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셋째 날, Zubiri
희미하게 잡히는 와이파이로 내일 걸을 길을 검색하며 잠에 들었다. 이 몸으론 분명 못 걸을 거라며 반 포기상태로 잠들었는데, 웬걸 자고 일어나니까 다시 걸을 만큼 회복되어 있었다.
새벽 여섯 시. 주섬주섬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겼다. 바깥에 널어둔 빨래를 걷으러 가야 했다. 어젯밤 건조기 사용 시간을 놓쳐서 야외에 있는 빨랫줄에 널어두었는데..
젠장, 하나도 안 말랐네. 심지어 새벽이슬 때문에 더 촉촉해져 있었다. 낭패였다. 우리는 담아 넣을 수도 없는 옷가지들을 가방에 주렁주렁 달고 출발했다.
어제 후식으로 받고 남겨둔 사과를 먹으며 걸었다. 아침으로 먹을 게 있어서 어제보다 한결 여유로웠다. 여유로움에서 나온 자신감일까 나는 안내되어있는 순례길을 벗어나자고 제안했다. 원래대로라면 산길로 들어가야 하는데 구글 지도를 보니 같은 마을로 연결된 포장도로가 보였다. 어차피 다시 만날 거면 도로로 가도 되지 않을까? 산길로 가면 진흙 때문에 걷기 불편할 것 같아. 포장도로가 편할 거야.
편하긴 편했다. 편했는데 차가 지나갈 때마다 위험했다. 가라는 길로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숲 속에서 들려오는 순례자들의 소리에 안도하며 어서 이 도로가 끝났음 싶었다.
30여분 뒤 도로의 끝이 보였고, 우리는 마을 초입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어제처럼 굶주리며 걷지 않겠어!
마트를 구경하던 중 생장에서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던 한국인 남자와 마주쳤다. 피레네 산맥의 동지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같이 걷는 게 아닌 이상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특별히 일정이 바뀌지 않는다면 시작했던 사람들과는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었다.
"내가 안 그래도 한국인 꼬맹이들, 여자애 둘 본 사람 있나 물어보고 다녔다니까? 잘 걷고 있나 걱정됐지."
그는 길을 걷다 한국인을 만나면 우리의 무사를 묻고 다녔다 했다. 생장에서도 처음 만난 우리에게 선뜻 외국인들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도와주겠다고 했던 일이 생각났다. 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어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들어간 마트에서 초콜릿 칩이 알알이 박힌 빵을 구입했다. 초코.. 녹아서 범벅될 생각은 뒤로하고 일단 먹었다.
이름 모를 마을을 벗어나 다시 산길을 오르고 있을 때 낯익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게 보였다. 어제 같이 걸었던 한국 남자였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일단 호칭은 빼고 대화를 나눴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고 여기서 뭐 하고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는 3년 전 이곳에서 찍었던 사진을 그대로 재연해서 찍고 싶다고 했다. 우리에게 부탁을 해서 내가 찍었는데.. 썩 잘 나온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우린 이곳에서부터 남자와 함께 걸었다.
내가 순례길을 걷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오랜 시간 떠나고 싶었다. 어디로 떠나고 싶은 건지 막연하게 고민하다가 일 년 전 인터넷 카페에서 본 순례길 후기가 떠올랐다. 그 글을 다시 찾았다. 찾아서 더 자세히 읽어보고 결심했다. '나는 올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거야!'
그 후 순례길에 대한 글을 더 찾아봤다. 언제 출발하는 게 좋은지, 겨울에도 걸을 수 있는지, 경비는 얼마큼 필요한지 등. 그러다 유채꽃이 아름답게 핀 길을 지났다는 누군가의 글을 보게 되었다.
나는 순례길 위의 유채꽃밭이 보고 싶었다. 유채꽃이 만발할 5월의 스페인을 느끼고 싶었다. 언제 떠나보겠는가, 5월에 유럽을.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이 딱 '때'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나는 돈을 모을 수 있었고, 떠나 있을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영이와 함께 걷고 싶었다. 지영이의 확답을 받고 시기를 조율하다 보니 우리는 6월 중순에 출발하게 되었다. 비록 5월의 스페인은 아니지만, 친구와 함께 걷게 되어 너무 좋았다. 5월이든 6월이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는 우리에게 순례길을 걸으러 온 이유를 물었다. 앞서 적은 이야기를 하며 걷던 도중 눈앞에 있는 풀숲이 유채꽃일 거라며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이게 정말 유채꽃이냐고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한 송이도 피어 있지 않음을 무척 아쉬워했다.
