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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May 08. 2020

[제주일기 24] 이제야 동네 맛집이 보인다

 로컬이라 불리려면 모름지기 동네 맛집 추천 정도는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야 하는 법. 사실 입도 초반에는 어디가 맛집인지 당연히 몰랐다. 흑돼지 쌈밥집이라고 해서 들어갔다가 처참히 실패하고, 맛도 있고 깔끔했지만 가격이 너무나 비쌌던 갈치조림 집도 가보고, 가까워서 가보고, 주변 사람들이 괜찮다고 해서 가 보는 식당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나 짬이 찼다고 나도 이제는 도민들이 찾는 맛집과 관광객 대상 맛집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도민‘력’이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그중에서도 도민 맛집을 선별할 수 있는 눈이 떠졌다.


 쓰레기를 버리러 재활용 도움센터로 오가는 길에 허름한데 매일 저녁 테이블이 거의 가득 차 있는 집, 점심시간에는 관광객도 줄 서는 집, 수요미식회에 나왔거나 말거나 매일 저녁 웨이팅이 기본인 집, 간판은 특색이 없지만 도민들이 늘 찾는 듯 한 포스를 풍기는 집 등등. 입도 후 한 달 정도가 지나면서 ‘포스’가 느껴지는 집들을 눈여겨보다가 하나둘씩 도장 깨기 하듯 찾아다니는 재미가 붙었다. 


 참고로 제주 기념품으로도 인기가 많은 하얀색 ‘한라산’ 소주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도민들은 초록색병 올레 소주를 마신다. 도수가 낮은 소주로 더 오래, 더 많이 마시고 싶은 이유는 제주엔 계절마다 맛봐야 하는 특산물이 많기 때문이다. (*2019년 말 기준, 올레 소주는 리뉴얼되어 한라산 하늘색 병이 됐다. 식당에서 주문하면 이모가 ‘17도’ 혹은 ‘하늘색’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술이다.)


도민은 횟집에 가지 않지요

 프리(Pre) 도민 시절에는 동문시장, 올레시장에서 회를 사다 먹거나 횟집을 찾아갔다. 유명한 횟집들은 사실 스끼다시라고 불리는 전채 반찬 때문에 배가 부르고 가격도 제법 나간다. 도민들이 자주 찾는 횟집은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는 집 근처 하나로 마트 생선 코너다. 철마다 맛있는 생선이 다르다. 장을 보러 가서 광어회를 무게에 따라 얼마어치로 주문을 하고, 곁들여 먹을 이슬 음료와 야채 쌈을 사고 다른 생필품을 고른 뒤에 다시 생선코너에서 회를 픽업해 집으로 간다. 술 마시고 운전할 걱정 없고, 3~4만 원이면 정말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으니 굳이 횟집을 갈 이유가 사라졌다. 


중문 맛집 터줏대감해심가든에서는 돼지 생갈비를무조건 돼지 생갈비.

 중문 우체국 근처에 있는 해심가든 역시 동네 맛집의 터줏대감 같은 곳이다. 무심코 지나가면 놓치기 십상이다. 허름한 듯 한 간판, 단출한 반찬만 보고 이곳을 판단해 갈까 말까 고민한다면 맛있는 돼지 생갈비를 영접하는 시간만 늦춰질 뿐이다. 매일 저녁 6시 이후에는 늘 줄을 선다. 관광객이 많은 여름 성수기에는 1시간 웨이팅은 기본이다. 게다가 안에 연기가 잘 빠지지 않아 옷에 고기와 연기 냄새가 고스란히 밴다. 그러면 어떤가? 해심가든은 모든 불편함과 난관을 각오해도 좋을 만큼 고기질이 신선하고 맛있다. 돼지 생갈비가 이 집의 대표 메뉴인데, 돼지 비린내, 잡내가 하나 나지 않고 신선하다. 멜젓도 당연히 제공되지만, 그런 것 하나 없이 소금에만 찍어먹어도 맛있다. 반찬도 김치, 나물, 무쌈 등 아주 기본 찬만 주신다. 반찬은 아무것도 안 주셔도 좋을 만큼 진짜 맛있다. 친구들이나 지인이 오면 나는 꼭 이곳에 데려갔는데, 다들 호평일색이었다. 제주에서 먹어본 돼지고기 구이 집 중에 이곳은 단연 최고. 오겹살은 뭐, 어디든 대체로 다 맛있다. 제주에서 돼지가 도축되는 곳은 한 군데라더니 어딜 가도 평타 이상은 친다. 지글지글 돼지고기에 올레 소주는 상추 곁들임과 같다. 꿀떡꿀떡 목 넘김에 거슬림이 하나 없다. 


보물처럼 숨겨놓고 싶은 이자까야요리바카

 1차로 해심가든을 먹었으면 2차는 요리바카 이자까야다. 서울에는 자갈처럼 널린 게 이자까야지만 제주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맛있는 이자까야는 더욱 드물다. 기본 차림으로 주는 야채 절임부터 맛있어서 감탄을 하면서 먹었다. 신선한 와사비를 얹어서 주는 문어초회가 7,000원, 계절 회를 몇 점씩 맛볼 수 있게 나오는 1인 회는 12,000원, 여기에 나베는 찰떡궁합, 배고플 땐 닭 가라아게도 훌륭하다. 이곳도 지인이 오면 늘 2차로 가는 코스였는데, 사장님께 인정받는 단골이 되지 못해서 아직 아쉬울 따름이다. 집 앞에 개인 소장하고 싶은, 그런 이자까야.


