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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21. 2023

박완서 읽기 7.  소설 《서울 사람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서울 사람들》박완서 소설 전집 18권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소설이다. 평소 같았으면 대표작 하나만 읽고 말았겠지만 나는 지금 "박완서 읽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좀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끝까지 완독을 결심하고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읽었다. 사실 작가의 입장에서 어느 작품이든 애정이 덜한 게 있을까 싶기도 하고 독자 입장에서, 그것도 글쓰기를 한 수 배워보고자 하는 수련생인 형편이니 스승의 글이라면 한 글자도 허투루 여기지 말아야지 하는 태도로 책을 읽는다.


《서울 사람들》에 나오는 인물들은 8,90년 대의 서울 사람들이라 지금과 비교하면 세련미가 좀 떨어지는 듯하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본 적이 없으니 공감도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물질 만능주의, 자본주의의 민낯, 인간의 허영과 욕망 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돌려서, 은근히, 은유를 써가며 이야기하는 글보다 읽는 맛이 시원했다. 소제목도 -  1. 올챙이 적 생각을 왜 해 2.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써 3. 무슨 복에 복처를 4. 숲 속의 야회장 5. 허영의 시장 6. 농장지대 7. 개천에서 용 나다 8. 세 개의 열쇠 - 옛스럽다. 어렸을 적 엄마와 함께 보던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들이다. 정겹기까지 하다.


아파트 값이 올라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 벼락 부자를 꿈꾸며 투기에 뛰어드는 사람, 결혼을 계급 상승의 기회로 보는 여자들과 그런 여자를 이용하는 사람들, 자식을 시장에 내놓는 상품으로 취급하면서도 마음에 전혀 거리낄 것이 부모, 자신의 성공을 집안의 부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개천의 용들과 그 용을 배출한 개천의 사람들. '설마 이런 사람들이 있겠어?' 하다가도 돈이라는 게 사람을 이렇게까지도 만들 수 있구나 싶어 한숨이 나오고, 이런 사람들과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게 좀 두렵기까지 했다. 내가 너무 돈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주의 시대에 가져야 할 욕망이 너무 없는 걸까? 세상이 요지경이다.


그녀는 연탄을 안 갈고도 지난겨울의 그 혹독한 추위를 전혀 모르고 지낼 수가 있었고, 기후에 대한 무관심은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만큼 서로 사는 사정이 빤했고, 야들야들하리만치 편리에 잘 길들여진 얼굴은 내 얼굴이자 이웃들의 얼굴이었고, 적어도 서울 사람들이라면 다 그만큼은 살고 있으려니 했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p.203


인천에서 송도 신도시는 구송도와 구분해서 불린다. 도시의 풍경이 다르고 집값이 다르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의식도 다른 듯하다. 나는 송도 신도시에서 일하지만 사는 곳은 다리 하나를 건넌 동네다. 그러다보니 사는 모양새나 의식은 구도시에 적응이 되어있고 전에는 잘 몰랐던 신도시 사람들의 윤택한 생활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논술 수업을 하면서 신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의 부족함 없는 모습에 성인이 된 내 자식들이 결핍을 느끼며 자라지나 않았나 걱정스럽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수업할 때는 과연 신도시의 아이들이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비슷한 환경의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다른 동네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고 다 그만큼은 살고 있으려니 생각하니 과거의 빈곤했던 시절은 물론 현재의 가난, 미래의 어려움을 알 길이 없다. 굳이 가난을 간접 경험이라도 하게 해야 하나, 가끔은 헷갈린다.


현대판 토끼는 결코 낮잠 같은 거 자지 않고 정력적으로 달렸다. 거북이의 승산이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만약 혜진이가 거북이와 토끼 걸음의 차이를, 타고난 운명이나 공정한 실력 차로 받아들일 수만 있었다면 훨씬 마음 편하게 거북이걸음에 자족할 수 있었으련만, 그녀 역시 토끼 걸음에는 반드시 속임수와 비리가 감춰져 있다는 사회적 통념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가 못했다. 분하고 억울했다. 이 세상에 억울한 것처럼 못 견딜 불행감이 또 있을까.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p.259


서울에서 살고 싶지 않아, 부자라고 다 행복한 건 아니잖아, 아등바등 돈 벌기에만 급급해서 살고 싶지 않아, 그동안 스스로 했던 말들이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억울함을 어떻게든 풀어보려는 몸부림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나는 거북이걸음에 만족하는 지금의 내가 싫지 않다. 나보다 잘나고 돈 많은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낄 때도 있지만 토끼를 따라가려고 애쓰는 거북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 성실함과 능력으로 한 발씩 앞으로 내딛는 것이 힘있는 사람에게 기대어 지금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서거나 경쟁자를 밀어 내면서 혼자 1등이 되는 것보다 가치가 있고 무엇보다 나에게 어울리는 편안한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 사람들》을 읽으며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이렇게 살지는 않으련다 하는 마음이 굳어졌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사랑, 가족, 우애, 보람, 낭만, 행복 등 우리를 인간답게 살게 하고 사람으로서 떳떳하게 만드는 건 돈보다는 사람에 대한 진심이며 세상살이에서 느끼는 정직한 감정이다. 어른으로서 내 자식들에게 그리고 나와 논술 수업을 하는 아이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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