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필라테스 강사의 맛있는 인생 수업

밥 한 끼의 철학:비 오는 날, 면의 감수성

by 유혜성

비 오는 날, 면의 감수성


많은 사람들이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밀가루 음식이 떠오른다고 한다. 유난히 흐리고 습한 날씨 속에서 우리는 왜 따뜻한 국물과 쫄깃한 면을 찾게 되는 걸까? 이는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과학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비가 오면 기압이 낮아지고 우리 몸속의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든다.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며 기분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비 오는 날에는 이 호르몬이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탄수화물이 당긴다. 특히 밀가루 음식은 빠르게 에너지를 공급하며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흐린 날의 우울한 기분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면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도 비 오는 날이면 꼭 면 요리가 당긴다. 이유는 아마도 뜨끈한 국물에 푹 담긴 면발이 주는 위안이 가장 크지 않을까.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후루룩 면을 먹다 보면 마음까지 촉촉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중에서도 나는 들깨가 들어간 면 요리에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들깨 칼국수, 들깨 수제비, 들깨 막국수. 어쩌면 내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들깨가 가진 고소한 풍미와 영양이 몸을 편안하게 감싸주기 때문이다.

들깨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 혈관 건강을 돕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한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해 뼈 건강에도 좋으며, 소화를 부드럽게 만들어 속을 편안하게 한다. 들깨를 한 숟갈 뜨는 순간, 그 고소함이 혀를 감싸고 몸속 깊이 스며든다. ‘이건 좋은 거야’라는 확신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본능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속초 대포항에서 먹었던 ‘남경 막국수‘의 들깨 막국수

최근 속초 대포항에서 먹었던 ‘남경 막국수‘의 들깨 막국수는 그 모든 감각을 만족시켰다. 메밀로 만들어진 면과 들깨의 조화, 그리고 씹을수록 퍼지는 고소 하면서도 은은한 단맛. 거기에 별다른 간을 추가하지 않아도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건강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속이 편안해지고,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 유명한 집이라는 걸 몰랐어도 한 입만 먹어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은 맛이었다.


서울에서 들깨 요리를 찾을 땐 서촌 ‘체부동 잔칫집‘을 찾곤 한다. 그곳의 들깨 칼국수와 들깨 수제비는 얇고 부드러운 면발과 구수한 국물이 일품이다. 단순한 면 요리가 아니라, 몸을 달래고 마음까지 채워주는 음식.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마저도 정겹게 느껴지는 곳이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들깨 면 요리를 찾게 된다.

비 오는 날의 면 요리는 단순한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따뜻한 국물과 부드러운 면발이 주는 위로, 입안에서 퍼지는 풍미가 가져다주는 안락함.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영양과 효능까지. 그래서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들깨 면 요리를 찾게 된다.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그 따뜻한 선택을, 오늘도 따라가 본다.


들깨칼국수의 고소한 국물이나 막국수의 담백한 맛도 좋지만, 비 오는 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동이다.


비 오는 날, 우동 한 그릇의 위로


가성비 끝판왕, 역전우동


비 오는 날 퇴근길, 혹은 운동 후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있다. 바로 ‘역전우동’. 4,500원이면 한 그릇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기적 같은 가격의 우동. 싸다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항상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면발과 국물의 조화가 꽤 훌륭하다. 탱글탱글한 면발, 적당히 감칠맛 나는 국물, 위에 얹어진 미역과 다시마, 그리고 바삭한 튀김가루까지. 가성비는 물론이고, 기분까지 채워주는 우동이다. 가볍게 한 끼 해결하고 싶을 때 찾게 되는 곳.

4,5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라니, 가성비를 논할 필요조차 없다. 우동 한 그릇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우동 한 그릇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일본보다 더 일본 같은 ‘겐로쿠 우동‘


그리고, 우동의 정점을 찍는 곳이 있다. 바로 ‘겐로쿠 우동’. (일산 웨스턴돔점)

이곳은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극찬할 정도로 깊고 진한 맛을 자랑하는 곳이다. 대파를 구워 육수를 내고, 후추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국물. 일본 우동이지만 맑은 국물이 아닌, 갈색 빛이 도는 진한 국물이다. 생면을 직접 뽑아내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데, 우동 메뉴는 단 세 가지.

