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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숙 Oct 13. 2022

글쓰기를 한 덕분에

워킹맘, 퇴사의 세계

쓰기라는 치열한 시간이 지나고 책이라는 단단한 무기를 손에 쥐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나만의 무기. 나만의 스토리를 가졌다는 사실은 직장에서 일로서 이루어내는 성취감이나 자기만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책을 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한성장했다. 재테크 책을 썼다고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퍼스널 브랜드가 상승하는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쓰면서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정립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두 번째 책을 계약한 출판사 대표님은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이었다. 대표님은 어느 날 문득 아이들 돈을 어떻게 관리할지 궁금하여 직접 책을 기획하고 출간하기로 결정했다고 하셨다. 책이라는 완성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대표님 뿐만 아니라 나 역시 깊이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성장했다. 말하자면 책이란 즉, 글쓰기란 생각 정리의 끝판왕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니 대학시절에도 많은 양의 책을 정리하면서 쓰다 보면 어느새 지식이 깊어진 나를 발견하는 그런 과정처럼 말이다.      


책을 쓰고 성장했다 싶을 무렵 생각지 못한 고비가 다가오기도 했다. 저자 활동인 강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코로나 시기라 대면 강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튜브 프로그램을 몇 번 찍게 되는 상황이 다가왔다. 책을 출간하면 저자 역시 활발하게 책 홍보를 하게 되면서 각종 강의나 유튜브 촬영 등의 기회가 생긴다. 특히 유튜브는 신간 홍보를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에 유튜브를 잘 활용하기도 해야 하고 보통은 구독자가 많은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나가 책 소개를 하는 영상을 찍는다. 고객을 대상으로 1:1로 상담하는 건 자신 있어도 말했듯이 INTJ인 나는 어릴 때부터 발표 같은 건 썩 좋아하지 않았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출판사 대표님은 일찍이 나의 이런 성격을 간파하시곤 유튜브 촬영 일정을 잡고 스피치 연습을 좀 해두면 좋겠다고 하셨다. 스피치와 관련된 유튜브를 보거나 관련 책을 사서 보면 어떻겠냐고. 그래,. 나도 언제까지나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수만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쫄지 않고 세련되게 얘기해 보고 싶다. 대표님의 충고대로 스피치 관련 책부터 사보았다. 읽다 보니 나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연습이 안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스피치의 목적은 ‘말하기’지만 만드는 과정은 ‘글쓰기’이다. 즉, 대본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논리를 구성하는 힘이 생기고, 내용을 작성하면서 문장력이 강화된다. 대본을 소리 내어 표현하는 과정에서 말하기 능력이 향상된다. 따라서 ‘진짜로 말을 잘하려면’ 스피치 대본을 제대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  

복주환 작가님의 <생각 정리 스피치>를 읽으면 스피치를 할 때 한 번도 대본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여태껏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열만 했을 뿐이지 조리 있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실제로 써본 대본이든 머릿속에 그려본 대본이든 구체적으로 대본을 써보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시작은 김창옥 교수처럼 재미있게 해 보자. 본론은 손석희 앵커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김미경 원장처럼 공감되게 얘기하자. 결론은 설민석 강사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감동적으로 마무리하자.'라작가님의 이야기도 와닿았다. 퇴사하고 시간 여유도 많았기에 대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PPT로 자료를 만들기는 해도 대본을 만든 것은 처음이었다. 대본의 틀을 유지하며 스피치를 한다 상상하며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핸드폰으로 녹화를 하는 건데도 시작하자마자 실수투성이었다. 혀가 꼬이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허둥대는 내 손은 또 얼마나 웃긴지. 그동안 대본과 연습 없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는다.  

  

" 저자님, 말씀하시는 게 자연스러워지셨어요. 혹시 스피치 연습하셨어요?"

" 아, 네 이번에는 연습을 좀 했어요. "

" 어쩐지., 왜 작년에 저희랑 명동 부자들 찍을 때는 유튜브가 처음이라 그랬는지 말이 자꾸 끊어졌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잘하셨어요. "

처음이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랴. 책도 그랬고 유튜브 촬영도 그랬고, 거슬러 올라가면 첫 아이, 첫 직장 모든 일이 그랬다. 전업맘으로 내딛는 첫걸음, 스피치 연습을 하는 내 첫걸음. 세상만사가 다 똑같다. 책도 두 권 내보니 다음 책은 기획 출판이 안된다면 독립출판물로 내면 그만이지 하는 호기도 생긴다. 책 쓰기 든 스피치든 인생은 도전의 연속. 스피치 도전도 하게 되다니 글을 쓴 덕분이다.





대학 시절 문학을 가르쳐주시던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現実はみにくいものである

현실은 보기 흉하다는 말이다.

막 피어오른 눈부신 벚꽃처럼 한창 찬란하고 아름다운 청춘들에게 좋은 말만 해주어도 모자랄 판에 교수님은 왜 현실은 보기 흉한 것이라고 했을까. 늘 단정하고 교양 있고 인생의 밝은 면과 겪었을 것 같은 분이었는데 왜 현실은 혐오스럽고 불쾌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시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수십 년 후나 되어 겨우 스스로 글을 쓰며 현실은 보기 흉하기에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만큼은 달라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우리 인생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바라보기 위해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문학작품 수준에는 미치지만 살아가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다.

 

얼르고 달래도 자지 않고 칭얼대는 아이,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배우자, 반항하는 사춘기 아이들, 돈 걱정, 나이 든 부모님 걱정, 건강 걱정. 세상 살이는 걱정의 연속이다. TV 예능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한 가수 이지현 님이 밤에 눈을 감으면 내일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만큼 현실이 힘들다는 심정 십분 이해한다. 그만큼 매일매일 닥친 현실은 가혹하다. 한강 작가님의 장편 소설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묘사처럼 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코기를 베어내는 듯한 잔인함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일상에 어떤 필터를 끼워보느냐는 각자의 능력에 달렸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여러 가지 필터를 끼워볼 수 있다. 그러니 글쓰기는 여전히 유용한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도구이자 필터이다.


돌이켜보면 힘든 현실이 있었기에 나를 되돌아보고 책을 써볼 수도 있었다. 예민한 아이들을 키우며 남들보다 힘든 워킹맘이었기에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기에 전업맘이라는 선택도 할 수 있었다. 고비가 다가올 때마다 책과 글쓰기는 그 누구보다 진정한 친구였다. <기획자의 습관>에서 최장순 작가님이 이렇게 말했다.     

' 난 나의 글이 남들에 비해 얼마나 높고 낮은지,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 살피지 않는다. 나의 글은 언제나 영도에 있다. 내가 글을 잘 쓰기 때문이 아니다. 내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가 바로 내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쓰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이 담아낼 나다운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     

글쓰기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이 보기 흉한 현실을 살아나갈 힘을 기르게 되었다. 

그러니 퇴사 후에도 글쓰기를 꼭 해야 한다. 쓸수록 밝아지는 인생이다.   


(그림 출처. PNG WING 무료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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