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여자처럼 의연하게, 당당하게, 현명하게
며느리, 엄마, 아내, 누나, 여자의 삶과 죽음!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중년이 되면서 덜컥 겁이 날 때가 있다. 내가 병에 걸리면 어떡하지?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갑자기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면? 부질없는 생각이라 하기엔 우리나라 암 발병률은 너무 높고, 병이라는 게 나이순으로 오는 게 아니니까… 얼마 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고 감명 받아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었던 차에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1)을 다시 한 번 보기로 했다.
오래 전에 봤던 영화이기도 하고 스토리는 좀 뻔한 구석이 있어 눈물을 쏟아내진 않았지만 병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눈덩이처럼 커져버렸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건강 검진 받은 게 언제였지? 나는 벌써 자궁을 들어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죽을병에 걸리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세 남자를 어떻게 하지? 난 남겨 줄 통장도 없는데… 보험금은 얼마나 되려나?
나 죽는 건 견딜 만할 것 같은데 남겨질 사람들이 걱정이다. 아직 못 해 준 게 너무 많은데… 나중에 시간이 되면, 돈 많이 벌면 해 줘야지 하고 미뤄둔 것들이 생각났다. 어쩌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앞으로도 돈을 많이 벌기는 틀린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을 부지런히 해야 할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며느리 인희는 지극 정성으로 모셨던,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남겨 두고 가는 것이 제일 맘에 걸린다. 남은 가족들에게 짐이 될 것이 뻔하니까. 시어머니께 지극정성인 주인공을 보며 요양 병원에 혼자 있는 울엄마에게 무척이나 미안해졌다. 더 자주 보고, 더 많이 만져 주고, 엄마 이야기를 좀 더 오래 들어줄 걸. 나는 며느리 인희처럼 헌신적이지 못했다.
딸의 엄마 인희는 유부남을 오랫동안 사랑한 큰딸에게 화를 내지도, 서운함을 내보이지도 않는다. 끝까지 딸을 믿는다. 스스로 판단하고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준다. 죽음을 앞두고도 재촉하거나 서두르지 않는 엄마의 태도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큰아들에 대한 나의 조급함을 반성했다.
아들의 엄마 인희는 아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 보청기를 끼고라도 살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해서 평생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결심했단다. 죽기 전에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고기를 사 주고 아들에게 책임감을 가르치는 엄마의 마음이 애처롭다. 나는 아직 내 귀염둥이 작은아들을 떠날 수 있다는 상상은 도저히 못하겠다.
누나 인희는 망나니 같은 남동생 뒷바라지로 등골이 휘었다. 자신이 죽으면 이놈이 어찌 살아가나 걱정이다. 단 한 가지도 이 여자를 편안하게 하는 게 없는 것 같은데 그녀의 삶은 담담하고 죽음은 정돈되어 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내게 주어진 삶과 죽음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 않냐고 그녀는 몸으로 말했다.
아내 인희는 자신의 상처 때문에 아내의 아픔에 친절하지 않았던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다. 당신이 말투는 그래도 원래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걸 나는 기억한다는 듯, 나에게 쌀쌀맞게 구는 건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울화 때문인 걸 다 안다는 듯 남편의 모든 걸 용서하고 보듬어 안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인희의 삶은 너무 고되고 웃을 일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음을 앞둔 그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평범한 일상이었다. 안 되겠다. 아프기 전에 건강관리 좀 해야겠다.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더 친절해야겠다. 힘들다고 투덜댈 시간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들에 더 정성을 다해야겠다.
마음이 급하다. 정리 안 된 사진들도 맘에 걸리고, 식구들 각자 자기 옷 찾기 편하게 옷장 안도 정리해야 하고, 간단한 반찬 정도는 해 먹을 수 있게 가르쳐야 할 것 같고, 내 물건도 처리하기 쉽게 분류해서 넣어 두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다.
며느리, 엄마, 아내, 누나, 여자의 삶과 죽음을 그린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보며 나의 성실한 삶과 아름다운 죽음을 다짐한다.
