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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14. 2023

박완서 읽기 6.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당연하죠, 꿈이 없는 삶은 너무 재미없잖아요."

'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직도 설렌다. 잘 때 꾸는 꿈도 내 무의식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아 숙면을 해친다는 원망도 없이 달게 맞이한다. 어느 날은 너무 많은 꿈을 꾸지만 잠에서 깨면 손에 잡히는 것 없이 날아가기 일쑤다. 그래도 가끔씩 새벽녘에 깨서 희미하게 남아 있는 꿈 이야기를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놓기도 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흔적이라도 잡고 싶은 간절함이 발동하곤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꿈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내가 되고 싶은 나, 내가 원하는 삶을 그리는 것이 달콤하다. 내 생애 첫 책의 제목도 『일을 그만두니 설레는 꿈이 생겼다』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애틋함과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거라는 기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막연한 설렘으로 나는 오늘도 꿈을 꿈다.


그런 의미에서 박완서 장편 소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제목부터 나를 끌어당겼다. 2021년 내 첫 책의 원고를 퇴고하면서 읽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만 다시 2년여 만에 다시 읽으니 또 새롭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이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 기억되어 있으니 기록하지 않으면 다 허사라는 생각마저 든다. <박완서 읽기>를 연재하기로 한 계획은 아주 잘한 일인 것 같다. 


이건 대단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한 평범한 여자가 꿈에서 깨어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직도 꿈을 못 버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꿈으로부터 배반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창출해내는 게 어찌 여자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인간의 운명이지요.
- 작가의 말 중에서


그랬다. 이 소설의 주인공 차문경은 평범한 여자였고 그녀에게 일어난 일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채플린의 말처럼 '사람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일 수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경우가 많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각자의 고통을 견뎌내며, 내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꿈을 꾼다. 그 꿈으로 인해 무릎이 꺾이는 순간이 오더라도… 


결혼과 이혼 후 여자는 딸 아이를 둔 사별한 남자와의 사랑과 재혼을 꿈꿨지만 남자의 홀어머니 반대로 철저하게 버려졌다. 남자의 아이를 낳아 엄마로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꿈꿨지만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여자의 아들을 빼앗으려 하는 남자와 그 어머니의 계략에 또 다시 여자의 삶은 흔들렸다. 여자로도 엄마로도 그녀가 꿈꾸는 삶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여자는 자신의 아들과 자기 식의 삶을 지켜냈다. 


돈이 얼마 없는 상태가 얼마나 좋아요. (...) 얼마 없다는 건 아주 없는 것보다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 돈이 얼마 없는 상태는 형제간에 우애, 절제, 근면을 배우기에 아주 적절한 상태였나 봐요. 육 남매가 다 쓸 만하게 되었거든요. (...) 돈이면 다라고 하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해줄 수 엇는 게 딱 한 가지 있잖아요. 돈이 얼마 없을 때의 활력 말예요.
p.189~190 주인공 차문경에게 조종위원 여자 산부인과 의사가 하는 말 중에서


아들을 빼앗으려는 혁주에 비해 '돈이 얼마 없는 상태'에 놓여 있는 차문경에게 큰 위로가 됐던 말이다. 나도 한때 가난했던 내 학창 시절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 사 남매는 나이가 들면서 그 시절을 추억 삼아 이야기하곤 한다. 부모님의 고생과 우리의 작아진 꿈은 안타깝지만, 우리는 그때 서로를 진심으로 걱정했고 작은 것에 고마워했고 어떻게든 꿈이라는 걸 놓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덕분에 우리 사 남매도 사람 구실하며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는 가난하진 않지만 '돈이 얼마 없는 상태'에 가깝다. 가끔 부자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형제간에 우애, 절제, 근면을 가르칠 수는 있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위로를 삼는다. 우리 가족에게도 돈이 얼마 없을 때의 활력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다. 


어떤 이들은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안전한 삶이라고도 한다. 덜 상처받기 위해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꿈을 꾸는 일은 쉬울지 몰라도 그 꿈을 지켜고 이뤄내는 것은 참으로 고단하고 지치는 일이니까. 하지만 꿈이 없는 삶은 생명력을 잃은 식물 같다.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피지도 못한 채 시들거나 죽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오늘은 햇볕에 감사하고, 내일은 한 모금의 물에 감사하면서 그렇게 계속 꿈을 꾼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하고 물으면 "당연하죠, 꿈이 없는 삶은 너무 재미없잖아요."라고 냉큼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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