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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May 08. 2020

[제주일기 21] 나의 사랑 서귀포 마쉐 Marche

Ⅲ. 제주 정착기: 가을, 마음열기


 

제주의 묘미오일장

 영어권 국가에는 마켓(Market), 프랑스에는 마쉐(Marche), 서울에 마트(Mart)가 있다면 서귀포에는 오일장(Oil-Jang)이 있다. 올 초에 파리에 잠깐 발을 딛고 (하루 출장이었지만) 나서의 여파로 나는 제주 오일장을 제주 마쉐, 서귀포 오일장을 서귀포 오일 마쉐라고 부른다. 한껏 혀를 굴려 마쉐라고 발음만 해도 오일장 한 켠 고기 국숫집 귀퉁이에서 파리지앵이 종이 쇼핑백에 바게트를 한 아름 품고 나타날 것만 같다. 제주 옥돔 스멜도 함께 맡으며 나도 빠리지엔이 된 듯 한 착각에 빠져본다.


 대형마트와 비교해 오일장은 훨씬 가격도 저렴하고 물건의 질도 좋다! 제주산 농산물도 대형마트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복숭아를 만원 어치 사면 자두 한두 개는 꼭 손에 덤으로 쥐어주는 인심이 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살갑게 비비대지 못하는 편이라 복숭아 한 봉지를 사고, 자두 한 개 정도 얻고도 좋아했지만 좀 더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라면 분명 어뭉들이 더 후하게 챙겨주실 것이다.


 사실 최상급, 특 상품 과일을 찾는 게 아니라면 시장은 더더욱 이득이다. 조금 상하거나 귀퉁이가 썩어서 겉보기에 상품가치가 떨어진 과일들을 싼 값에 득템 할 수 있다. 원래 과일은 맛탱이 가기 직전이 더 달큰한 법. 그래서 서귀포나 제주시 민속 오일장에 가면 2~3만 원으로도 두 손 무겁게 살 수 있다. 복숭아 만원 어치, 아오리 사과 5천 원에 5개, 깐 마늘은 마트보다 훨씬 신선한데도 5천 원에 한 아름이다. 내 팔뚝만큼 큰 (그 유명한) 구좌 당근도 3개 2천 원이다. 깐 양파도 한 소쿠리(바구니)에 2천 원이라, 집에 양파 한 망이 있는데도 살 뻔했다. 마늘은 마트에서 산 게 있는데도 통마늘과 깐 마늘을 또 사버렸다. 싱싱한 과채의 유혹은 파리의 갓 구운 크로와상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아직은 차가 없어 자주 가기 어렵고, 오일장이라 날짜를 맞추기가 쉽지 않지만 한 번 가고 나면 마트에서 비싼 과일을 사 먹기 전 수 차례 들었다 놨다 고민하며 용단을 내려야 할 지경이 된다. 아, 여름이 오면 오일장에 가서 또 말랑하게 즙이 흐르는 물컹한 복숭아를 또 사 먹고 싶다. 침과 즙이 뒤범벅이 된 채로 뭉글뭉글한 복숭아에 코를 박고 여름의 향에 빠지고 싶다. 


제주의 재래시장 사대천왕

 제주 재래시장의 전통 강자는 제주시 민속 오일장이다. 1905년 조선 말엽에 시작되어 100년 역사를 자랑하며, 점포수도 1천 개에 달한다고 한다. 전국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라고 하니 말 다했수다. 신선한 제주산 농수산물부터 생활용품, 제주특산품, 수입 약재, 동물까지 돌아보는 데만도 한참이 걸린다. 수산시장에서는 육지로 옥돔 등 생선을 택배/항공 배송해준다는 문구가 활발하다. 


 서쪽은 동문시장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밤에도 열려있어,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먹거리와 횟집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도민이 되기 전, 프리(pre)도민 시절에는 나도 여기서 한라봉 주스, 흑돼지 꼬치구이, 문어빵, 계절 생선회와 딱새우 회를 먹곤 했다. 선물로 우도 땅콩, 감귤청, 오미자청을 사가기도 하고 백년초 초콜릿도 모자라 한라봉 크런치 초콜릿까지 시판된 것을 보며 도대체 제주도 특산품은 어느 경지까지 갈 것인가 혀를 내두르곤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동문시장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오복떡집 오메기 떡이다. 유명한 맛집인 줄 모르고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한 팩 사 왔는데, 당일 제조하는 데다 많이 달지 않은 팥 덕에 꿀떡꿀떡 잘 넘어갔다. 


 서귀포 강자는 올레시장이다. 올레시장은 입구에서부터 회 센터들의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차이를 알고 단골을 만들 만큼 자주 가진 못했지만, 어딜 가든 내게 이곳은 딱새우 회의 천국이다. 무려 껍질까진 딱새우를 만원에 10마리 정도 먹을 수 있다. 

나는 갑각류를 정말 좋아하면서도 잘 먹지 않는 이유가, 인풋 대비 아웃풋이 너무 적어서다. 다른 말로 껍질 까는 과정이 귀찮다. 들이는 정성과 시간 대비, 결과물이 너무 작다. 그런데 여기서는 껍질이 까진 채로 나란히 줄 세워진 딱새우를 실컷 먹을 수 있다. 달짝지근하고 쫀득한 새우 살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서, 꼭 딱새우 회를 주문한다. 친구들 셋이서 올레시장에 갔을 때 우리는 계절 회 모둠과 딱새우 회 30마리를 주문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한 사람당 열 마리 정도는 먹어줘야, 서울에 돌아가서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동쪽에는 세화 민속오일장이 유명하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해안도로변에 있다 보니, 빼어난 경관이 관광객을 홀린다. 날이 따뜻한 3월~11월 정도에만 반짝 열리는 세화 벨롱장(플리마켓)은 늘 나의 위시리스트였는데, 아직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세공품과 제주도 농산물로 만든 마말랭과 같은 먹거리, 한라산 모양의 비누까지 트렌디한 물품들이 모여있었다. 사진만 보면 바다를 따라 줄지은 점포들의 힙한 감성이 유럽 재래시장 저리 가라다. 날 좋은 어느 날엔가 꼭 세화 벨롱장에 가보고 싶다고 위시리스트에 밑줄을 한 번 더 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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