자유롭고 용기 있는 여자의 행복한 미소를 배운다!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
혼자 사는 여자가 부러울 때가 많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자식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나를 반쯤만 이해하는 남편과 마주하다 보면, 끝도 없는 집안일에 지쳐가고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에 나는 '솔로'를 꿈꾼다. 내가 결혼하지 않고, 자식도 남편도 없는 싱글이었다면 얼마나 가벼운 삶을 살고 있을까.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의 반 이상은 덜어졌을 테고 갈등과 선택의 기로에서 좀 더 용기 있는 여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이미 20여 년 전에 결혼했고 두 아들의 엄마가 되어버린 나를 이제 와서 되돌려 놓을 방법도 없고 부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지금의 나인 채로,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을 달고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수밖에 없다. 『철학하는 여자가 강하다』를 읽고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고, 나 스스로 강해지겠다고 선언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나는 또 흔들린다. 롤모델이 필요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2003)을 본다.
영화는 캐서린 왓슨(줄리아 로버츠)이 자유로운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잉글랜드의 명문 웰슬리에 새로운 미술사 교수로 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시기는 1953년 가을이다.
보수적인 명문 여학교 웰슬리에서는 최고의 교육을 통해 현모양처를 양산한다. 남편의 말을 잘 따르는 아내, 아이를 키우는 데 선수급인 엄마, 노련하게 집안일을 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몸가짐을 유지하는 완벽한 여성이 되기 위해 물리를 공부하고 수영을 배우며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웰슬리의 여학생들은 좋은 조건의 남편과 결혼해서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여자로서의 최고의 삶이라고 부모에게서 배웠고 학교에서 교육받는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여자들끼리 만나면 남편의 경제력과 자식의 성공을 자랑 삼아 이야기하곤 한다. 차려 입고 갈 옷이 없어서, 명품 가방을 메고 오는 친구가 불편해서 동창회를 꺼리는 여자들도 많다. 남자들도 다르지 않다. 아내의 미모, 살림 솜씨, 자식 교육 등이 자랑거리가 된다. 자신이 능력만 있다면 여자는 집에서 아이 키우며 내조 잘 하는 것이 최고하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아직도 많다.
미모와는 달리 냉정하기 짝이 없는 베티(커스틴 던스트), 똑똑함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조안(줄리아 스타일스), 프리섹스 물결에 빠진 지젤(매기 질렌홀), 자신이 연주하는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과는 달리 연애에는 쑥맥인 콘스탄스. 개성 넘치는 여학생들도 보수적인 웰슬리의 교육을 받으며 똑같은 기준으로 재단되고 자기만의 색깔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부모와 학교는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자유롭고 진취적인 캐서린은 처음부터 웰슬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매력적인 여성이었지만 그곳의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그동안 굳건하게 쌓아왔던 것들을 무너뜨릴 것 같은 위기 의식을 느끼게 했다. 똑같은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그 기준에 맞는 여성이 되라고 교육하는 곳에서 캐서린은 학생들에게 다르게 보는 시선, 자유로운 주장을 가르쳤다.
웰슬리의 여학생들이 캐서린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솔직하고 당당한 그녀는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매력적이다. 그녀는 남편과 가정에서만 행복의 조건을 찾았던 엄마와 다르고, 틀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가르쳤던 다른 교수들과 달랐다. 캐서린에게 결혼은 삶의 목표가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뜨겁게 사랑할 줄 알지만 남자에게 모든 걸 맡기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신념이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위축되고 비난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결국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먼저 결혼해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완벽한 행복을 보여주려고 했던 베티가 여자로서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는 엄마에게 말한다. '모나리자 그림 속 여인은 과연 자신의 미소만큼 행복했을까'라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나의 성공이나 행복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타인에 의해 평가받는 것도 아니다. 캐서린은 조건이 덕지덕지 붙은 웰슬리의 재임용을 거부한다. 그녀를 통해 변화된 학생들의 감동적인 배웅을 받으며 그녀는 당당하게 유럽으로 향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떠날 수 있는, 그녀의 용기와 자유가 한없이 부러웠다.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에 주눅들지 말고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라고 말한다.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기 위한 어색한 미소는 집어치우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길 위에서 눈치 보지 말고 '껄껄' 웃으란다. '그래 까짓것, 인생 뭐 별 거 있어? 어차피 누구나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남편의 성공, 아내의 희생은 당연하지 않다!
