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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숙 Oct 26. 2022

공모주나 해볼까?

워킹맘, 퇴사의 세계

“야! 집에서 노는데 그거라도 해야지. 얼른 증권사 가서 애들 계좌 만들어.”

남편이 이런 표현을 썼다면 짜증부터 났을 텐데 친구가 하는 이야기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그래, 이젠 월급 주는 사람도 없는데 이런 노력도 안 하면 집에서 쉴 자격이 없지..'

친구는 늘 공모주 분석을 한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느 증권사에서 할지, 최소한만 할지 올 배팅할지. 은행 근무할 때 나 역시 매일 시황을 체크하고 은행에서 전달받는 하우스 뷰를 습득했지만 그녀는 책, 유튜브, 재테크 카페, 그리고 몸소 주식 시장이라는 자갈밭에서 굴러다니며 실전 투자를 익혔다. 그녀가 주식 시장에 입문한지는 어언 십 년. 은행 상품에만 밝은 나와는 다른 것 같다.


그녀가 잔소리했던 공모주는 역대급 대어인 LG에너지 솔루션. 공모가가 30만 원으로 책정되었고 상장 당일 따상을 한다면 78만 원으로 주당 48만 원의 수익을 남길 수 있다. 따상이라 함은 따블과 상한가를 합친 말로 신규로 상장하는 종목이 첫 거래일에 공모가 대비 두 배로 시초가가 형성(따블)된 뒤 가격제한폭(30%)까지 올라(상한가) 마감하는 것을 뜻하는 속어이다. 우리나라는 급변하는 주가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하루에 개별 종목의 주가가 오르내릴 수 있는 범위를 정해두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전일 종가의 30%이다.    


주식에 있어 전일 종가는 상한가 하한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가격이다. 하지만 공모주는 어제는 없었던 종목이니 개장 후 상한가 하한가에 해당하는 전일 종가가 없어서 8시 반부터 9시까지의 거래를 통해 기준 가격을 정하고 그것을 상장일의 시초가로 한다. 시초가의 상한가는 공모가의 100%, 하한가는 공모가의 10%. 시초가 결정시간에 매수가 많으면 상한가로 시작될 확률이 높다는 것. LG에너지 솔루션의 경우 따블 60만 원, 따블의 상한가 30%가 78만 원이다. 만약 상장일 당일 따상이 이루어진다면 주식 하나당 48만 원의 이익을 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미적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친구 눈에는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아뿔싸 객장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아이들 계좌 만들러 왔는데요."

"일단 기다리세요!"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직원은 이미 지쳐 보였다. 코로나 시국에 수많은 사람들과 섞여 있으니 찜찜한 마음에 나가 있고 싶어도 순서가 어떻게 될지 몰라 쉽사리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자, 미성년자 계좌 만드실 분 손들어 보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작성 서류가 많으니 함께 쓸게요. "


바쁜 팀장님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스무 장 가까운 서류에 전속력으로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미성년자 계좌 개설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미성년자의 개인정보 동의를 법정대리인인 부모가 하는 만큼 써야 할 서류가 많기 때문이다. 공모주 청약과 같은 1회성 거래를 위해 이 많은 서류를 쓰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니 직원분들도 참 답답하고 짜증 나겠다 싶다. 그렇게 서류 작성을 하고도 장장 3시간을 기다리고서야 벨소리가 울렸다. 딩동! 창구에서 오퍼레이션을 하는 직원은 지칠 대로 지쳐있다. 저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업무처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일사불란한 일처리에 아이들 계좌가 개설되었고 결전의 순간을 위해 인증서 등록까지 마무리지었!


