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늦게 피는 꽃은 포기하지 않는다

22. 슬로 스타터를 위한 응원-빛을 발할 순간은 반드시 온다

by 유혜성

22장. 빛을 발할 순간은 반드시 온다


늦게 피는 꽃들을 위한 응원과 확신의 기록


어떤 날은 바람조차 머뭇거린다.

시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정지된 하루. 그런 날엔 불안이 조용히 스며든다.


“나는 왜 아직 여기에 있을까. 그 오랜 시간 동안 쏟은 노력은 왜 아직도 아무런 빛도 닿지 못하는 걸까.”


남들에겐 훤히 열린 길이, 나에겐 끝도 없는 터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음속 어디선가, ‘혹시 이 길이 틀린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꿈을 흔든다.


하지만 삶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속삭인다. 모든 게 끝났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빛은 천천히 솟아오르고 있다고.


그 믿음을 증명해 낸 사람들이 있다.


오랫동안 조롱과 냉대를 견디며 자신의 붓을 꺾지 않았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

그리고 40대에 예고도 없이 해고당한 뒤, 인생의 반전을 만들어낸 홈디포 창업자 버나드 마커스와 아서 블랭크.


너무 늦은 것처럼 보였던 출발은, 오히려 단단한 믿음과 통찰에서 비롯된 여정이었음을 그들은 보여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조용히 묻는다.


“당신이 믿고 있는 그 가능성, 정말로 끝난 걸까요? 아니면 지금 막 시작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클로드 모네, 세상의 조롱을 빛으로 바꾼 사내


1. 겨우 인상일 뿐이라던 그림


그날, 파리의 아침은 희뿌연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센 강 위로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 그 잔잔한 빛을 담은 작은 캔버스 하나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그 그림의 제목은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린 이는, 34세의 화가, 클로드 모네였다.


1874년 4월, 살롱전에 낙방한 화가들이 모여 만든 첫 번째 독립 전시회. 그 전시회에 걸린 그림들 앞에서, 평론가 루이 르로이는 <르 샤리바리>라는 신문에 이렇게 적었다.


“이건 인상일 뿐, 완성된 그림이 아니다. 벽지 초안보다 못하다. “


그는 ‘인상주의(Impressionism)’라는 단어를 세상에 처음 썼지만, 그것은 새로운 예술을 향한 찬사가 아닌, 형체조차 뚜렷하지 않은 그림에 대한 조롱이었다.

하지만 그 비웃음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예술의 이름이 되었다.

2. 외광회화, 빛을 쫓는 삶


모네는 조롱 앞에서 붓을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더욱 깊이 빛을 탐색했고, 더 멀리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스튜디오 안이 아닌 야외로 나가, 바람과 빛, 구름과 하늘을 직접 마주하며, 변화무쌍한 순간들을 화폭에 담았다.


같은 대상을 아침, 낮, 황혼, 안갯속, 비 오는 날, 해 질 무렵…

무한히 반복해 그렸다.

루앙 대성당, 건초더미, 수련, 그리고 정원.


모네에게 있어 자연은 늘 새로웠고, 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 찰나였다.


그는 “나는 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꽃이 내게 느끼게 하는 것을 그린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예술이란,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을 색채로 옮기고자 했고, 그는 그것이 진짜 예술이라 믿었다.

3. 지베르니, 인내의 정원


말년에 모네는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로 이주해 정원을 가꾸었다.

그는 그곳에 연못을 만들고, 다리를 놓고, 수련을 심었다. 그리고 그 수련을 무려 250점 이상이나 그렸다.


이미 시력은 약해지고, 백내장으로 색조차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수련 그림은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시간과 계절, 정서와 존재의 흐름이 녹아 있었다.


그렇게 그는 세상의 오해와 냉소를 견디며, 마침내 자신만의 정원을 완성했다.


그의 정원은 단지 식물의 풍경이 아니라, 그의 인생 그 자체였다.


4. 우리도 언젠가, 빛을 발할 것이다


모네의 이야기는 그저 한 예술가의 전기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시작’ 앞에서 흔들릴 때, 세상의 비웃음 앞에서 주춤할 때, 남들보다 느린 나의 속도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 그는 이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인상일 뿐이라며 조롱했던 그 말이, 결국은 새로운 시대의 이름이 되었소. 그러니 당신도, 끝까지 가보시오.”

지금 당신이 시작한 일이 당장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성과도 없고, 반응도 없고, 주변에서 알아주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니다. 아직 세상이 따라오지 못했을 뿐, 어쩌면 당신은 이미 한 발 앞서가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니다. 조금 부족하고 미완성처럼 보여도, 그 모든 순간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다.

남보다 늦더라도, 당신만의 리듬은 지금도 천천히, 깊고 단단하게 쌓이고 있다.


세상은 늘 결과가 보이고 나서야 그 가치를 인정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버티는 힘이다. 포기하지 않고 자기 걸음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 모른다.


모네는 수많은 비웃음과 외면 속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끝까지 그림을 그렸다.


지베르니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시절, 그는 하루하루 자신의 정원을 그리며 나아갔다.

그 조용한 축적은 결국 세상의 기준을 바꾸는 빛이 됐다.


당신도 지금 그런 길 위에 서 있을지 모른다.

비교하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자기 안의 목소리를 따라가라.


길이 흔들릴지라도, 마음의 방향이 분명하면 언젠가 도착하게 된다. 중요한 건 빠르냐 늦느냐가 아니라, 길을 ‘잃지 않고 가고 있느냐 ‘다.


오늘의 당신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조용한 하루들이 쌓여 결국 큰 그림이 된다. 모네가 그랬다. 묵묵히 그려낸 시간들이 결국 세상을 움직였다.


