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 바르샤바 한달살기 마무리, 동물원 나들이, 프라가 산책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육아휴직 후 유럽에서 한달살기를 실행하며, 모 일간지의 취재요청에 응하여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포털사이트 기사를 통해 해당 기사를 읽은 사람들의 댓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블로그에 응원하는 댓글에 익숙했던 나는 예상보다 심한 악플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아이에게 도움될 것 없는 허영이다’, ‘개돼지 노예 주제에 휴직은 무슨, 일이나 해라’, ‘육아휴직 내고 해외여행 가는 건 위법이다. 노동청에 신고하겠다’, ‘허상일 뿐 귀국해서 처절한 현실을 맞봐라’ 익명의 가면을 쓰자, 자유롭고 공격적인 말투가 쏟아져 내렸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 아이들과 유럽에서 한달살기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주는 것인지 처음 알았다. 육아휴직을 내며 해고당할 걱정을 하지 않는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다행이고, 법으로 보장된 조건조차 다른 사람에게 시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지금도 많은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생계와 사회생활이란 틀에 갇혀서 육아는 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리는 게 허다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엄마가 전업주부가 되거나 조부모가 헌신하며 유년기를 보내곤 한다. 육아의 많은 부분이 경제력으로 해결을 할 수 있는 세상에, 재정적인 여유도 없는 우리 가족이 막무가내로 육아휴직을 신청한 게 독특한 케이스가 되었다. 어떤 방식이 옳거나 나머지 방식이 틀리다고 말할 수 없는 지점에서, 아빠가 육아에 전념하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오는 세상을 기대한다. 하지만 아직 세상의 시선은, 나 같은 아빠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면이 분명 존재했다.
한달살기든, 그냥 이동하는 여행이든 숙소를 옮기는 날이면 분주하다. 전날 밤 혹은 당일 아침, 아내는 다시 짐 정리를 하고 아이들 아침 점심을 어떻게 줄지 염두하고 둘째 아이 낮잠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체크아웃-체크인 시간을 조정한다. 무거운 짐을 낑낑 내려놓는 건 내 몫, uber기사를 불러서 최대한 이동시 생기는 피로를 줄이고 새 보금자리와 인사를 나눈다.
그렇게 우리는 바르샤바 Warszawa 마지막 숙소, 비스와 강 동편의 프라가 Praga 지역으로 향했다. 낮잠 자고 일어나서 본격적인 프라가 Praga 구경에 나섰다. 이 동네 꽤나 운치 있었다. 바르샤바 Warszawa 메트로 2호선 종점인데, 오래된 현지인 주거구역의 매력을 갖고 있었다. 우린 우선 지역 박물관과 문화 센터 등을 방문하여 아이들이 누릴만한 프로그램이 일정에 맞는지 확인을 했다. 시간이 아슬아슬하게 우리 체류기간과 엇갈렸다. 엉겁결에 우리가 떠난 직후에 공연할 인형극 관련 방송국 인터뷰에 아이가 참여하더니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메트로 전철역 가까이 쇼핑센터에 가서 아이들 점퍼, 얇은 패딩을 샀다. 남은 여행기간 비라도 오면 추우니까, 그리고 장을 보고 상비약을 챙기러 쇼핑몰과 큰 까르푸를 찾았는데, 이쯤 되니 제법 현지인처럼 능숙하게 쇼핑을 할 수 있었다.
이곳 프라가 Praga에서도 오전에는 놀이터 산책을 나섰다. 집 떠나서 좋은 점은, 매일 아침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 순수하게 그날 하늘, 구름, 바람, 기온을 느끼고 외출을 고민하는 것이다. 새로 도착한 숙소에서 동서남북을 확인하고 오전 오후 햇살의 방향을 인지하면 아이의 유모차 그늘을 어떻게 드려줄지 계산할 수 있다. 그렇게 하루를 오감으로 느끼고 채워 가는 게 좋았다.
프라가 Praga에는 바르샤바 동물원이 가까이에 있었다. 비용이나 아이들의 정서, 행복지수를 생각하면 동물원이 가성비가 최고였다. 서울대공원, 서울랜드, 에버랜드 동물원을 최근 2-3년 새 다 가봤지만, 바르샤바 동물원이 제일 매력적이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진 않지만, 무언가 인공미보단 큰 공원에 두런두런 울타리 짓고 동물들 풀어놓은 느낌이랄까? 실제로 동물들의 스트레스나 노이로제도 제일 적은 느낌이었다. 바르샤바 동물원은 영화 주키퍼스 와이프의 배경인,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숨겨준 바르샤바 동물원-그 실화의 실제 공간이다. 동물원 초입에 하얀 박물관 비슷한 건물과 땅 아래가 보이는 유리커버 등이 있고, 창립자에 대한 길고 긴 설명 안내판이 있으며, 단체로 온 학생들이 설명을 듣고 있었다.
북극곰도 물놀이를 거칠게 하며 유쾌했고, 버펄로 비슷한 동물이나 말 종류 들은 냄새도 많이 났고, 치타는 느긋했고, 라마는 거의 큰아이에게 조련되었고, 사자는 마치 들으라는 듯 크게 포효했다.
그런데 그런 즐거움이 멈춘 건 고릴라, 침팬지를 만나고 서다. 가장 인간과 가까운 종들의, 감정이 읽히는 표정을 보니, 동물원이란 공간이 슬프게 느껴졌다. 고릴라 중 하나는 할리우드 배우 돈 치들을 쏙 빼닮았다. 표정까지도 인간과 거의 흡사했다. 실제로 1950년대까지도 인간 동물원이 있었고 유럽인들은 흑인이나 신대륙에서 데려온 원주민을 전시하고 관람했다. 어쩌면 몇십 년 후엔 지금의 슬픈 동물원도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하겠지
그거 알아? 100년 전엔 동물들을 잡아 와서 도시 안에 우리를 치고 사육하며 구경을 했대. 정말 야만적인 거 아냐?
