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훈의 연필

지속하는 힘

by 맵다 쓰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이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연필로쓰기] 김훈


김훈의 산문집 [연필로쓰기]에 나온 글이다.
여전히 200자원고지와 스테들러 마쓰루노그래프 연필을 고집하는 집필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존경스럽다.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나에게 소중하다. 나는 이 느낌이 없으면 한줄도 쓰지 못한다.”


연필에 대한 표현은 글쓰기를 어떤 의식으로 대하는 숭고함 마저 느껴진다. 글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1156매의 200자 원고지 231,200자의 원고를 한 자씩 써내려가는 물리적인 쓰기의 어려움까지 더해져야한다.

실제 김훈의 육필원고를 타이핑하는 <문학동네>담당 편집자는 김훈 작가의 집필과정을 함께 하면서 살갗이 벗겨진 손가락 보았노라 전한다.


신석기 사내의 주먹도끼나 대장장이의 망치는 빼앗길 수 없고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생존 그 자체일 것이다. 글쓰기를 죽고 사는 것처럼 대하는 김훈작가의 연필에 대한 비유처럼 무엇인가 잘 하게 된다는 건 결국 임하는 자세가 전부라는 말이 아닐까?


나는 격동의 80년대생이다. 클릭과 더블클릭의 차이도 몰랐고 부팅디스크를 넣고 컴퓨터를 켜보고 전화선을 꽂아 연결한 인터넷으로 인내를 배우면 아날로그를 졸업했다.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로 증언하자면 그때는 편지는 있고 손편지는 없었다. 내게도 라면박스로 몇 상자가 되는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아무도 손편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글씨는 썼지만 손글씨는 안썼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위해 손편지를 썼어!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달리 손이라고 지칭할 것 없이 모든 편지는 손편지이고, 모든 글씨는 손 글씨였기 때문이다. 간혹 타이핑한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고 아빠의 타자기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글씨의 기준점은 손을 움직여 쓰는 글씨에 있었다.


이제는 그 기준이 바뀌었다. '글씨'는 당연히 입력한 컴퓨터의 명조체, 굴림체가 기본값이다. 오히려 '손글씨'라고 손으로 쓰는 글씨는 달리 지칭해서 부르게 되었다. 자판으로 쓰면 되는데 왜 손글씨를 연습해야하나요? 같은 질문이 당연스레 초등학생에게서 나오고, ‘손편지까지 썼줬다’가 대단한 선심이 되어버렸다. 글쓰는 일이 직업인 작가도 이제는 대부분 pc를 이용해 글을 쓴다


당연히 모든 걸 손으로 해낼때는 몰랐지만 한번 맛 본 자판의 효율성과 편리함은 우리가 건너온 그 강을 돌아갈 수 없게 했다. 이제는 제2의 손 같은 컴퓨터 자판을 벗을 수는 없고 특별한 의식이나 진심을 담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을때나 손으로 글씨를 써본다.

나는 생각이 날아갈까 두려워 더 빨리 타자를 입력한다. 어쩌다 손으로 쓰게 되면 종이를 한장 채우기도 전에 답답한 마음이 든다. 타자입력과 문서작성이라는 편의성때문에 김훈 작가의 육필이라는 방식을 따라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쓰기를 놓을 수 없는 그 자체, 나의 생존만큼 존엄한 것이라 여기는 자세는 꼭 가져야 하지 않을까?


글이 잘 쓰고 싶다면 결국은 많이 써야 한다.

쓰기를 숭고한 노동이라고 여기고 연필이든 손가락이든 움직여야한다.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것이다. 글을 써서 돈을 벌기위해서가 아니라 전업작가처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정신적인 숙고는 물론이고 육체적인 노력역시 필요하다. 글감을 생각하며 산책을 하거나 남이 써놓은 책을 읽으며 편안하게 생각을 다듬는 것말고 손을 움직여 글씨를 만들어내야 진짜다.


그게 스테들러 연필이든, 몽블랑 만년필이든, 나의 로지텍 블루투스 키보드이든 중요하지 않다. 오른손 중지의 마디가 벗겨지든 손목터널 증후근이 생기든 몸 어딘가에 흔적이 남아있지 않으면 진짜 노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잘 쓰고 싶어요. 써보고 싶어요 하면서 오로지 ‘쓰기’만 미룬채 유예기간을 자꾸 둔다. 진짜 잘 쓰고 싶고 싶다면 밀어올리면 다시 떨어지는 바위를 몸으로 밀어올리는 시시포스가 되자.

쓸 때마다 몸이 글을 밀어 올리는 땀에 옷이 젖는 '쓰기의 노동'에 빠져야 한다.

몸이 기억하지 않는 일은 진심이 아니고 진심이 아닌 일이 진짜 내것이 될 리가 없다.

글쓰기는 결국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쓰기위한 노동을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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