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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29. 2024

나도 소설 한번 써 볼까?

박완서 읽기 17. 박완서 짧은 소설 『나의 아름다운 이웃』

소설 읽기는 매일 나의 일상이다. 먹고 이를 닦는 것처럼 습관이 되어서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 읽던 소설을 마저 읽기도 하고, 끊김 없이 읽고 싶은 소설은 무엇에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도서관에서 권을 읽고 때도 있다. 잠자리에서만 읽는 소설도 있다. 스탠드 아래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설을 읽는 맛이란 오는 밤에 먹는 고구마와 동치미처럼 달콤하고 짜릿하다. 불면증을 견디는 이유도 소설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에 한두 번씩 깨어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준비되어 있는 소설책이 있으니 잠을 이어 자지 못하는 그리 억울하지는 않다. 오늘 아침에도 이불 속에서 스탠드를 켜고 읽는 나에게 남편이 묻는다. "오늘도 잤어?" 불면증을 걱정하며 비타민 D를 주문한 남편의 걱정스러운 말투가 정겹다. "일하러 가지만 않으면 자고 이렇게 소설책 읽으며 살아도 괜찮을 같은데..." 진심이었다.


하지만 소설 쓰기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이다. 동서고금 어떤 소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독자지만 내가 소설을 쓴다는 건 그저 아주 멀고 먼 꿈이고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 억울할 게 없는,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이다. 그런데 박완서 짧은 소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으며 속에서 무언가가 자꾸만 움찔움찔거린다. '너도 해봐?' '짧으니까 해볼 수 있지 않겠어?' '책을 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써보는 건데 뭐 어때?' '너도 이런 경험 있잖아?' 양쪽 귀에 대고 누군가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댄다.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이런 소재라면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짧은 소설 한 편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무모한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서점 앱에서 한국대표작가 29인의 박완서 작가 콩트 오마주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발견했다. 29명의 소설가들이 박완서의 짧은 소설처럼 콩트를 써서 엮어낸 책이다. 이들에게 박완서는 어떤 영향을, 어떤 이야깃거리를 줬을지 궁금해졌다. 도서관에 예약했다.


부끄럽지만 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소설 작법을 읽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우선 박완서 작가를 따라서 그냥 끄적여보련다. '무슨 얘기를 써야 하나'가 가장 큰 숙제이자 걸림돌이었는데 박완서 작가의 짧은 소설  48편이 힌트가 될 것 같다. 그래서 48개의 메모를 하기로 했다. 소설의 소재가 뭐였는지, 독자에게 어떤 주제를 전달하려고 했는지,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은 뭐였는지 적어가며 읽고 있다. 적어도 10개 정도의 소재는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소설 쓰기, 내 생애 최초의 시도이다. 아직 써보지도 않았는데 멀기만 했던 목적지를 향해 첫 발을 내딘 것처럼 두근거린다. '처음'이라는 설렘과 떨림이 눈물나게 좋다.



마른 꽃잎의 추억 1화랑에서의 포식자신을 따르던 많은 남자들에 대한 추억을 마른 꽃잎으로 간직한 여자.
그 꽃잎 주인공 중에 한 명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 남자는 화가로 성공해서 성황리에 전시회를 진행 중이다.      그는 성공한 예술가답게 자신만만하고,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얼굴엔 살과 기름이 올라 있었고 눈빛은 자기만족으로 부옇게 침체돼 있었다.     
마른 꽃잎의 추억 2엉큼한 장미『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시집에 있는 대여섯 가지의 눌려진 꽃 – 나를 열렬하게 추종하던 총각들에 대한 추억     아직 총각인 새끼 재벌 집에 방문했다. 그 남자는 돈과 남자를 탐하는 뻔한 여자로 나를 대한다.  “나는 낭만을 꿈꾸었나 봐.”“낭만? 흥, 지금이 어느 때라고. 지금은 70년대야.”     
마른 꽃잎의 추억 3못 알아본 척한 남자     젊었을 때와는 달리 성공한 남자와의 재회.

나는 끝내 그를 못 알아본 척했다. 그는 다방을 나올 때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고액의 수표밖에 없다며 찻값 치르는 일을 사양했다. 자기를 잘 못 알아본 데 대한 그의 복수를 나는 달게 받았다.      
마른 꽃잎의 추억 4조각난 낭만총각 때 밤중에 전화를 걸어 혼자 듣긴 아깝다며 함께 음악을 듣자고 했던 낭만 총각은 사랑하지만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사장님의 사위가 되어 잘 살고 있다. 그는 지금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옛 여자에게 비는 것조차 부끄러움 없이 한다.     
나는 왜 낭만을 찾는답시고 간직하고 있는 낭만이나마 하나하나 조각내려 드는 것일까? 이 낭만이 귀한 시대에.     
마른 꽃잎은 없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나는 몇 사람이 있다. 철 없던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만남, 지금 생각해도 후회스러운 관계,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잊히지 않는 이름, 30년 전의 얼굴로 기억되는 사람 등.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주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우연히 보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본 적도 있다. 그 상상을 짧은 소설로 써보면 좋을 것 같다. 갑자기 소설가처럼 이야기가 샘 솟는 듯하다. 자꾸만 웃음이 난다. 




마른 꽃잎의 추억 1

화랑에서의 포식

자신을 따르던 많은 남자들에 대한 추억을 마른 꽃잎으로 간직한 여자.

그 꽃잎 주인공 중에 한 명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 남자는 화가로 성공해서 성황리에 전시회를 진행 중이다.

      

그는 성공한 예술가답게 자신만만하고,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얼굴엔 살과 기름이 올라 있었고 눈빛은 자기만족으로 부옇게 침체돼 있었다.     


마른 꽃잎의 추억 2

엉큼한 장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시집에 있는 대여섯 가지의 눌려진 꽃 – 나를 열렬하게 추종하던 총각들에 대한 추억     

아직 총각인 새끼 재벌 집에 방문했다. 그 남자는 돈과 남자를 탐하는 뻔한 여자로 나를 대한다. 

 

“나는 낭만을 꿈꾸었나 봐.”

“낭만? 흥, 지금이 어느 때라고. 지금은 70년대야.”     


마른 꽃잎의 추억 3

못 알아본 척한 남자     

젊었을 때와는 달리 성공한 남자와의 재회.


나는 끝내 그를 못 알아본 척했다. 그는 다방을 나올 때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고액의 수표밖에 없다며 찻값 치르는 일을 사양했다. 자기를 잘 못 알아본 데 대한 그의 복수를 나는 달게 받았다.      


마른 꽃잎의 추억 4

조각난 낭만

총각 때 밤중에 전화를 걸어 혼자 듣긴 아깝다며 함께 음악을 듣자고 했던 낭만 총각은 사랑하지만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사장님의 사위가 되어 잘 살고 있다. 그는 지금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옛 여자에게 비는 것조차 부끄러움 없이 한다.     


나는 왜 낭만을 찾는답시고 간직하고 있는 낭만이나마 하나하나 조각내려 드는 것일까? 이 낭만이 귀한 시대에.     



마른 꽃잎은 없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나는 몇 사람이 있다. 철 없던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만남, 지금 생각해도 후회스러운 관계,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잊히지 않는 이름, 30년 전의 얼굴로 기억되는 사람 등.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주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우연히 보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본 적도 있다. 그 상상을 짧은 소설로 써보면 좋을 것 같다. 갑자기 소설가처럼 이야기가 샘 솟는 듯하다. 자꾸만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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