우동의 정점을 찍는 곳, 겐로쿠 우동

키즈네 우동(유부 우동), 지도리 우동(닭고기 우동), 니꾸 우동(소고기 우동).

그런데 놀라운 점은, 싱글이든 더블이든 트리플이든 가격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본인의 양에 맞게 우동을 추가해도 부담이 없다. 평일에는 유부초밥을 서비스로 주는 작은 친절도 이곳의 매력을 더한다. 이런 세심한 배려 덕분인지 항상 웨이팅이 길다. 하지만 기다려서 먹을 가치가 있는 곳이다.

갈색빛 진한 국믈, 겐로쿠 지도리 우동

비 오는 날, 이곳의 우동을 한 젓가락 집어 들면, 면발이 입안에서 춤추듯 통통하게 살아난다. 따뜻한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흐렸던 기분까지 환해지는 기분이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묵직한 만족감을 주는 이 한 그릇의 힘. 뜨끈한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속이 따뜻해지고, 면을 후루룩 삼킬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일본에 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일본 여행을 꿈꾸게 만들기도 한다. “일본 가고 싶다! “라고 말하면서도, “아니야, 그냥 여기 우동 먹으러 가자! “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는 곳.

속초 해수욕장 인근 ‘면구소’

속초에서 만난 ‘면구소’


속초 여행 중, 비 오는 날 우연히 들어간 ‘면구소’. 이름부터 독특한 이곳은 ‘면을 연구하는 연구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첫 방문에서 우리는 황태국수와 고기국수를 주문했다. 뽀얗고 정직한 국물, 사골을 우려낸 듯한 고기국수는 깊고 담백했다. 황태국수는 맑고 깔끔한 국물 속에 감칠맛이 살아 있었다. 위에 올라간 당근과 표고버섯, 파 등의 토핑까지도 정갈했다. 인테리어는 전부 하얀색. 식기조차도 같은 색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더욱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이 들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비 오는 날, 속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음식이 주는 감동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다음에 속초를 가면, 우리는 또다시 ‘면구소’를 찾을 것이다.

여행의 묘미란 그런 것 아닐까. 우연히 발견한 곳이 단골이 되고, 그곳의 맛이 하나의 추억이 되는 것.

속초 면구소의 고기국수와 황태국수

비 오는 날의 감수성과 인생


비 오는 날은 때때로 우울할 수도 있고, 기분이 처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작은 위로를 찾는다. 따뜻한 한 그릇의 음식이 주는 온기, 몸을 감싸는 국물의 힘. 그리고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면발의 위로. 면 요리는 단순한 탄수화물이 아니라, 어떤 날에는 우리의 기분을 다독이고, 힘을 주는 존재다.

면요리는 어떤 날에는 우리의 기분을 다독이고, 힘을 주는 존재다.

인생도 그렇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고, 때로는 비 오는 날도 있다. 중요한 것은 비 오는 날을 싫어하기보다, 그날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울할 때, 비를 핑계 삼아 맛있는 면 한 그릇을 먹으며 위로받는 것도 좋다. 따뜻한 국물을 들이켜며, 몸과 마음을 녹이며,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필라테스를 하며 몸의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우리는 작은 위로와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비 오는 날, 우동 한 그릇. 혹은 들깨칼국수(수제비), 들깨 막국수, 황태국수, 고기국수 등 따뜻한 국물이 주는 힘을 떠올리며, 오늘도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필라테스 강사의 맛있는 인생 수업


운동을 하면서도 비 오는 날의 감성을 놓치고 싶지 않다. 흐린 날,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몸을 천천히 스트레칭하면 마치 면을 천천히 씹어 삼키는 것처럼 차분해진다. 필라테스를 하며 몸을 곧게 펴고 심호흡을 하면, 면 요리가 주는 따뜻함처럼 마음이 정돈된다. 몸도 마음도 유연하고, 차분하게.

운동을 하면서도 비 오는 날의 감성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omet_you_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