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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09. 2023

한라산에 눈이 내리면...

2018년 1월 두 아들과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오른 한라산 풍경


제주도 한달 살기 13일째!

2018년 1월 14일.


신이 내려주신 기회란다.

대설  뒤에 한라산 등반길이 열렸다.

1월 13일 토요일까지 한라산의 모든 탐방로는 

대설로 통제됐었다.

14일 새벽 2시, 

한라산 국립 공원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정상까지 갈 수 있단다.

떨리는 맘으로 남편, 시동생을 일찍 깨워서 

해가 뜨기도 전 7시 조금 넘은 시간에 

성판악으로 출발!

그런데... 8시도 안 된 이른 시간에 

벌써 많은 사람들과 차들로 

성판악 주차장 주변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만 한라산의 등반길을 기다린 게 아니었다.

어렵게 길가에 주차를 하고 

아이젠과 스패츠를 단단히 장착, 

드디어 한라산 정상을 향하여 출발이다!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탄성이 새어 나온다.

겨울 왕국이다!

눈꽃이다!


눈이 깊게 쌓인 산 속에 좁게 난 길로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가는 바람에 

멈춰서 사진을 찍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좌우에 펼쳐진 설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 속에 인물이 꼭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자연 그대로 예술 작품이라 마구마구 셔터를 누르게 된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진달래 대피소까지 12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그 시간이 넘어가면 

정상 올라가는 길을 통제한다고...
원래 성판악에서 진달래 대피소까지 3시간 걸린다고 하니 

8시 30분에 오르기 시작한 우리는
안전하게 12시 이전에 도착할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오르고
또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어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다.



내려오는 사람들 중에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안 났다며

진달래 대피소까지만 오를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오르는 내내 조바심이 났다.

이번 기회에 생애 처음으로 

한라산 정상을 꼭 오르고 싶다는 바람이 

너무나 간절했다.

드디어 진달래 대피소에 11시 35분 도착!

시동생은 허벅지에 통증이 심해서 

아쉽지만 정상 등반은 포기하고 

대피소에서 쉬고 있기로 했다.

준비해 온 사과 2개를 셋이서 간단히 나눠 먹고 

남편과 나는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남편 말에 의하면 사과 맛이 그냥 꿀이란다!ㅋㅋ



배낭을 시동생에게 맡겨서 한결 가벼워진 남편과

눈에 다 담을 수도 없는, 이 아름다운 설경을 보며 

한라산 정상을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난 나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는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금까지의 풍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광경에 취해 힘든 줄도 모르고 올랐다.


내 발 밑에 구름이 있다.

어디까지가 눈 쌓인 산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알 수가 없다.


대설 뒤에 이렇게 맑은 하늘과 함께 

한라산을 오를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단다.


그야말로 

신이 내려주신 기회를 잡은 행운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한라산 백록담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나는 듯이 내려왔다.

정상에서 진달래 대피소까지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시동생과 

사발면에 김치, 막걸리와 오이를 아주 맛나게 먹고

잊지 못할 오늘을 기념하며 우리 셋 셀카 한 장!



내려오는 길, 오르는 길엔 여유가 없어 놓쳤던 포토존에서 

우리 셋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시동생은 내려오는 내내 정상까지 가지 못할 걸 못내 아쉬워하면서
형과 형수랑 등산을 하는 게 너무 좋다고 

자주 이런 기회를 갖자 한다.


결항, 회항, 지연을 다 경험하며 어렵게 제주도에 온 남편은
오늘 한라산 정상 등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산행이었다며
그 동안의 고생이 다 상쇄된 듯 행복해했다.



제주도의 모든 것들이 소중한 추억이 되었지만
5년 전 겨울 한라산 정상 등반은 

두고두고 나에게 좋은 기운을 주고 

우리 가족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겨울이 되니 한라산의 눈 내리는 풍경이 생각난다.

꼭 다시 겨울 한라산에 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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