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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May 08. 2020

[제주일기 22] 제주 삶의 속도, 슬로우 슬로우 퀵퀵

무사마시?

 회사에서 업무전화가 오면 “무사마시?(=무슨 일입니까 의 제주어)”라고 전화를 받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종종 치밀어 오른다. “무사마시? 아, 아, 어 (최대한 어눌하게) 안.. 안녕하세요?”라고 전화를 받는다면, 상대방은 보이스 피싱에 전화를 잘못 건 줄 알고 몹시 당황할 것이다. 자료를 보내달라는 짜증 내는 전화에 수화기 너머로 파도소리와 야자수의 기세를 보여주는 전략이랄까. 그렇다면 전화를 건 이는 오히려 ‘아, 나는 바다 건너에 전화를 하고 있구나. 대도시의 속도로 쪼아 대거나 독촉하는 것은 무리인가?’라는 일말의 의심이 싹트기에 충분한 멘트다. 물론, 실제로 제주어로 전화를 받은 적은 없고 그럴 수 있을 만큼 나의 제주어는 형편이 있지도 않았다. 한 번쯤 장난스레 ‘무사마시?’ ‘몇 시 마시?’ 같은 제주어로 전화를 받고 싶은 장난꾸러기 충동을 애써 꾹꾹 눌렀다. 이건 제주에 왔으니 슬로우 슬로우 퀵퀵의 속도로 일을 하겠다는, 나 혼자만의 마음의 리듬이었다. 


  사실 제주에 왔다고 삶의 속도가 획기적으로 달라지진 않았다. 제주에 와서도 야근을 하는 사람들은 하고,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을 한다. 오히려 만날 친구도, 가족도, 놀러 갈 곳도 없어 야근이 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바다가 있는 배산임수의 지형에 놓인 곳으로 이사한다고 구겨진 팔자가 갑자기 펴지지 않듯이, 섬에 있어도 서울의 시간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바삐 일을 한다. 해외 파트너와 시간을 맞춰가며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DHL로 서류를 보내고, 전화를 한다. 도시를 벗어나니 삶에 여유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고, 삶의 시계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건만, 안타깝게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그런 변화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커피가 필요 없어진 아침 

 대신 제주에서의 출퇴근길의 한적함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쾌적한 아침을 선사했다. 회사 앞 도보 5분 거리 오피스텔에 사는 직원들은 아침에 8시에 일어나도 머리를 감고, 아침을 먹고 올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직원들이 생겼다. 야근을 해도 출퇴근 시간이 줄어든 만큼 수면시간이 길게 보장되어서, 데미지를 회복하고 다음날 일 할 수 있었다. 중문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나도 8시 조금 전에 일어난다. 고양이 세수는 하고 머리는 안 감고 옷을 느긋하게 입고 8시 25분에 출발해서 회사에 온다. 중문 집에서 회사까지 거리는 10km 남짓이다. 서울이었으면 을지로에서 강남까지의 직선거리와 같다. 제주의 출근길은 막혀본 적이 없다. 과거에 부모님 집에서 지하철로 통근하던 시절은 대인기피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우르르 몸을 욱여넣고, 타인의 체취에 묻혀 1시간 넘게 서서 가다 보면 서서 조는 능력을 획득하고, 출퇴근만으로도 몸이 지쳤다. 


 아직 야근도 예전처럼 하긴 하지만, 야근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달라졌다. 제주에서는 석양이 퇴근하라고 등을 두드려준다. 서울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가야 나도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제주에서는 해가 지면 응당 집에 가야 할 것 같은 나만의 의무감이 생긴다. 6시 퇴근시간도 중요하지만 겨울이 되면 5시만 넘어가도 해가 지고 밖이 컴컴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컴컴한 어둠 속에서 홀로 남아 야근을 하나 현타가 온다. 9시만 넘어도 식당들은 문을 닫는 곳이 많다. 일이 많이 남아서 야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가도 창밖에 노을을 보고 집에 간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시간을 더하는 곳가시리 

 제주도 동남쪽 표선면에는 가시리라는 지명이 있다. 더할 가, 시간 시. 시간을 더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시간을 바람처럼 흘러가는 개념이 아니라 쌓이는 벽돌 같은 축적의 이미지로 봤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시간은 가겠지만, 시간이 모래시계처럼 쏟아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블록처럼 쌓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발상을 가진 지명만 생각해도 한결 마음에 평안이 깃든다. 시간을 몽땅 흘려보낸 줄 알았는데 누군가 조금씩 주어다 놓은 비밀창고를 발견한 기분이다. 시간을 더한다는 지명을 붙인 동네가 있다니, 확실히 섬의 시간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제주도에서는 급한 사람이 없다. 길을 건널 때도 신호등이 많지 않고 할망 할아방들도 느긋느긋 차도를 유유히 백조처럼 횡단한다. 심지어 차가 오는 지도 안보는 분들이 많아 초보 운전자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할망! 할아방! 제발 검은 옷 입고 차도 건널 때는 옆을 좀 보소 ㅠㅠ)


 제주에 산다고 삶이 확연히 달라지진 않았다. 퇴근을 일찍 한다고 책을 많이 보고, 생산적인 활동을 더 하는 것이 아니었다. 퇴근하고도 책을 열심히 읽을 사람들은 그게 제주든 서울이든 강원도든 미국이든 상관없을게다. 일찍 퇴근한다고 신난다고 오히려 쓸데없이 침대에 누워 SNS 구경하고, 이틀만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을 유튜브를 계속 밤늦게까지 보고,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보고 또 보고 불 켜놓고 잠들고를 반복한다. 나는 그랬다. 다들 주변에서도 텔레비전 보는 시간이 늘었다고 했다. 시간적 여유가 정신적 삶의 여유로 이어지는 건 또 다른 문제였던 거다. 능동적인 태도가 변화되어야 결과물의 변화로 찾아오는 법이었다. 


 제주가 힐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든 건 자연을 마주할 때였다. 퇴근하고 가끔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던 여름이나 주말에 잠깐 올레길을 걷거나 귤밭을 돌아다녔던 날들은 오롯이 쉼으로 남는다. 차가 많지 않으니 가끔 차도로 걷고, 우거진 푸르름과 인적이 드문 흙길을 걷는다. 바다를 보고 하늘을 보는 날들이 서울에 살 때보다 늘었다. 점심시간에 법환 포구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바다를 보고, 가슴에 바다를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서울의 속도가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페스티벌의 쿵짱쿵짝 뿅뿅뿅 비트라면, 제주는 슬로우 슬로우 퀵퀵 왈츠 스텝이다. 밤이 되어 좁은 클럽에서 뛰어 재끼는 클럽이 서울이라면, 제주는 폭이 넓은 플리츠스커트를 입고 우아하게 무대를 가르는 왈츠 무도회장 같다. 20대에는 번쩍번쩍 EDM에 맞춰 무아지경 흔드는 게 정박인 줄 알았는데, 30대가 되고 왈츠 스텝도 우아하니 잘 맞는다. 오늘도 제주에서 나는 슬로우 슬로우 퀵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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