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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밥과 보름나물

고작 고맙다는 말에 대해서

by 맵다 쓰다

"조금만! 진짜 한번 먹을 만큼만이야!"



점심을 먹지 말고 기다리란 전화를 끊으면서 한번 더 당부했던 말이다.

그 전화는 나의 엄마에게서 걸려온 것이었다.

통화는 자고로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는 것인데 어째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하고 싶은 말만 전달되는 느낌일까?


그 날은 정월대보름이었다. 당시 난 둘째 아이 육아 휴직 상태였고 두 번의 출산 후 체력도 마음도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져서 스스로를 '정상이 아닌 상태'라고 부르던 때였다.

멘탈이 와장창 깨진 딸을 위해 엄마는 종종 들러 한두 시간씩 아이들을 봐주곤 하셨다.

너는 안 해먹일 게 뻔하니 손녀들에게 보름밥을 해주겠노라 나물을 몇 가지 할지, 아이가 잘 먹는 나물도 한 가지 넣어야지 하고 사전예고를 하셨다.


이상하게 출산하고 양가 어머님들에게 듣는 말은 잔소리처럼 들리던 시절이었다.

'요즘 같은 때 무슨 대보름 절기음식이람'하는 생각을 하며 귀담아듣지도 않고 사전 방어의 말을 덧붙인다.

" 엄마, 우리는 많이 안 먹을 거야!"


눈물이 많은 것과 외모는 꼭 닮은 우리 모녀지만 성향은 좀 달랐다.

엄마는 느긋하고 난 급하고 동작이 날쌔다.


음식으로 따지자면 엄마는 그냥 딱 우리네 엄마들 스타일이다.

'음식은 자고로 푸짐해야 한다.'가 음식 지론이지만 손은 느린 편의 엄마였다.


반면에 나는 어차피 다 못 먹고 냉장고에서 머물다 버려질 거라면 시간, 재료 낭비라고 생각했다. '모자란 듯 먹자'란 생각은 손이 작단 핀잔을 불러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한 시간 전쯤 엄마가 도착했다.

문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엄마의 손부터 바라봤다.

스텐으로 된 찬합이 왼손에 작은 압력밥솥을 통채로 싸온 분홍 보자기가 오른손에 들려있었다.

신발도 안 벗은 엄마를 보자 대뜸 이런 말부터 나왔다.


"뭐가 그렇게 많아? 요즘 누가 그런 걸 먹는다고 그렇게 많이 해와. 우리 집에 아무도 찰밥 안 좋아해"


고생했겠다. 맛있겠다. 도 아니고 충격 범퍼로 없이 그냥 '훅'파고든 내 말..


엄마의 머쓱해진 얼굴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말은 나를 떠난 뒤였다.


"아휴 조금만 한다고 했는데 하다 보니 또 많이 해지지 뭐야.."

음식을 풀어놓는 엄마 얼굴엔 서운한 기색이 가득했다.


아차! 하는 마음에 만회할 만한 말을 찾았다.그런데 미안하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진짜 찰밥도 나물도 안 좋아하는데... 뭐하러 돈 버리고 힘들게 저걸 해서 들어오냐고..'

말 그대로 나는 심통이 냈다.


그때의 일을 글로 옮기면서도 '이런 못때먹은 딸년을 봤나..'싶다.

그 시기의 나는 뭔가 엉클어진 상태였다.


아이를 낳고 보니 커서 엄마 호강시켜줄 테야! 했던 호언장담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별 볼일 없는 인생만이 남았구나.' 싶어 나에게 화가 났다.


빡빡한 살림살이로 도움은커녕 엄마의 노년에 아이들까지 짐을 지우는 내 상황에도 짜증이 났다.


다른 엄마들처럼 '나는 힘들어서 못한다. 내 인생도 있단다~'하고 자기를 아끼면서 살면 좋겠는데 '내가 힘이 있을 때 도와주겠노라'하며 끝내 모든 걸 다 내어주는 모습에 속이 상했다.


우리 집에 와서도 청소라도, 빨래라도 할꺼없나 두리번거리는 것도 싫었다. 중2병 걸린 딸처럼

"그냥 두면 내가 나중에 다 할 거야. 놔둬." 고맙다는 건너뛰고 퉁명스러운 말만 하는 못난 나도 싫었다.


사실, 모든 근원은 나였다.

상황이 마음대로 안되고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마음은 더 만신창이였던 그때..

더 힘든 삶의 고비도 넘겨왔다고 생각했다. 고작 육아에 마음이 널뛰기하며 와장창 깨져버린 내 모습이 싫었다.

그래도 자식이라도 엄마가 걱정할까 봐 내색하고 싶지 않아서 참고 참았다.


나는 힘들지 않다 했지만 엄마는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 같다.

말없이 반찬을 해주고 밥은 먹었는지 수시로 전화를 했다. 아직 젊은 데 여기저기 아프면 안 된다 걱정을 하고, 도와줄 건 없나.... 그렇게 엄마의 방식으로 나를 응원했을 것이다.



봄에 채취한 나물을 잘 말려 저장했다가 이듬해 정월대보름에 먹으면 그 해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절기 음식.

정월대보름의 묵은 나물은 이런 걱정과 기원의 의미가 있다.

봄의 에너지를 가득 담은 음식을 무탈을 기원하면서 차려낸 음식..

그 자체로 응원과 애정이 담겨있다.


더위보다 냉방병을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도 자식이 무탈하기만을 바라는 어미의 마음과 같다.


정성스레 골라 손질하고 물에 불려 삶고 아린 맛을 빼내기 위해 물을 갈아가면서 불리는 작업들..

그렇게 준비한 재료로 대여섯 가지나물을 따로따로 볶아낸다.

오곡을 넣은 찹쌀밥을 압력솥에 앉히면서 맛있게 먹어줄 모습을 상상하셨겠지..


아픈 허리를 몇 번이나 뒤로 젖혀서 펴시면서도 식지 않게 냄비채로 품고 가야지.. 하면 즐거우셨겠지.


눈에 그려질 만큼 잘 알면서... 그 무거운 음식을 들고 왔을 엄마를 생각하니 그 앞의 마음은 건너뛰고

'제발 그런 것 좀 들고 다니지 마!'하고 심통부터 난다.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자식이다. 무조건적인 이해와 사랑을 양심 없이 요구하는 그런 자식...




아이는 자라고 나도 엄마로의 나이가 한 살씩 먹어간다.

그리고 나의 엄마도 점차 나이가 드신다.


엄마의 시계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만큼 표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늘 신세만 지는 딸이라서 "고맙다"는 마음이 들 때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얼버무리듯 말 끝에 '엄마, 고마워요..'라고 붙이니 화들짝 놀라면

"에구 무슨 고맙기는.. 당연한 거지..'하고 말하신다.


그런 엄마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어 진다.


'이건 택배를 받으며 고맙습니다 하는 거랑은 태생이 다른 거야.

단전 어디인지, 뼛속 어딘지 몰라도 켜켜이 쌓여온 마음을 낳아서 말하는 거라고, 한마디로 밖에 옮길 수 없어 답답할 만큼 고맙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 말이 주는 무게가 참 가볍다.

고작 '고맙습니다' 말고는 없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겠다. 어떤 말로 그 감정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건지..


그래서 적당한 단어를 찾아낼 때까지는 나는 앞으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엄마! 이 나물 진~짜 맛있는데! 밥 한 그릇 더 먹을까?" 하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찰밥을 두 그릇 먹는 그런 나쁜 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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