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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화선 Feb 20. 2024

가스라이팅 루틴 "잘 치고 싶다"

백돌이의 꿈


"당신이  진심으로 믿는 것은 항상 일어난다.
그리고 그  안의 믿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가



골프 동호회 활동을 하면 재밌는 일이 많다. 우린 1등보다 꼴찌에게 박수를 더 보낸다. 19홀에서 "오늘의 왕관은 누구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를 응원한다. 아마 속내는 '다음에도 꼴찌 부탁해' 아닐까.




항상 꼴찌를 도맡던 선배는 회원들의 관심과 사랑이 부담스러웠는지 클럽 하우스에서 선전포고한다.  당차게 메시지를 던지고 입장하지만 똑같은 결과지를 들고 돌아왔다. 



골프 인생에 돌도 지나지 않은 선배가 무리한 욕심을 부릴 때마다 측은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오늘도 왕관은 그에게 돌아가겠구나. 



누구든 잘하고 싶고, 좋은 스코어를 기록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왕관은 무겁다. 한 달 동안 온갖 핍박을 견디고 가시 면류관처럼 자신의 오장 육부를 쑤셔댄다. 



왕관을 쓰지  않으려 노력할 때마다 수렁으로 더 깊게 빠져드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왜? 다른 회원들이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견뎌라. 이겨내라. 연습으로 너의 실력을 갈고닦아 보란 듯 왕관을 벗어던지라 하지만 절대 벗는 걸 도와주지 않는다. 



꼴찌에겐 경험이 부족하다. 낯선 상황에 부딪히면 온몸이 경직되고 영락없이 삑살을 낸다. 한 번만 무너지면 몇 홀을 하염없이 무너져 버린다. 응원은 소용없다. 나락으로 빠진 그를 구하려면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들이 몽땅 와야 할 것이다. 







가스라이팅


나는 잘 쳐야 한다 나는 잘 쳐야 한다

되뇌고 기도하며 가스라이팅 주문 외우기



분명 내 뒤라 생각했던 이들이

앞서가는 걸 보면 온 세포가 쭈볏쭈볏



초초함을 누르려 루틴에 들어가지만

더 멀리 치고 더 가까이 붙이고 싶은 맘에

영락없이 삑살을 부른다



한 아름 움켜줘 신사임당을 건네고

어쩌다 처량하게 낱장 율곡을 받는 난



잘 치고 싶다 언젠가는 잘 치겠지







얼마나 혹독한 라운드를 경험해야 잘 치게 될까. 1등 보다 꼴찌를 챙기는 동호회 회원들의 마음을 그는 알까. 왕관을 씌우고 약 올리지만 잘 치길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다.




 골프를 잘 쳐야 된다고 주문을 외운다. 자신에게 가스라이팅은 좋은 명상훈련이라 생각한다. 라운드 전 자신의 마음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해주는 장소를 찾아서 명상하는 건 좋은 루틴이다. 꼴찌를 탈출하기 위한 루틴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도 받아들일텐데.




운동이 끝나고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꼴찌의 왕관은 서럽고 무겁다.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하지 말자. 누구든 못 치던 시절을 보냈다. 내 왕관을 받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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