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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숙 Oct 23. 2022

퇴직금을 받다

워킹맘, 퇴사의 세계

“ 팀장님, 이번에 퇴직하고 퇴직금을 받게 돼서 제 IRP계좌로 들어올 건데요, 이걸 그대로 IRP로 운용해야 될지 아니면 해지하고 다른 데 투자해야 될지 고민스러워요.”

“ 전무님! 아무래도 퇴직금은 그대로 IRP계좌에 놔두셔야죠. 퇴직소득세도 30%나 할인되는데 전무님처럼 퇴직금 금액이 큰 경우에는 퇴직소득세 금액도 크기 때문에 IRP로 운용하시는 게 무조건 유리해요. ”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은 개인 퇴직 연금이다. 옛날에는 회사가 퇴직금을 사내 계정으로 보유하고 있다 직원이 퇴직할 때 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도산하거나 자금이 부족해서 직원들에게 줄 형편이 안 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고 퇴직 후 일시금으로 버리다 보니 개개인의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보장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에 법적으로 퇴직금을 적립하도록 했다. 매달, 혹은 매년 금융기관에 퇴직금을 적립해 둠으로서 설령 회사가 도산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직원들의 퇴직금은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된 거다. 


중도에 인출해서 쓸 수도 없는 이 IRP계정은 퇴직을 하면 그제야 회사가 은행으로 직원이 퇴직을 했으니 퇴직금을 지급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은행은 그 요청대로 지급 처리를 한다. 퇴직금과 퇴직연금이라는 단어의 차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옛날에는 일시에 지급하는 퇴직금이었고 요즘은  매월 안정적인 노후 생활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연금 지급을 유도하고 있다. 물론 일시 해지도 가능하지만 연금으로 수령할 시 퇴직 소득세를 할인해 주는 혜택을 줌으로써 연금 수령을 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혹시 국민연금만으로는 국민의 노후가 보장되기 힘들어 이런저런 혜택을 주면서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도 적립하도록 유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퇴직금으로 부동산을 사면 어떨까요?"

" 전무님, 들어보세요. IRP가 유리할지, 부동산이 유리할지"

은행원인 나로서는 당연히 퇴직금을 해지하지 않고 연금 수령을 하도록 안내해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큰 금액의 퇴직소득세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고 다른데 투자할 곳도 마땅치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만약 부동산에 투자하여 임대 수익이 4~5%대라고 가정하더라도 부동산 보유 시 납부해야 하는 각종 세금, 대출 이자, 부동산을 유지 관리하는데 들어가야 하는 수선 유지비, 혹시 임차료를 내지 않을, 혹은 연체하게 될 임차인 리스크가  있으므로 IRP의 수익률이 4%된다면 IRP가 낫다고 생각했다. 진심이었다. 


은퇴 후에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기 위해 부동산 임대수익을 누리고자 하는 니즈가 커지는 것을 많이 봐왔다. 누구나 일하지 않고 안정적 수입을 벌어들 일 수 있는 부동산 임대사업자를 꿈꾸지만 사실 그리 쉬운 업은 아니다. 그간 수없이 많은 임대사업자를 보았지만 편하게 앉아서 골프나 치러 다니는 사장님은 보지 못했다. 건물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수선유지가 필요한 고정자산이기에 그에 따른 수선유지비용, 임차인의 요청,  민원 등 신경 쓸 부분이 상당히 많다. 보유  중 납부해야 할 세금도 상당히 많아서 임대수익이 고정적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그에 따른 리스크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게다가 IRP는 은행 입장으로서도 안정적인 수수료 수입을 창출해주는 상품이다. 가입 금액도 클 뿐만 아니라 이탈만 되지 않으면 안정적인 수수료 수입원이 되기에 각 금융기관들은 서로 IRP자금을 유치하고자 경쟁한다. IRP자금을 유치하기라도 하면 단숨에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 요즘은 금융기관끼리 연금상품의 이전이 자유롭기에 혹여 이탈이라도 될까 노심초사 늘 신경 써야 한다. 어쨌든 이런저런 상황을 다 고려하여 내가 내린 결정은 IRP는 절대 해지하지 않는 상품.   





