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Mar 07. 2024

지난 시간들 속, 많은 사람들

박완서 읽기 18. 박완서 짧은 소설「나의 아름다운 이웃」

박완서 짧은 소설「나의 아름다운 이웃」의 줄거리는 이렇다. 나는 결혼하고 시댁에 들어가 27년을 25평 짜리 한옥에서 산다. 시어머니는 그녀를 '아가'라고 불렀다. 유난히 노인이 많고 유대 관계가 좋았던 한옥 마을에서 나는 '만년 새댁'이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토록 소원하던 아파트로 이사했다. 젊은 주부들이 대부분인 아파트에서 나는 이웃의 무관심에 주눅 들고 할머니라 불리는 신세가 되었다. 다행히 착하고 밝은 여자가 이웃이라 행운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녀는 암으로 수술까지 하게 되고 고1 큰애가 대학교 갈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빈단다. 나는 그녀의 해맑은 무욕에 병을 이겨낼 거라는 희망을 느끼고 진심으로 그녀의 건강을 빈다.  


7페이지밖에 안되는 짧은 소설에 내 삶과 공통점이 너무 많아 놀랐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의 인생이라 해도 이렇게 소설이 될 수 있나보다. 다시 한 번 박완서 작가의 이야기 제조 능력에 감탄한다. 나는 한옥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네 식구가 살고 있는 24평 아파트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시아버지는 나를 '아가'라 부르셨고 그 호칭은 큰아들을 낳고 나서도 꽤 오래 지속되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시외삼촌 내외분이 자주 다녀가셨고 앞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깐깐한 큰어머니가 불시에 가정 방문을 하셔서 신혼 당시에는 적잖이 신경을 쓰며 살았다. 그래도 착하고 소박한 시부모님 덕분에 6년 가까이 '새댁'으로 불리며 귀여움을 받았다.


그리고 6,7년 쯤 분가해서 살다가 다시 이 아파트로 들어와 우리 부부는 결혼 25년을 이 집에서 맞았다. 같은 아파트지만 이제는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먼 친척이나 가까운 이웃과의 왕래 없이 우리 네 식구만 단출하게 산다. 편하기는 하지만 나를 '아가'나 '새댁'으로 불러주는 사람은 없고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들과도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지나치는 아파트 생활이 가끔은 정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골에서 산 세월보다, 시부모님과 함께산 시간보다, 도시 아파트에서 이런 생활을 한 게 훨씬 오래 되었으니 익숙해졌지만 노후에는 문을 열면 앞에 작은 마당이 있고 벌판이 보이는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다. 땅을 밟으며 고개 들어 주변에 정답게 인사 나누며 살았으면 싶다. 그때는 나도 아름다운 이웃 하나 만날 수 있으려나,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이웃이 될 수 있을 지도...


암에 걸린 사람 이야기만 나오면 큰언니가 자연스럽게 생각나서 단박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소설 속 여자는 겨우 몇 년 더 사는 게 과한 욕심이라고 말한다. 1년 반을 병원에 다니지만 점점 말라가는 우리 언니는 어떤 욕심을 품고 있을까. '뭐 하고 싶냐'는 물음은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을 묻는 것 같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뭐 먹고 싶냐'고 물으며 함께 맛집을 찾아다닌다. 30년 넘게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언니는 암으로 강제 휴직을 하고 결국 하고 싶은 걸 맘껏 할 수도 없는 몸이 되어 퇴직을 했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는 TV에서 이집트 여행을 하는 걸 봤는데 건강한 사람이 뛰고 걷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부러웠다고 말해 말문이 막혔다. 20분 이상 걷지도 못하고 계단 오르는 것도 힘겨워하는 언니에게 '세계 여행도 갈 수 있어!'라는 소리는 할 수 없어 난감해하는데 '이젠 틀렸지, 뭐'하는 뒷말에 쏟아지려는 눈물을 삼키느라 진땀을 뺐다.


어젯밤 잠자리 스탠드 밑에서 박완서 짧은 소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고 지난 시간들 속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 밤새 뒤척였다. 오늘 출근할 생각에 애써 잠을 청했지만 결국 숙면은 포기하고 새벽에 일어났다. 아가로, 새댁으로 불리던 나는 어느새 아줌마가 되었고 머지 않아 할머니로 불려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나이가 되었다. 탄생보다는 죽음을 자주 목격한다. 여기저기 삐거덕거리는 내 몸이 이제 좀 쉬라고 하는데도 아직 내 손이 가야할 곳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쌓여 있어 잠자는 시간조차 속이 시끄럽다.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불안한 인생에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줄이기보다는 더 늘리고 있으니 말이다. 못하게 되는 날이 오기 전에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자 하는 게 맞는 건지,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삶의 속도를 확 줄이는 게 지혜로운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다가 탈 나는 게 나은 걸까. 짧은 소설 한 편에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 놔두질 않는다. 이제는 수업 준비해야 하는데...





이전 17화 나도 소설 한번 써 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