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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의 딸

나와 닮은 사람을 키워내는 것에 대해서

by 맵다 쓰다

일천구백구십일년도


"슈퍼 골목에 순대파는 지나서 참기름 짜는 집 알지? 거기 가서 안녕하세요! 하고 우리 엄마가 아까 깨 맡겨놓은 거 참기름 다 짜졌나 물어보고 찾으러 왔다고 그래~ 돈은 다 주고 왔으니까 받아오기만 하면 된다! 너무 흔들지 말고 조심해서 들고 와!"


언제나 심부름은 이 집 막내, 내 차지다.

나는 투덜대며 문 밖을 나와서 뒤 축이 구겨진 운동화를 고쳐 신고 골목을 나선다.


우리 집 근처에는 시장이 있었다.

긴 골목 2개가 쭉 이어지고 큰 상가 건물까지 끼고 있는 꽤 큰시장이었다.

제대로 된 간판도 없는 가게가 빼곡했지만 내 머릿속에 지도가 있었다.엄마를 따라 늘 시장에 가던 나는 그 모습이 지금도 그려질 정도이다.


시장 안 큰 슈퍼마켓에는 신상 아이스크림이 많았다. '대롱대롱'처럼 집 앞 구멍가게에는 없는 아이스크림을 10% 할인해서 180원에 팔았는데 시장 구경의 마무리로 늘 전리품을 얻어냈다.


그런데 혼자 심부름하러 가는 시장은 별 재미가 없다. 게다가 시장이 그리 쾌적한 환경은 아니다.

생선가게에서 내장 손질을 하며 바닥으로 부어내는 물이 골목 중앙 배수로에 모여 시장 바닥은 물기가 그득했다.

아무리 조심해서 걸어도 돌아오면 내 바지 뒷자락엔 매번 검은 흙탕물이 튀어 있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골목으로 들어선다.

우리 빌라 302호 아줌마가 하는 건어물 가게를 지나고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노래를 잘하는 남자애 엄마가 하는 채소가게도 지난다.

눈이 마주쳐 인사를 하니 그 아이와 똑 닮은 아줌마가 웃어준다.

빨간 고무 다라이에 해삼이며 개불이며 전투적으로 길가까지 점령한 생선가게를 지날 때면 잠시 숨을 참는다.

막장이 진짜 맛있는 순대집을 지나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여~. 짐이요. 짐!"

남색의 번떡 거리는 우비를 입은 아저씨가 뱃속까지 훤히 보이는 돼지 한 마리를 어깨에 걸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온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삼겹살이지만 내장 없는 뱃속을 보는 일은 언제나 당혹스럽다.


드디어, 참기름집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하고 용건을 말하기도 전에 아저씨가 말한다.

"어, 그 아줌마 딸인가 보구나"

이름표를 달고 간 것도 아닌데 내가 말하기 전에 내가 누군지 알아본다.

이상했지만 어른이 되면 그런 능력이 생기나 보다 했다.

나는 그땐 몰랐다.

내 얼굴이 누군가와 그렇게도 닮았는지...




이천십구 년도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오세요"

서너 번쯤 그 말을 서로 건네다가 진짜 초대를 받았다.


어린이집을 같이 보내는 동네 엄마로부터였다. 아이들 등 하원을 친정엄마가 도맡아주고 있었기에 나는 가끔 마주치곤 했는데 이상하게 친근했다.

등원 거부로 애먹는 친정엄마와 우리 애들에게 참 갑게 해준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들은 북적이며 놀고 우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성향이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고민에 공감하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동네 엄마들 중 처음 초대된 게 워킹맘인 나라는 사실에 놀랐다.

사실, 나도 이런 식으로 선뜻 가는 사람도 아니긴 했다.


나보다 서너 살 위였던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늘 어머님을 뵙잖아요. 어머니가 키운 딸은 안 봐도 어떤 사람일지 느껴지더라고요. "

몇 번 보지 않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일지 생각했고 그 느낌이 맞다는 말이었다.


목구멍으로 순간 뜨거운 게 올라올 만큼 그녀의 말이 고마웠고 또 나의 엄마에게 고마웠다.



사실, 친정엄마와 육아를 나누어하느라 크고 작은 마찰들이 있었다.

엄마의 방식과 내 방식이 대립될 때마다 서로에게 조금씩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열변을 토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같은 결을 뿜어내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얼굴을 하고 엄마의 마음을 닮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를 표현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다.

바다같이 깊은, 넓은, 따뜻한, 포근한, 어떤 수식어도 어울리지만 어떤 한 단어만으로 정의 내려지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딸린 여자를 부르는 말'이라는 뜻풀이만으로 담을 수 없는 걸 글로 옮겨보고 싶었다.


엄마란 자리의 무게, 엄마로 느끼는 삶의 순간을 고작 7년 차 엄마인 내가 담아 낼수 있을까?

단지, 기쁘고 슬프고 뿌듯하고 힘들고... 이런 감정으로 엄마가 살고 있지 않을까했던 과거의 나를 생각했다.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누군가는 기억해야만 했다.아니, 기록하고 싶었다.

우리 눈에 구멍이 한개인 개미집의 입구만 볼 수 있지만 개미가 되어 들어가면 여러 갈래 길과 방이 있는 걸 알게된다.


미안해서 미안한 감정, 자식 얼굴에서 나를 보는 느낌 같은 것들은 도저히 경험해보지 않고는 설명해낼 재간이 없다.


엄마가 되기 참 잘한 것 같다.

엄마의 얼굴을 해보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엄마의 얼굴을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는 삶을 사는 딸이었것 같다.


앞으로도 내가 몰랐던 미지의 엄마의 감정들을 하나씩 찾아내고 마주치면서 나는 내 딸들의 엄마가 되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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