글 메일머지 기능을 이용해 전임자가 한 달 걸린 일을 한 시간 만에 처리할 수 있었어요.
이건 물론 한 가지 예 일뿐이에요.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 기록을 꾸준히 한다든지, 일을 빨리할 방법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찾을 수 있어요.
HWP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공무원들은 아마 은퇴할 때까지 써야겠죠. 한글 도움말에 나와 있는 한글 단축키를 다 외우면 어떨까요?
제 경험상 문서 작성하는 시간이 70% 정도는 줄어듭니다.
공무원들은 아직도 종이 달력 쓰는 분이 많죠. 구글 캘린더나 네이버 캘린더 같은 클라우드 캘린더는 사무실 보안 받지 않고 열려있는데도요.
이렇게 종이로 업무를 처리하고 종이로 된 서류 찾느라 시간 허비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정 어려우면 단순하게 자주 보는 메뉴얼 같은 건 PDF 파일로 저장하고 검색만 해도 몇 초 안 걸릴텐데, 서랍과 캐비닛을 뒤지느라 시간을 허비합니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컴퓨터로 일하는 세상에 산다는 걸 잊지 맙시다.
ChatGPT에 엑셀에 쓸 코딩(VB Script)을 짜달라면 1초도 안 걸려 만들어 주는 시대입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세금 아끼려는 모범 공무원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