사장님 혼자 요리하고 계산하고 갑자기 사라지시기도 하지만그래도 정겨운 동문골

 동료들 중에 이 곳 매니아가 꽤 있다. “동남골 정말 사랑해”라는 고백을 두 번인가 들었다. 요리도 서빙도 계산도 카운터도 사장님 혼자 하시고 테이블도 5개 정도가 전부다. 메뉴도 5~6가지가 전부. 우리가 꼽는 시그니처 메뉴는 정성이 가득 든 엄마손 느낌 계란말이다. 비가 올 땐 파전에 제주 막걸리를 마시러 우리는 이곳에 간다. 장식도 없고 허름한 간판에 관광객들은 단연 오지 않겠지만, 우리는 사장님이 오래오래 건강히 계란말이와 파전을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주 최고 갈치조림덕승식당

 나의 최애 갈치조림 집은 우리 집 앞 ‘덕승식당’이다. 갈치조림이 유명하다는 곳, 수요 미식회에 나왔다는 곳도 가봤다. 제주에 내려온 직원들은 갈치조림이 제주를 대표하는 메뉴이니만큼, 유명하다는 곳을 다들 가보았지만 그렇게 엄청나게 맛있는 집은 발견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나는 맛보고 말았다. 모슬포에 본점이 있는 이곳은 그날 배로 잡은 생물 갈치로 조림을 한다고 소문이 났다. 본점에서 먹어보고도 눈이 띠용 튀어나왔다. 생물 갈치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보들보들한 살, 다른 갈치조림 집 대비 저렴한 가격 (1인분 15,000원), 자박자박 양념이 잘 밴 무까지 밥을 싹싹 긁어먹으면서 연신 ‘맛있다’를 연발했다. 내가 사는 동안 감읍하게도 중문점이 오픈했다. 감히 나는 제주 갈치조림 최고 맛집은 이 곳이라며 추천. 단골이 되어 요일별 생선구이까지 섭렵하지 못한 것이 통탄의 한이다.


전날 밤 2차 3차까지 달리셨나요그랬다면 당신은 나성 보말칼국수가 필요합니다

 집에서 2분 거리에 점심시간마다 줄 서는, “우리 칼국수 맛있다”라고 자부심 있는 사장님이 반겨주시는 보말 칼국수 맛집이 있다. 맛집답게 메뉴는 보말 칼국수, 버섯 칼국수, 바지락 칼국수 단 세 가지뿐. 보말은 육지에서 고동이라고 불린다.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제주를 대표하는 토속 음식 재료 중에 하나인 보말, 톳이 들어간 거무스름한 면, 매생이가 들어가서 개운한 국물까지 한 젓가락 뜨면 해장에 으뜸이다. 몇 번 먹어봤는데, 그냥 먹을 때와 숙취에 고생하며 먹었을 때 맛이 달랐다. 보말은 미네랄이 풍부해 간염, 간질환에도 좋고 숙취해소, 신경통, 시력보호,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고 나성 칼국수 집에 쓰여 있다. 보말은 참굴보다 단백질 1.7배, 칼슘 2.8배, 철분 3.4배 높다고 한다. (나성칼국수 메뉴판 발췌) 이쯤 되면 만병통치약인가 싶기도 하지만, ‘숙취해소’에 좋은지 참 맛을 느끼려면 전날 어무니 아버지를 못 알아볼 정도로 까지 거나하게 마시고 가기를 권한다. 

 

제주다운 짬뽕을 맛보고 싶다면 강정마을 말질 식육식당에서 고기 짬뽕을

 역시나 허름한 간판에 속을 뻔했다. 하지만 이곳은 백종원 사장님이 3대 천왕을 촬영한 곳으로 이미 유명하다. 이름이 자꾸 물질인지 몰질인지 헷갈리는데 말길이라는 제주어라고 한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평화센터 옆에 위치하는데, 햇살이 좋은 날에 가면 생선 손질을 하는 할망들이 오순도순 앞에 앉아 계시는 정겨운 풍경은 덤이다. 

 식당의 메뉴는 복지리(복 매운탕도 팔지만 다들 지리를 먹는다), 짬뽕, 우동, 만두로 간단하다. 복지리도 시원하고 개운하다. 푸짐한 양 대비 가성비도 좋고 복도 신선하지만 서울에서도 먹어본 맛이다. 백 선생님도 추천했듯이, 해물 없이 고기와 야채를 볶아 만든 개운한 짬뽕 육수가 아주 일품이었다. 육지에서 먹어보지 못한 맛인데, 국물이 탄수화물과 아주 조화롭게 어울려서 면을 후루룩 후루룩 건져먹고 밥을 말아 완뽕을 추천한다. 단, 오후 3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맛보고 싶은 자가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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