특급 공모주는 조금이라도 경쟁이 높은 증권회사에서주식을 아예 못 받거나 1주 정도 받지만 이렇게 발품을 팔아 경쟁이 낮은 곳을 찾아오면 2주도 받을 수 있다. 예전에는 무조건 많은 청약금을 넣는 사람이 많은 주식을 받을 수 있는 비례 배분이었지만  공모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왜 돈 많은 사람만 많이 버냐는 임없는 민원에  최소 청약금으로도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균등배분 제도가 도입되었다. 구조적으로 경쟁률이 약한 증권회사에서 청약을 하면 경쟁이 센 곳 보다 더 많은 공모주를 받을  있다. 공모가가 주식이라면 애써 한 두 개 더 받는 게 의미가 없지만 수십만 원짜리 종목은 이야기가 다르다. 어떻게 해서든 더 받아야 다.  




9개월간 나오던 실업급여도 끝나고 아무도 나에게 월급을 주지 않는다. 가장이 아니더라도 20년간 월급을 받던 사람에게 매월 들어오는 현금이 없다는 건 충격이다.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아닌가. 더군다나 나는 재테크 책도 쓴 사람인데 내 자산관리도 제대로 못해낸다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말이다. 그런데 왠지 친구에게 더 의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대부분의 증권회사 계좌를 가지고 있다. 본인 계좌야 비대면으로 개설하면 되지만 미성년 자녀의 계좌를 개설한다는 것은 그만큼 발품을 팔고 시간이 소요되작업이니만큼 워킹맘인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청약에 임했는지 알겠다.     


“어떻게 할까? 일단 팔까? ”

“응응 일단 반 정도”     

상장일, 개장  작전을 주고받았다. 집중해서 매도 버튼을 눌러야 다. 기대했던 따상은 아니지만 시초가가 더블은 되었는데 좀 더 올라가는 걸까 매도를 망설이는 찰나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제 멈추겠지 싶은 순간에도 계속해서 하락했다. 결국 기대만큼의 이익을 내지 못하고 매도 버튼을 눌렀다. 그래도 몇 시간씩 기다리며 계좌 개설을 한 덕분에 한 명당 2주를 받았고 이익이 나긴 했다. 그래, 몇 시간 투자하고 도 수익이나쁘지 않지.  이렇게만 한다면 공모주 수익도 짭짤하겠지만 단가가 큰 공모주의 기회는 흔치 않다. 대개 단가가 낮아 최청약증거금으로 1,2주를 받고 따블이 된다 하더라도 이 삼일 치 커피값 밖에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커피 값이라도 벌려면 해볼 수도 있지만 모든 공모주가 이익을 는 것도 아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은 그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에서 공모주에 대해 이런 언급을 하였다.      

‘ 강세장이 한창 진행되는 어느 시점, 첫 번째 기업공개가 등장한다. 신주 공모 가격이 비싼 편인데도 초기에 공모주를 산 사람들은 큰 이익을 얻는다. 주가가 상승세를 이어가자, 기업공개가 더 잦아진다. 공개 기업의 질은 꾸준히 낮아지지만 공모 가격은 터무니없이 높아진다. 이제 강세장이 끝나간다는 확실한 신호가 나타난다. 정체불명 소기업 신주의 공모 가격이, 업력이 긴 중견기업들의 주가보다도 높아지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 전 세계의 자금이 일시에 풀리며 풍부해진 자금과 저금리 덕밀려온 돈으로 주식시장은 활황이었고 각종 공모가 이어지고 있었다. 무슨 회사 인지도 모르고 청약만 하면 따블은 가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러다 테이퍼링과 금리인상이 시작될 무렵부터는 주식시장의 분위기도 좋지 않고 공모주 시장 역시 재미가 없어졌. 옥석을 잘 가려 청약한다면 주식 매매거래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대부분이 커피값이고 LG에너지 솔루션같은 공모주는 자주 없다. 금력이 아주 좋아서 많은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아주 매력적은 아니라고 증권사 객장에서 세 시간 기다리며 결론지었다. 공모주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 한 번쯤 내 모든 에너지를 경험해 보았기에 말할 수도 있는 거지만. 어쨌든 현명한 투자는 아닌  . 그렇다면 어떤 투자가 현명한 걸까? 퇴사도 한 이 마당에..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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