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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Mar 05. 2024

좋아하는 일이 내 삶의 기준!

오늘도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기준" 하고 오른손을 번쩍 들고 외치면 양쪽으로 아이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운동장에 먼지가 일고 땅에 운동화 끄는 소리가 난 뒤 나를 중심으로 반듯한 사람줄이 만들어졌다. 국민학교 시절 시골 운동장에서 운동회 연습을 할 때마다 나는 주로 '기준'이 되었다. 당시 우리 입포국민학교는 학년별로 한 반밖에 없어서 나는 1학년 1반, 2학년 1반, 그렇게 1반만 하다가 6학년 1반으로 졸업했다. 그 1반에서 나는 6년 동안 부반장이었다. 그리고 6학년 때는 우리 국민학교 최초로 여자 학생 회장이 되어 전교생 앞에서 "교장 선생님께 경례!"를 외쳤다. 작은 충청도 시골 마을, 대각선으로 100m 달리기 기록을 쟀던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나는 씩씩하게 다른 아이들의 기준이 되었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아이, 그렇게 다 잘하는 어른으로 살게 될 줄 알았다.


13살의 당찬 여자 아이가 어느새 50대의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년 아줌마가 되었다. 아이들 중심에서 기준이 되었던 아이는 어른이 되는 동안 중심을 잃고 숱하게 흔들리며 살았다. 15살 겨울, 도시로 쫓겨온 이후로 누군가의 기준이 되기보다는 시골과는 다른 낯선 운동장에서 기준을 찾지 못하고 헤매었다. 공부는 그럭저럭 하는 여고생으로 전기는 낙방하고 후기 대학에 들어갔고, 20점 만점의 체력장에서 쓸데없이 만점 이상의 체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운동 잘하는 아이라는 명예를 지키고자 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현실은 마음먹는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엔 작은 몸으로도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어른이 되고나서는 큰 몸으로 작게 웅크리며 살아야 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잘하는 게 있기나 한 건지, 잘 모르는 어른으로 살았다.


이제 중심에 서는 걸 바라지도 않고, 누군가의 기준이 되겠다는 것도 언감생심이다.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작은 우리 집 책상에서 읽고 쓰는 일이 내 삶의 기준이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소리치지 않고 그저 소리 없이 하는 일, 어떤 보상이 있거나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하게 되는 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내게는 하루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더 많이 읽고 싶어서 새벽에 일어난다. 더 잘 쓰고 싶어서 매일 쓴다.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산책을 포기하는 날도 있다. 끝맺지 못한 글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공부로든, 운동으로든, 직함으로든, 다른 이들보다 앞에서 크게 이름 불리고 싶었던 나는 지금 어디에도 없다. 잘하는 게 뭔지는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는 확실히 아는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는 지금의 나를 보며 "이주용, 맞아?" 할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나와 인연이 있던 사람들은 "많이 달라졌네."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편해지기 전까지 나의 예전 모습을 기대하는 이들을 위해 나는 어색하게 날 포장하기도 했다. 작아진 날 크게 부풀려 서툰 연기를 하고 돌아와 부끄러움에 몸서리를 친 적도 있다. 내 안의 것이 기준이 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을 의식한 결과다. 가장 편안해진, 나다운 내가 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누구를 만나도 자연스러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책과 글이다. 


두 아들의 엄마로 자식 키우는 문제로 힘들었을 때 책에게 조언을 구했다. 답답한 속을 글로 풀어내면 숨통이 트였다. 남편에게 서운한 일이 생겨서 이 세상에 혼자라는 기분이 들 때면 책이 친구가 되어주고 글과 수다를 떨었다. 집안일에 치여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날에도 어떻게든 틈을 내서 책으로 피하고 글로 방패삼아 견뎠다. 가끔 돈 버는 일이 지겹다 느껴지면 그래도 책과 글을 가르치는 논술쌤이라 얼마나 다행이냐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금방 힘을 낼 수 있었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꾸며 내일의 희망을 생각한다. 그것도 늘 내 곁에 있는 좋은 책과 매일 놓지 않는 글쓰기 덕분이다.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찾기까지 참 많이 헤매고 오랫동안 흔들렸다. 좋아하는 일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걸 나이 많은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진즉에 알았더라면 좀 덜 헤매고 그렇게 오래 흔들리지 않았을 텐데...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삶의 기준을 세우고 뚜벅뚜벅 걸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지금의 나는 전보다 훨씬 안정된 모습으로 남편에게는 편안한 아내, 두 아들에게는 든든한 엄마 역할을 비교적 잘 해내고 있다. 책이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글쓰기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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