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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May 08. 2020

[제주일기 27] 제주 살아 좋은 것들

 제주 생활을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났다. 강제이주라며 호들갑 떨던 게 무색하게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다. 그럼 그렇지, 다 사람 사는 곳인데.


 가장 좋은 건 제주 날씨다. 역대급 폭염을 기록한 2018년, 제주는 꽤 살만했다. 거짓말처럼 서울의 낮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던 때에도, 물론 덥긴 했지만 제주는 30도를 넘지 않았다. 특히 서귀포는 제주시보다도 여름에는 2~3도 더 시원하고 겨울엔 더 따뜻했다.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거의 없다. 태풍이 온 날은 무서웠지만. 한국을 무슨 계절권이라고 특정 짓기도 어렵게, 여름은 뉴델리처럼 40도의 고온이 한반도를 달구고 겨울엔 모스크바보다 추워서 영하 20도까지 내려가 연교차 60도를 자랑하는 어마 무시한 나라가 됐다. 그 와중에 서귀포의 ‘살만한’ 날씨는 축복 같았다. 추위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로서는 섭생이 잘 맞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좋았다. 공기와 날씨, 자연환경만 따졌을 때 (인프라, 편리함, 다 차치하고) 한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아마도 제주일 것이다. 인프라와 편리함을 뺀 기준이라면 그 순위는 의미가 없겠지만…….


더 좋은 건 청정 공기

 서울에 갈 때마다 언젠가부터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됐다. “미세의 도시 서울 가는 중”이라고. 제주에서 서울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창문을 보면, 상공에 서울을 진입할 때는 뿌연 먼지 장막이 있다. SF 영화의 외계 행성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는 왕국을 지키는 투명 보호막 대신, 먼지로 실드가 쳐진 도시에 가는 기분이다. 서귀포 주민의 자부심은 한라산 너머로 미세가 도달하지 못하는 청정공기를 마신다는 데 있다. 


 두 번째로 좋은 건, 하늘과 바다 구경. 높은 건물이 없어 늘 시야가 하늘에 닿는다. 도시에 살면서 틈틈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휴가지에 가서나 석양을 감상하던 때와 달랐다. 사무실에서도 바다가 보였고, 출퇴근길에도 석양을 보며 매일 다른 하늘과 구름의 모습에 감탄했다. 해가 질 무렵이면 회사 3층 발코니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곤 했다. 일하다 답답하면 “석양이나 보러 가자”라고 말했다. 구름이 그리는 하늘은 매일매일 달랐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역과 회사 건물이 연결되어 있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출퇴근은 편했다. 하지만 해가 지는 것을 가만히 보는 건 일상이 아니라 언제나 여행을 가서였다. 


세 번째로 좋은 건깨끗한 물

 제주 출신 회사 선배가 말씀하시길, 제주는 온 갓 곳에 삼다수가 난다 했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을 때도 우리는 삼다수 맞는다고 했다. 공기가 깨끗하니 비도 깨끗하고 물도 깨끗한 선순환 구조다. 진짜로 중문 집은 수돗물도 달랐다. 아기 피부에만 난다는 아토피가 성인이 되어도 안 없어지고, 30대가 되면 없어진다더니 아직도 안 없어지고 있어 나는 계절마다 피부과를 찾는다. 아토피는 약도 없다. 밀가루, 계란, 육류 등등을 끊고 식이요법을 해도 완치를 보장할 수 없는 세상 무서운 불치병이다. 증상이 악화됐을 때 도움을 주는 약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제주에 오고 팔꿈치도 확실히 덜 가렵고, 피부에 나는 원인모를 붉은 발진 같은 것들도 확실히 줄었다. 이렇게 말하니 약장수 같지만, 삼다수를 먹고 마시고 몸에 뿌리니 몸이 달라지는 것만 같았다. 제주에 살면서 피부과에 갈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갈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서귀포에서 키워야 하나 생각이 잠깐 오락가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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