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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Mar 14. 2024

오늘 <박완서 읽기> 연재를 마칩니다!

박완서 읽기 19. 박완서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짧은 소설 《나의 아름다움 이웃》이 도서관 하루 연체 중이다. 지난 1,2주 책에 욕심을 내다보니 구입한 책과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은 책이 섞여 책상에 10권 가까이 쌓여 있다. 온 세상 책이 다 궁금한 호기심꾸러기처럼 이 책 읽다가 저 책으로 넘어가고 다시 이 책으로 옮겨가며 닥치는 대로 읽는 중이다. 목요일에 <박완서 읽기>를 연재하면서 웬만하면 한 권의 책에 있는 모든 작품을 다 읽으려고 했으나 이번 책 《나의 아름다움 이웃》의 짧은 소설 몇 편은 결국 다 읽지 못하고 도서관에 반납했다. 책을 다 읽기 전에 어설프나마 짧은 소설 한 편 써보자는 게 목표였는데 그것도 하지 못했다. 소설은 짧다고 해서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핑계 삼아 소설 쓰기는 좀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아직은 자신도 없고 사실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 지도 감을 못 잡겠다. 최근에 출간된 박완서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도서관에 예약해 뒀다가 받았다. 짧은 소설에서 에세이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역시 박완서! 소설도 좋은데 에세이도 만만찮게 좋다. 글에 내맘이 보인다. 


박완서 작가는 이미 돌아가셨고 그 뒤에 출간된 책이라 그동안 읽었던 글과 겹치는 것들이 꽤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박완서의 글을 반복해 읽고 계속 공감을 하고 위안과 응원을 얻기도 한다. 참으로 부러운 작가의 삶이다. 너무 유명한 에세이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읽으며 나는 최근에 무엇에 환호했나를 생각했다. 아쉽게도 크게 소리치며 기뻐한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두 아들에게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고 남편과 나는 소소하게 서로를 위로하며 살고는 있지만 전에 비해 힘이 많이 빠졌다. 우리 가족 모두 그동안의 경쟁과 승패에 지쳤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과 막연함에 힘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박완서는 처음 보는 꼴찌 마라토너에게도 손바닥이 붉게 부풀어 오를 정도로 박수 갈채를 보내며 새로운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사랑하는 내 가족과 너무나 애틋한 나 자신에게 어떤 응원을 하고 있나. 


 <추한 나이테가 싫다> '나는 올 1년 내내 이렇게 가족들에게 비겁과 보신을 가르쳤다. 잠 안 오는 밤 문득 이런 내가 싫어진다. 구역질 나게 싫어진다./ 이런 1년을 보내고, 또 한 살 미운 나이를 먹고, 추한 나이테를 두를 내가 싫다. 잠 안 오는 밤, 나는 또 1년 동안 내가 작가랍시고 쏟아 놓은 말들이 싫어진다.'라는 부분을 읽으며 박완서 같은 대작가도 자신이 싫어지고 자신이 쓴 글이 싫어지기도 하는구나 했다. 동질감 비슷한 걸 느낀 것 같다. 나는 어젯밤 맥주와 쥐포를 먹고 소화도 못 시킨 채 불편한 배로 잠자리에 든 내가 싫었다. 5개월 가까이 매일 브런치에 연재한 글들이 쓸모 없게 느껴져 그 글들을 어떻게 처리하나 생각하다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 그래서 결국 7개의 연재를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무거워진 몸으로 무거운 결정을 내리고야 말았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예쁘다. 특히 내 애들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을 안 내고 바라볼수록 예쁘다. 
제일 예쁜 건 아이들다운 애다. 그다음은 공부 잘하는 애지만 약은 애는 싫다. 차라리 우직하길 바란다. 
활발한 건 좋지만 되바라진 애 또한 싫다.
특히 교육은 따로 못 시켰지만 애들이 자라면서 자연히 음악·미술·문학 같은 걸 이해하고 거기 깊은 애정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
커서 만일 부자가 되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부자가 못 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대강 이런 것들이 내가 내 아이들에게 바라는 사람 됨됨이다. 그렇지만 이런 까다로운 주문을 아이들에게 말로 한 일은 전연 없고 앞으로도 할 것 같지 않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에서


가끔 무자식을 부러워할 때도 있지만 내가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지금보다 얼마나 미성숙한 인간이었을지를 생각하면 두 아들에게 고마울 때가 더 많다. 자식을 키우는 일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고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는 일도 아니다. 내 아이에게 딱 맞는 양육 방식이나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라 아이들이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내 실수와 후회와 아쉬움만 쌓여 간다. 그렇게 부족한 엄마이면서도 자식에게 바라는 건 있어서 기대를 품기도 하고 욕심을 내기도 한다. 요행을 바라는 기대와 인풋에 비해 과한 아웃풋을 원하는 욕심은 대부분 실망과 자책의 벌을 내린다. 군대 전역을 하고 복학 대신 알바를 하면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 좀 해보겠다는 큰아들, 재수까지 했는데 대학 합격을 하지 못하고 군 입대 신청을 하고 있는 작은아들, 두 아들의 미래는 무한히 열려 있지만 그래서 가끔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두렵기도 하다. 


책 읽고 글 쓰는 엄마라서 자식에게 지혜롭고 든든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씩 나 자신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부족한 어른이 바로 나라서 미안하고 부끄러워진다. 매일 브런치에 글을 연재한다고 아들들을 등지고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 많았다. 밥을 차리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빨래를 널다가도 읽고 있던 책을 마저 읽고 싶어서 벌컥 짜증을 내기도 하고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며 징징거리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 좀 생각해볼 일이다. 목적 없이 그냥 읽자, 무조건 써보자 하는 게 지금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요일마다 썼던 브런치 연재 글을 하나씩 마무리하기로 한다. 그동안 내 글의 정체성을 생각해봐야겠다. 


목요일마다 연재했던 <박완서 읽기> 덕분에 나는 존경하는 작가의 글에 푹 빠져 지냈다. 닮고 싶어서 안달이 난 적도 있고 흉내라도 내고 싶어서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가장 큰 수확은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을 가슴 깊이 깨달았다는 것이다.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는 성실함이 뿌듯함이기도 했지만 차오르지 않은 상태로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복처럼 글을 쓴 건 아닌지 자주 뒤돌아보게 됐다. 그래서 잠시 쉬어보기로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다양한 책들에 빠져보기도 하고 진짜 쓰고 싶을 때 글을 쓰는 짜릿한 맛도 느껴보고 싶다. 


오늘 <박완서 읽기> 19화로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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