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다시 걷는 남자들, 다시 나는 사람들
에버유 필라테스를 찾는 남성 회원들은 대부분 조용히 문을 연다.
‘혹시 나 같은 사람이 여기 와도 될까?’
그 물음을 가슴에 품고.
누군가는 자신도 몰랐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들어오고,
누군가는 무너진 일상에서 길을 잃은 채 발걸음을 내디딘다.
하지만 그들의 시작은 늘 ‘용기’였고,
그 끝에는 변화가 있었다.
그가 처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어깨에는 보이지 않는 짐이 잔뜩 얹혀 있었다.
몸은 바싹 말랐지만, 배만 도드라졌고, 어깨는 굽어 있었다.
오랜 야근과 스트레스가 만든 몸이었다.
“필라테스는… 여자들이 하는 운동 아닌가요?”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필라테스는 근육을 키우고 몸을 바로잡으며, 내면의 힘을 기르는 운동이에요.
남자들도 할 수 있고, 오히려 더 빨리 변할 수도 있어요.”
그는 조심스레 시작했다.
처음엔 모든 동작이 버거웠다.
긴 다리는 근력이 약했고, 복부는 힘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는 서서히 변했다.
“선생님, 오늘 배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어요!”
“이제 어깨가 덜 아파요!”
그의 눈빛이 조금씩 밝아졌다.
수업 시간엔 회사에서의 ‘어른스러운 모습’을 내려놓고,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장난을 치며 웃었다.
나는 알았다.
그가 몸을 단련하는 것뿐 아니라,
잃어버린 동심과 자유를 되찾고 있다는 걸.
어느 날 그는 말했다.
“여기 오면, 그냥… 피터팬이 된 것 같아요.”
20대 중반의 청년이 있었다.
처음 상담할 때는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깊은 슬픔이 숨겨져 있었다.
청소년 시절의 트라우마로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약을 복용 중이었다.
필라테스를 하면서도 종종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오늘은 속이 울렁거려요. 그래도 운동은 하고 싶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다독이며,
그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함께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운동을 하면… 마음이 좀 편해져요.”
필라테스를 이어가며 몸이 단단해지고 살이 빠지자, 그의 마음속에도 잔잔한 변화가 스며들었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은 듯했던 그는, 마침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용기를 냈어요.
이제 저도 제 삶을 살아보려고요.”
그가 흘린 땀은 단순한 운동의 땀이 아니었다.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눈물 같은 것이었다.
40대 후반의 다른 회원은 몸 곳곳이 망가져 있었다.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 골반 불균형, 회전근개 염증…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지만,
그는 스스로 몸을 회복하고 싶다고 했다.
“운동으로 나을 수 있을까요?”
“천천히 해볼 거예요. 필라테스는 몸을 단련하는 운동이자, 회복하는 운동이니까요.”
그는 묵묵히, 끈기 있게 운동을 이어갔다.
작은 동작도 버거워하던 그가,
조금씩 달라졌다.
“선생님, 이제 뱃살이 거의 없어졌어요!”
“목도 안 아프고, 허리도 훨씬 좋아졌어요!”
그의 몸은 예전의 그가 상상도 못 할 만큼 튼튼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지금은 더 젊어진 것 같아요.”
그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진짜로 다시 젊어졌고,
다시 날아오를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한 남자가 센터 앞을 지나갔다.
그는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담배를 문 채 건너편을 바라봤다.
나는 그가 우리 센터를 유심히 보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와 그는 말했다.
“남자도 여기서 필라테스를 할 수 있나요?”
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럼요. 누구든지 몸을 돌보고 싶다면 환영이에요.”
그는 50대 중반의 가장이었다.
한때는 회사에서 인정받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희망퇴직자’가 되었다.
퇴직은 그의 언어로는 ‘끝’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척 집을 나섰다고 했다.
커피숍에 앉아보고, 공원을 거닐고, 서점에 들러봐도,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늘 스쳐 지나치기만 하던 건물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불이 켜진 창 너머로 사람들이 조용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그렇게 그는 필라테스 스튜디오 문을 열었다.
처음 수업 날.
그의 몸은 뻣뻣하고 움직임은 어색했다.
어깨는 올라가 있고, 허리는 굽어 있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해보세요.”
나는 그에게 리포머에 올라가 보라고 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몸을 움직이도록 안내했다.
몇 번의 동작을 따라 하며 그가 말했다.
“어? 나… 예전에 운동 좀 했었는데.”
젊은 시절, 그는 테니스와 수영을 즐겼다고 했다.
그러나 바쁜 세월에 자기 몸을 잊었다.
필라테스를 하며 그의 몸은 기억을 되살렸다.
굳었던 근육이 깨어났고, 움직일수록 가벼워졌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필라테스가 이런 거였어요?
내 몸이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어요.”
운동을 계속하며 그는 내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가장으로 살아온 게 전부였는데, 이제 나는 뭘 해야 할까요?
회사를 그만두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살아오셨잖아요.
이제는 스스로를 위해 살아보면 어떨까요?
퇴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어요.”
그는 어색해하던 마음을 조금씩 열었다.
자신을 위해 시간을 가져도 된다는 것.
이제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몸뿐 아니라 마음이 달라졌다.
몇 달 뒤, 그는 더 이상 출근하는 척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다.
“운동을 하면서 생각이 정리됐어요.
몸이 변하니까 마음도 변하더라고요.
이제는 내 삶을 진짜로 살아보고 싶어요.”
많은 이가 퇴직을 ‘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동안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진짜 자신을 위한 인생을 찾아야 한다.
그는 필라테스를 통해 몸을 움직이며 자신감을 되찾았고,
자신을 위해 사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도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까요?”
그 질문에 나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한다.
“네, 물론 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삶의 무게에 지친 어른 피터팬들이,
잃어버린 날개를 다시 찾아 날아오를 그 순간을.
필라테스는 단지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아니다.
다시 살아보겠다는 마음의 선언이다.
그 선언 앞에서 나는 늘 조용히 말한다.
“당신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1. 몸을 움직이면 마음도 움직인다.
2. 누구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3. 회복은 느리더라도, 반드시 가능하다.
4. 나를 위한 시간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5. 운동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살아보겠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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