그런 내게 그는 덤덤한 말투로
"유채꽃은 제주도지. 제주도 가서 봐."
푸하하. 그래, 유채꽃은 제주도지.
저 풀숲이 유채꽃이든 아니든, 그저 나의 시작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곳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지영이의 컨디션이 좋은 건지 저만치 앞서 걷더니 이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혼자 걷게 되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상하게 설렜고 이상하게 좋았다. 날 위한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40여분을 혼자 걸었을까, 슬슬 지영이가 궁금해졌다. 대체 어디까지 가 있는 거지? 이렇게 각자 걷다가 주비리에서 만나는 건가?
10분을 더 걷고 나니 산길이 끝났고 눈앞엔 푸드트럭이 보였다. 지영이는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콜라를 사 왔다. 꿀맛이었다. 뒤이어 도착한 남자도 순례길에선 탄산만 한 게 없다며 콜라를 사 왔다. 우리는 계란과 사과를 추가로 더 사 먹고 일어났다.
숨 좀 고르고 허기 좀 달랬는데 벌써 40분이나 지나있었다. 쉬는 건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푸드트럭 옆에 있던 이정표 'ZUBIRI 3km', 아직 두시인데, 이것밖에 안 남았다니! 이미 도착한 것 마냥 오늘의 여정이 무척 순조롭게 느껴졌다.
푸드트럭에서부터 40분, 우리는 두 번째 마을인 수비리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지영이와 서로 먼저 씻으라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내가 먼저 들어갔다.
깨끗이 씻고 나오니 무척 개운했다. 나는 지영이가 씻으러 간 사이 침대에 누워 엄마와 영상통화를 했다. 아직 유심을 사지 않아서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곳에서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엄마는 돈이 부족하진 않냐며 '부족하면 거기서 알! 바라도 해야지.'라고 특유의 부산 사투리로 날 놀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가 웃었다.
우리는 옷가지들을 모아 세탁을 맡겼다. 세탁과 건조 각 3유로씩 내면 사장님이 직접 맡아서 해주신다. 건조까지 마친 옷들은 침대 위에 가져다주셨고, 건조기까지 썼는데도 마르지 않은 양말들은 가게 앞에 널어두셨다.
밖으로 나오니 마트에서 마주친 삼촌 같던 분과 처음 보는 한국인 부부가 앉아있었다.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게 된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신기했다. 벌써 한국인을 몇 명이나 본 거야?
마을을 구경할 겸 마을 초입에 있는 냇가로 갔다. 몇몇의 순례자들이 냇물에 들어가 있었다.
하늘엔 벌써 달이 떠있었다. 맑은 하늘 덕분인지 달이 참 선명하게 보였다.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있을 때 한국 여자와 홍콩 여자가 마을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반가움에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안녕~!
오늘 저녁은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는 한국인들과 먹기로 했다. 마트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열지 않아서 근처 정육점에서 간단히 장을 봤다. 하몽에 멜론 그리고 부부께서 가져온 라면스프로 끓인 라면이 주메뉴였다. 우리는 순례길 셋째 날만에 라면을 먹게 되었다. 매콤하고 얼큰한 라면에 멜론과 하몽의 단짠 조합이 무척이나 조화로웠다.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분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다들 한국에서의 일상을 잠시 내려두고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스페인과 가까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의 휴가를 내고 경로를 나눠 몇 번에 걸쳐 걷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론세에서 만난 까를로스 아저씨의 일정도 그러했다. 하지만 한국은 스페인과 멀다 보니 한 번 올 때 완주를 하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짧으면 한 달, 길면 두 달의 시간을 내야 하는데, 보통의 일상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다.
장 본 비용은 공평하게 나누기로 했는데 삼촌 같던 분께서 우리 몫까지 내주셨다. 이전까지 우리를 '한국 꼬맹이들'이라고 부르셨는데, 나이를 들으시곤 '꼬맹이들이 아니었네..' 하며 머쓱해하셨다. 라면도 부부께서 끓여주셔서 우리는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 여러모로 감사한 한 끼였다.
어느덧 취침 시간이 되어 양치를 하고 누웠다.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이른 시간에 요한 오빠와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에 출발하면 몇 시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내일 도착할 곳은 제법 큰 도시라고 하는데, 괜히 설렌다. ㅎㅎ
21.06.18 수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