그러니까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

혼자 걷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도,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당신의 길은 누군가에겐 이미 희망이고, 용기다.

해고에서 시작된 새로운 출발


버나드 마커스와 아서 블랭크, 홈디포((The Home Depot) 창업자들의 이야기


누구도 해고를 예고하진 않았다.

1978년 어느 날,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끊겼다.

49세의 버나드 마커스와 36세의 아서 블랭크는 DIY 철물점 ‘핸디’에서 CEO와 CFO로 일하고 있었다.


성실했고 유능했지만, 해고 통보는 냉정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회사 밖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외롭고 막막한 순간, 비로소 마음 깊은 곳의 진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곧 결심이 찾아왔다.

“우리가 진짜 하고 싶었던 방식으로 한 번 해보자.”

다시는 누구에게도 쫓겨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 결심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홈디포였다.

일반 소비자도 전문가처럼 집을 고치고 꾸밀 수 있도록 돕는, 세계 최대의 DIY 창고형 건축자재 유통업체.


홈디포는 전문가만의 영역이었던 자재 시장의 문을 대중에게 열었다.

누구나 자기 삶의 공간을 스스로 손볼 수 있다는, ‘삶의 주도권 회복’이라는 문화를 만들어낸 혁신이었다.


그 시작은 작고 허름한 창고 한 칸이었다.

화려한 청사진도, 든든한 자본도 없었다.

손수 진열한 상품들, 고객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귀, 그리고 ‘집을 고친다’는 말을 ‘삶을 다시 세운다’는 말처럼 믿는 태도만 있었다.


그들은 신속한 수익보다 신뢰를 선택했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직원, 이유를 묻지 않는 환불 정책, 고객의 실패까지 감싸주는 서비스.

그 모든 ‘비효율’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낡은 철물점의 시대는 저물고, ‘창고형 할인매장’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들이 만든 건 단순한 철물점이 아니었다.

고객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감각을 파는, 가능성의 시장이었다. 그 가능성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홈디포는 수천 개의 매장을 가진 글로벌 기업이 되었고, ‘정직함, 진심,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는 처음의 철학은 지금도 브랜드의 뿌리로 살아 있다.


지금 마커스는 은퇴 후에도 의료와 교육, 유대인 공동체를 위한 자선 활동에 힘쓰고 있고, 블랭크는 스포츠 팀을 운영하며 청소년과 지역사회를 위한 공헌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삶은 끝이 아닌 전환점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그 전환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실패처럼 보였던 해고는, 누군가에겐 너무나 필요한 해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단순하다.

늦었다고 느껴질 때, 그때가 오히려 시작일 수 있다. 절망처럼 보이는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강한 발걸음을 끌어내기도 한다.


진짜 빛은, 어쩌면 바로 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버나드 마커스와 아서 블랭크는 해고의 충격 속에서도, 언젠가는 자신들의 방식이 통할 거라 믿었다.


작은 창고에서 시작된 그 믿음은 홈디포가 되어, 손수 고친 공간처럼 사람들의 삶에 따뜻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늦게 피어난 그 빛은 오히려 더 깊이, 더 오래 마음속에 머무는 이야기가 되었다.

빛을 발한 순간은 반드시 온다


클로드 모네는 오랜 가난과 외면 속에서도, 오직 자신이 믿는 빛을 좇았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서야, 세상은 그가 본 색과 빛의 세계를 비로소 보기 시작했다.


홈디포의 버나드 마커스와 아서 블랭크는 40대에 뜻밖의 해고를 당한 후에야, 자신들이 정말로 만들고 싶었던 ‘고객 중심의 세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끝이었던 순간이, 그들에게는 진짜 시작이었다.


우리는 자주 조급해진다.

서른에 무언가 이뤄야 할 것 같고, 마흔이면 이미 늦은 것 같고, 쉰이 되면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인생의 리듬은 우리가 정한 ‘표준 시간’에 따르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빛이 도달하는 시간은 다르고, 늦게 도착한 빛은 더 오래 남는다.


너무 일찍 자신을 단정 짓지 말자.

지금은 실패처럼 보여도, 어쩌면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일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볼 것. 실패가 아니라 실험이라고 말해줄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방식으로 나를 다시 만들어가는 것.


그게 우리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발자국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조언!


1. 해고당할 수도 있다.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새로운 기획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버나드 마커스와 아서 블랭크처럼, 때로 퇴출은 끝이 아니라 해방이다.


2. 지금 하는 일이 내 길이 아니라면, 틈틈이 ‘내가 진짜 만들고 싶은 방식’을 적어두자.

머릿속에만 맴도는 아이디어는 결국 사라진다. 그 조각 같은 기록들이, 언젠가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이 된다.


3. 직업은 당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도구일 뿐이다. 모네에겐 그림이, 마커스에게는 매장이 그랬듯이. 당신에겐 어떤 형태가 있을까?

공간을 꾸미는 일, 이야기를 듣는 일, 글을 쓰는 일… 중요한 건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은 가다.


4. 빨리 가지 않아도 된다. 제대로만 가면 된다. 비교는 방향을 흐리고, 속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의도다.


5. 지금 당신이 어둠 속에 있다면, 그건 빛이 없는 게 아니라,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빛은 반드시 온다. 당신이 진심으로 그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면.


오늘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

마음에 남은 문장 한 줄.

종이에 적은 낯선 단어 하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시작했다면, 그건 결국 당신이 가야 할 방향이 된다.

아주 작고 사소해 보여도, 그 모든 것이 당신 안의 빛을 보이지 않아도 서서히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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