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원한 병원 근처, 한 호텔에서 묵고 있는 남편은 내가 입원한 후 하루 두세 번 나에게 커피를 배달해 주고 있다.
한국의 대부분 카페와 식당이 키오스크 주문만 받다 보니 말로는 '괜찮다'라고 하는데 왜 키오스크 언어 옵션이 '한국어' 밖엔 없는지 투덜거리는 걸 보니, 한글을 읽지 못하는 남편에겐 혼자 음식을 주문하는 것조차 적잖이 스트레스가 되는 모양이다. 그나마 스타벅스는 카운터에서 주문도 받아 주고 직원들이 영어도 잘한다며 항상 스타벅스에서 내가 마실 커피를 사다 준다. 키오스크 화면에 파파고나 구글렌즈 같은 번역기를 사용해 보라 했지만, 뒤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뒷사람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며 커피는 스타벅스, 점심은 샌드위치, 저녁은 버거 같은 영어가 웬만큼이라도 통하고 직접 주문을 받아 주는 카페와 식당 몇 곳을 정해서 그곳만 계속 다니는 눈치다.
세상 물정 모르는 형부를 너무 잘 아는 동생이 집에 가기 전에 내가 필요할 만한 물건들을 살뜰하게 챙겨 모두 병원에 넣어 주었기에 망정이지 회사일 외의 일에는 관심도 없고 하다 못해 혼자 우유 한 병 직접 사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다이소에 가서 뭔가를 사 오라거나 병원 안에서 쓸 수건을 사서 깨끗하게 빨아서 가져오라거나 하는 건 남편 능력 밖의 '수행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퇴직하면 슈퍼마켓에서 식재료 사는 일, 앱으로 음식 주문하는 일, 청소기 돌리는 일, 세탁기와 건조기 사용법, 간단한 요리 등 집안팎에서 혼자 서바이벌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일을 배울 수 있는 '특수학교'를 찾아 입학시켜야 한다며 농담처럼 말해왔는데 '특수학교'를 찾기도 전에 물건 사는 일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마실 물과 gummy bears(젤리)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동안 병원 앞의 편의점 주인과 친해졌다며 그 정도는 잘할 수 있단다. 매일 저녁 나를 만나고 호텔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Kona beer 2캔과 포테이토칩을 사거나 아이스크림을 사서 호텔에서 먹는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을 드나드는 남편은 병원에서 이미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나는 병원 직원들 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에게 '잘생긴 외국 남자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스타벅스 마시는 여자'로 알려졌다.
진작에 알았지만 남편은 한국 사람들 특히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많다. 울 외할머니 (당시 90세)께서도 남편에게 첫눈에 반하셨었는데 남편을 예뻐하시는 울 이모도 며칠 전 내 소식을 듣고 나에게 연락하셔서는 다리를 다친 내 걱정이 아닌 남편 걱정만 늘어놓으셨다.
"우리 폴이 얼마나 놀랬을까? 그 순한 얼굴을 하고 놀래서 우왕 좌왕 했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혼자 호텔에서 많이 불편할 텐데 어쩌니."
'이모, 나 엄청 아팠거든? 수술도 완전 대공사였거든? 조카인 '내'가 있으니까 조카사위도 있는 거지'
"말이 안 통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어."
병원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있는 나 또한 혼자 있는 남편이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나는 병원에서 보살펴 주니까 보호자 없어도 괜찮다고 차라리 싱가포르 집에 가 있으면 어떠냐 하니까 텅 빈 집에서 혼자 있기엔 너무 우울할 것 같다고 내가 있는 병원 근처에 그냥 있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