내 아이들의 유희를 위한 타 동물들의 일률적인 관리와 통제에 대한 생각을 하며, 과연 여기서도 지구 생태계 관점에서 공정을 생각해도 될지 고민하게 된다. 궁극적으론 저들도 결국 저들의 야생이 더 어울릴 것이란 상념에 잠긴다. 결국 일상의 틀을 깨고 나선 여행처럼, 자연스러움을 거스른 동물원도 대가가 남게 마련이라는 뻔한 아쉬움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행복함을 빌려줘서 고맙다 바르샤바 동물원.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하며 많은 기대를 하진 않았다. 긴 여행을 통해 생긴 타성을 깨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아는 것도, 공부한 것도 없이 찾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일단 숙박비, 장바구니 물가가 저렴했고, 외식이나 주문시켜먹기에도 부담이 적었다. 처음에는 무뚝뚝한 줄 알았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전반적으로 서툴고 익숙지 않아서 생긴 오해였을 뿐 낯선 동양인 가족에게 너무나 친절했다. 그리고 보존된 그들만의 정취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때 많이 훼손되고, 오랜 공산주의 체제로 개발이 더뎠다지만, 그 모든 과정에도 끊어지지 않은 그들의 정서적 맥락이 있었다.
문화과학궁전에는 공연하는 극단이 4개, 극장 수는 그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우리 일정과 맞는 극단은 Teatr STUDIO 한 곳뿐이었다. 우리가 문화과학궁전을 자주 찾던 9월 초 Teatr STUDIO 에선 scena tańca studio라는 테마로 춤 공연이 한창이었다. 매년 시즌을 정해 현대무용공연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었다. 입장료도 20zt로 저렴했다. 아내와 나는 번갈아가며 큰아이와 현대무용공연을 즐겼고, 다른 한 명은 둘째아이와 문화과학궁전 앞 광장을 뛰놀았다.
둘째는 까르푸에서 산 경량 패딩을 입기 시작했다. 여름 초입에 시작한 우리의 여행이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서서히 집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문화과학궁전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메트로 역 앞에 있는 태국 음식점에서 저녁거리를 포장해서 귀가했다. 오래간만에 한국 고깃국 맛이 나는 쌀국수를 맛볼 수 있어 좋았다.
식당은 아빠가 주방장, 주문 및 서빙은 서너 개 언어가 모두 유창한 16세 아들이 하는 가족 운영시스템이었다. 흥미롭게도 베트남 사람들이었고, 당연스럽게도 우리를 처음엔 중국인인 줄 알았단다. 그리고 식당 한 켠에는 8살 이 집 딸이 혼자 놀고 책 보고 그렇게 있었다. 대략 사나흘 매일 쌀국수 포장을 위해 방문하다가 같은 또래인 큰아이와 친해진 이 집 딸아이, 식당 앞 대로변, 메트로 역 지붕에서 두 아이가 뛰놀고 우리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렸고, 17개월에 접어든 둘째 아이도 덩달아 따라 놀았다. "영어 할 줄 알아?" 내가 묻자 못한다고 수줍어하더니만, 베트남어, 폴란드어만 잘한다고 말하는데 본인의 말과 달리 영어를 꽤나 잘했다. 이름은 물어도 안 알려주면서, 그 외의 온갖 신변잡기와 학교생활을 술술 말한다. 엄마가 학교 선생님이라고 말하는데, '응? 엄마가 선생님이고, 아빠가 주방장인데, 오빠랑 오후에 가게를 지키고 있다고?' 미심쩍지만 토를 달진 않았다. 한 아이는 매일 오후 아빠와 오빠와 함께 식당을 지키고, 한 아이는 가족들과 여행 와서 공연을 즐기고 음식을 포장해가는 모습이 무언지 모를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포장돼서 나오기까지 10~20분 정도 땀을 뻘뻘 흘리며 함께 까르르 뛰놀았던 두 아이는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졌다. 모두가 같은 유년기를 공유할 순 없지만, 유랑생활 중에 마주치는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드는 아이들을 보게 되면 큰아이가 편견이 생기지 않게 잘 설명해주곤 했다. 다행이라면 큰아이는 선입견 없이 순수했다. 옳고 그름의 지점은 아니더라도, 공평과 공정의 경계에서 다시금 고민을 하게 된다.
바르샤바를 떠나기 전날 오전, 둘째 아이도 공연을 보여주고자 구시가에 어린이 극장 teatr Małego widza를 찾았다. 아내 말로는 아이들의 오감을 만족시켜줄 공연을 보여준다 했다. 공연이 끝나고 구시가 광장에 나오니, 벌써 한 달 전이 되어버린 바르샤바 한달살기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게 되니 그 의미부여에 이상한 감동을 하게 되었다.
광장에서 집시 아이는 구슬픈 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집시 일행들은 여러 관광객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다. 큰아이는 이 광경의 의미를 잘 몰랐기에, 본인도 발레를 추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돈을 받고 싶다고 했다. “옳지 않은 행동이야. 네가 집시들을 조롱한다고 느낄 수 있거든” 어떤 삶이 더 가치 있고, 어떤 유년기가 더 특별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아이들이 낯선 세계에서 마주친 다양한 삶을 보며 한번쯤은 공평과 공정에 대한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그 순간 당장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유리 진열장을 바라보듯 해야 할 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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