그런 나였지만 퇴직을 앞두고 퇴직금을 받을 IRP계좌를 등록하라는 공문에 고민이 되었다. 퇴직금 해지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IRP에는 2가지 계정이 있다. 앞서 얘기한 퇴직금과 세액 공제를 받기 위해 개인이 직접 납입한 계정이다. 이것을 개인부담금이라고 하는데 퇴직금과 개인부담금은 세제 혜택과 세율이 다르다. 하나의 IRP이더라도 그 안에 개인 부담금과 퇴직금이 섞여 있으면 IRP를 해지할 때 개인 부담금에 대해 세금공제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환출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하나의 금융기관에는 하나의 IRP계좌만 만들 수 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IRP에 퇴직금을 받았다가 계좌를 해지할  유지하고 싶은 개인부담금 계정도 해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그럼 퇴직금은 다른 은행 IRP계좌를 만들어서 받을까? 퇴사하는 마당이긴 하나 왠지 20년이나 근무한 직원이 다른 은행 IRP계좌를 만든다는 건 괘씸죄에 해당될 것 같다. 뭐 고민할 필요도 없이 공문에는 타 은행 IRP계좌 개설은 불가라고 되어 있긴 했지만. 다만 부득이한 경우 계열사 증권회사 계좌로 퇴직금을 수령받을 수 있다고. 증권회사 IRP를 개설해두면 은행 상품보다 좀 더 다양하게 운용할 수 있을 것 같고 은행 IRP는 자기 부담금 , 증권회사 IRP는 퇴직금으로 분리되어 퇴직금을 해지하더라도 자기 부담금은 지킬 수 있게 다. 퇴직금은 필요한 곳에 쓰고 개인부담금은 계속해서 조금씩이라도 넣으며 노후자금을 더 쌓아나갈 수 있고 말이다.


몇 년 전, 회사 이직을 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친구가 물어왔다. 결국 내가 근무하던 지점에서 IRP를 개설하고 퇴직금을 수령했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기도 하고 언제 해지할지도 몰라 상품 운용 지시도 하지 않은 채 기본 금리만 받으며 몇 년이 흘러버렸다. 이직하고 바쁜 직장생활에 정신이 없던 친구는 IRP까지 챙길 겨를이 없었다. 요즘이야 금리가 올라 정기예금도 나쁘지 않지만 3,4년 전만 해도 예금 금리가 1%대 남짓이어 물가 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했다. 어쨌든 친구는 투자상품으로 운용하다 마이너스가 되느니 금리가 낮더라도 예금을 해두는 게 낫겠다고 말하며 최근에서야 정기예금으로 상품운용지시를 했다.


퇴사하고  친구를 만나 내가 물었다.     

" IRP 받은 거 어떻게 할까?. *TDF(Target Date Fund)로 운용해도 요즘 같은 때 좋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기예금은 (그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연 2% 수준이었다) 물가 상승률도 못 따라가고. 확 깨서 다른 걸 할까? "

"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내 IRP는 절대 깨지 말라 그러더니 이제 와서 그런 말 하면 어떡해!"

이런.. 물론 친구는 다른 회사에서 아직도 한창 직장 생활을 하기에 퇴직금으로 다른 무언가를 할 계획도 없긴 했지만 그동안 너무 은행원의 입장만 이야기했구나 싶다. 직접 퇴사를 하고 보니 퇴직금을 유지할지 말아야 할지란 개개인마다의 상황이 다른 거였는데.. 내가 유지하라 유지하지 마라 이야기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참견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내 퇴직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TDF (Target Date Fund)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목표 시점(target date)으로 해 생애주기에 따라 펀드가 포트폴리오를 알아서 조정하는 자산배분 펀드 (출처. 매일경제 용어 사전)


*사진 출처. 머니투데이 기사 삽화 /이지혜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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