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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Jan 11. 2024

닭도리탕



얼큰한 닭도리탕 국물이 입 안을 데운다.


지난한 일과를 마친 뒤였다. 우리는 빌딩숲 한 가운데에서 만나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고 저녁을 먹자고 했다. 잔뜩 지친 표정, 축 늘어진 어깨, 고된 하루가 찐득하게 눌러붙은 머리, 오래 걸을 기력도 없이 홀린 듯 골목 어귀 닭도리탕 집으로 들어갔다. 거진 만석이었다. 운좋게 딱 두 자리만 남아있었고, 식당 아주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닭도리탕 2인분을 주방을 향해 크게 외쳤다. 역시 고단했던 하루를 마친 뒤 삼삼오오 닭도리탕을 먹으러 온 사람들이 웃고, 말하고, 먹고 있었다. 모두들 이 순간을 위해 하루를 버텨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뜨겁게 달아오른 냄비가 상 위에 올려진다. 빨갛게 물든 국물이 조금씩 기포를 일으키며 끓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조금씩 꺼내놓는다. 너는 사람에 시달렸고 나는 말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저 잘 살고 싶었을 뿐이던 젊은 우리는 온종일 시달려야 했다. 꿈을 놓치고 생활에 붙잡힌 자들의 숙명이란다. 헛웃음 후 다소간 침묵이 이어진다. 이윽고 나는 소주를 주문했고, 작은 유리잔 속에 알코올을 가득 채운 뒤 차분히 건배하였다. 정신없이 끓어오르던 국물이 약해진 불꽃 탓에 어느덧 잠잠해져 갔다.  

   

뜨겁던 우리의 젊은 날도 차게 식어버릴 날이 오게 될까. 그때의 우리는 적당히 익게 될까, 아니면 죽어가게 될까. 어김없이 맞부딪힐 작은 유리잔의 건배는 무엇을 위하게 될까. 다 살아본 적도 없는 미래가 걱정될 즈음, 얼큰한 닭도리탕 국물을 한술 떠먹었다. 맛이 좋았다.     


정신이 확 드는 맛.

생생한 오늘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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