영화 <더 와이프>
나의 책을 쓰겠다는 목표가 자꾸만 뒤로 물러나고 있다.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던 손이 어느새 설거지 통에 들어가 있고, 글쓰기 소재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문득 세 남자를 위한 저녁 메뉴를 생각하곤 한다. 결혼한 여자로, 한 남자의 와이프로, 두 아들의 엄마로 20년을 살았다. 뒤늦게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나의 꿈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대학 시절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던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나와 달리 재능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작가가 되는 대신 한 남자의 와이프가 되었다. 영화 <더 와이프>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스타 작가 남편의 킹스메이커를 자처한 아내의 이야기다.
조안은 대학 시절 작가 지망생이었다. 재능이 뛰어났고 열의도 있었지만 당시는 여자가 작가로 성공한다는 것이 쉽지 않던 시기였다.
"작가라면 글을 써야 해요."
"작가라면 글이 읽혀야죠."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읽히는 글을 쓸 자신이 없었던 조안은 작가의 꿈을 접었다. 대신 유부남 교수와 사랑에 빠져 그의 아내가 되고 재능이 부족한 남편의 글에 깊게 관여하며 평생을 살았다.
남자가 반장, 여자는 부반장이 되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 있었다. 조안도 교수였던 남편이 작가가 되고 자신은 그의 아내가 되어 내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겼던 것 같다. 여자가 작가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조안은 순응했고 남편의 이름 뒤에 숨어 글을 썼다. 사랑하는 남편의 성공을 위해 하는 일이라 그녀는 그런 삶이 행복이라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남편 조셉은 아내에 비해 재능이 부족한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아내의 재능으로 얻은 거짓 명성으로 인해 어른으로 성숙할 기회를 놓친 사람 같다. 나이는 먹었는데 여전히 아내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남자 아이다.
여자는 남자의 기를 죽이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책에서 배운 건 아니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다. 여자 목소리는 담장 밖을 넘지 않아야 하고 한 집안에서 딸의 성공보다는 아들의 성공이 더 환영받는다. 남자의 성공 뒤에 여자의 희생은 당연하고 남편보다 잘 나가는 아내는 남자의 기를 죽이는 기 센 여자로 오인받기 일쑤다.
조안은 성공한 남편 뒤에서 박수 치는 아내가 되었다.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와이프로 살았다. 그런데 그녀는 남편 곁에서 도무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재능으로 정상에 오른 남편 옆에서 조안은 무슨 생각을 할까? 조셉은 그녀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살아온 것일까?
"그의 영혼이 천천히 쓰러진다
이 세상에 힘없이 내리는 눈 소리를 들으며
눈은 힘없이
마치 지금이 마지막 하강인듯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떨어진다"
교수인 남편이 읊었던 시다. 여대생 조안이 조셉에게 빠져들기에 충분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시다. 그런데 이 시를 흰머리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남편이 젊은 여자를 유혹하며 읊조린다.
조안이 느끼는 쓸쓸함과 허망함은 어쩔 수 없다. 재능은 없지만 여자를 유혹하는 재주와 식지 않는 성욕을 가진 남자를 사랑하고 그의 아내로 살아온 것은 그녀의 선택이었다. 아이처럼 그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고 잠시 다른 곳을 보다가도 결국 그녀에게 돌아와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남편이 그녀에게는 일상이 돼버렸다.
아버지에게 인정 받고 싶은 초보 작가 아들은 재능이 부족한 아버지의 열등감을 닮았다. 조셉은 명성을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아들의 존경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아내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남편은 아버지로서도 서툴러 보인다.
작가로서의 재능은 조안이 훨씬 뛰어났다. 그것을 알았을 때 조셉은 조안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도왔어야 했다. 조안은 자신의 재능을 남편의 이름으로 가리지 말았어야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역할을 의심 없이 고정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아내이자 엄마로 사는 여자의 인생은 분명 가치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저버리는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더 이상 남자의 성공에 가려진 여자의 희생이 당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더 와이프>를 보며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나의 꿈을 다시 꽉 움켜잡았다. 훗날 꿈을 포기한 여자의 슬픈 표정을 짓고 싶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놓지 않고 결국엔 꿈을 이뤄낸 여성으로 당당하고 행복하게 웃고 싶다.
자유롭고 용기 있는 여자의 행복한 미소를 배운다!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