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1인실에 입실했지만 간호간병통합병동이 아닌 보호자 상주병동이다. 남편은 나의 상주 보호자가 되어 나와 병실에 함께 입실해서 조무사들이 해 주었던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래도 병동을 옮긴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만나기 위해 휴게실까지 가야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다른 환자들과 방문객들에 휩싸여 끊임없이 보내오는 타인들의 '과한 관심'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남편과 나는 각자 할 일을 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남편은 내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호텔로 가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병원으로 출근하듯 커피와 베이글, 요거트, 과일을 사서 병실로 왔다.
내가 하루 세 번 병원에서 나오는 밥을 먹고 나면 남편은 식판을 식사 카트에 반납하는 큰 역할을 해 주고 있다. 강한 마늘 냄새와 김치 냄새가 역할 수도 있을 텐데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숨을 참으며 병실과 병동에 곽 찬 한국 음식 냄새를 잘 견딘다.
1인실로 옮긴 지 며칠이 지난 주일 새벽, 남편이 병실로 들어오자 간호사 한 명이 뒤따라 와서는 상주 보호자는 병실을 너무 오래 비우면 안 된다며 외출 시간을 4시간 이내로 제한해 달라고 주의를 주었다.
"병원에서 정한 코로나 확산 방지 규정으로 상주 보호자가 4시간 이상 외출하고 병실로 돌아올 땐 병원 2층에 들러서 코로나 검사하고 '음성'결과지를 보여 주셔야 재입실 하실 수 있어요."
"그러면 보호자가 환자와 같은 병실에서 취침해야 되는 건가요?"
"네. 상주 보호자라는 게 그 의미예요."
"아예 외출이 금지된 것도 아니고, 4시간까지는 외출이 가능하다는 건 뭔가요? 4시간 동안은 밖에 다녀도 코로나 감염이 안되고 그 이상은 코로나 감염되고 그런 건가요?"
"규정이 그래요."
규정이 그렇다...
나는 남편에게 아침과 밤 간호사 교대 시간에 잘 맞춰서 들어오면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새벽에 너무 일찍 병원에 오지 말라고 팁을 주었다.
남편은 내 얘기를 다 듣고 나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켜야 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면 지키는 게 맞아, 앞으로 병실에서 잠을 자고 외출은 하루 4시간 이내로 제한해야겠네." 한다.
"나는 이 규칙인지 규정인지 논리가 맞지 않고 이해가 안 돼."
"당신이 이해하고 못하고는 상관없어. 규정으로 이미 정해진 거라면 지키는 게 맞아."
'아, 이 답답이 남편아~ 융통성 있게 좀 하자.'
"그럼 호텔은?"
"짐도 놔둬야 되고 빨래도 해야 하니까 예약한 대로 놔두자. 병원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에 호텔에 가서 운동하고 샤워하고 병원으로 올게."
'하루 이틀 병실에서 자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남편과 알고 지낸 지난 27년 동안 나는 세 번의 입원을 했고 그때마다 남편은 침대 곁에서 나를 보살펴 주었다. 연애 시절엔 일주일 넘게 감지 못한 기름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를 해주었고, 15년 전 어깨 수술로 이틀간 병원에 입원했을 땐 퇴근해서 내가 입원한 병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다음 날 출근하기도 했다.
초저녁에, 나는 병원식으로 남편은 배달앱으로 시킨 비빔밥으로 병실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밥만 먹고 좀 있다가 호텔로 가서 자."
"그 얘기 좀 그만해. 내가 자고 간다고 했잖아."
" 나 지금 Sleepover 하겠다는 어린 남자 친구를 설득해서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여자 친구가 된 거 같아."
내가 뭐라 하든지 말든지, 남편은 소파를 끌어서 침대로 만든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언니가 나 씻을 때 쓰라고 구해다 준 플라스틱 의자를 탁자 삼아 내 아픈 다리를 받치라고 갖다 준 의자는 오토만 삼아 편하게 누워서 영화를 본다.
내가 일부러 다친 건 아니지만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서 장기간 입원하고 있는 내 치다꺼리를 하는 것도 힘들 텐데 '병원 규정'이니까 자겠다고 이불 펴고 누워서 별 거 아닌 듯 즐기고 있는 남편을 보자니 너무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참 애매하네. 오랜만에 같은 방에서 자면서도 '동침'을 못하니."
"에헤이. 아줌마, Behave!"
내가 건넨 농담에 남편이 정색을 한다.
"왜, 부끄러워?"
"쉿, 그만 자. 빠른 회복을 위해서."
복도에 켜 둔 불빛 때문인지 창문에 부딪치는 빗소리 때문인지. 잠이 깨어 뒤척거리다가 자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걸 느꼈는지 눈을 뜨고 나를 본다. 순간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남편도 따라 웃는다.
"왜 웃어?"
"ha ha ha"
"왜?"
"It's Okay. Everything will be all right!"
나의 걱정과 미안한 마음을 어둠 속에서도 읽었는지 다 괜찮을 거라며 나를 위로해 준다.
이 도시의 빗소리는 참 특이하다.
비 내리는 소리는 안 들리고 그 비를 뚫고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 밤새 끊이질 않는다.
비 냄새를 맡고 싶어서 병실의 들창을 열어 봐도 요란한 소리에 눌려서일까 비냄새도 땅냄새도 나질 않는다.
내가 자유롭게 저 복잡한 거리를 활보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다.
병실에서 캠핑? 중인 남편, 매운 것과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나는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남편을 '해산물 알레르기 있는 아기'로 둔갑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