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살았던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정형외과는 동네 개인 병원이지만 입원실도 있고 규모가 꽤 컸다. 밤에도 멀리서 잘 보이도록 불이 들어오는 '초록 크로스'가 병원 간판 옆에 붙어 있고 건물 앞에는 앰뷸런스도 세워져 있었다.
병원 앞에서파자마 같은 환자복을 입은 남자들이 속살을 드러낸 채 담배를피우고 있는 걸자주 볼 수 있었는데어린 내 눈에그들은 엄마 아빠가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던 '나쁜 아저씨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터진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피부에는 '옥도정기'라 불렀던 소독약이 얼룩져 누르스름하게 남아 있었고, 팔이나 다리가 붕대에 감겨 있거나 깁스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병원 앞에서 환자복 입은 사람과 양복 입은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싸움을 하기도 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병원 입원실은 환하고 깨끗하고 간호사도 예쁘고 꽃도 꽂혀 있던데...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들은 공주 같은 핑크색 잠옷을 입고 피부도 백옥 같던데...
왜 저 병원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들 괴팍하고 지저분한 모습을 한건지.
엄마는 그 병원 환자복을 입고 길에 돌아다니는 환자들을 '나일론 환자'라 불렀다.
그리고 그 병원이 돈을 잘 버는 건 '나일론 환자' 덕분이라고 했다.
다리를 공중에 올린 체 휠체어를 타고 환자복을 입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남편과 병원 밖 큰 길을 산책할 때면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병원이 생각난다. 어린 내 눈에 곱게 보이지 않았던 그 병원 환자들을 생각해 보곤 한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 꼴로 밖에 나와서 돌아다녔을까?'
'몸이 깨지고 부서졌어도 중독된 담배는 피워야 했겠지.'
나는 요즘 길에서 산책하고 있는 같은 병원의 환자들을 마주치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면서 먼저 말을 걸며 안부를 묻는다.
"도로면이 울퉁불퉁하네요. 휠체어 미는 사람 힘들게. 하하"
"에이, 이 정도야 남편분이 충분히 밀지요. 그냥 맘 푹 놓고 앉아 계셔요."
물리치료실에서 몇 번 보았던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부부를 길에서 만났다. 그 쪽도 남편이 다친 아내의 휠체어를 밀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부부는나에게 남편의 근육을 믿고 편하게 앉아 바깥공기 실컷 쐬라며 웃어 주었다.
한 바퀴 휘돌고 나서 1층 로비에서 쉬고 있는데 캐주얼한 옷차림의 말끔한 모습의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사고당하셨어요?"
나는전혀 어떤 경계도하지 않고
"아니요, 넘어졌어요. 비 오는 날, 길에서."
하며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이 남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눈에서 쓸데없이 강한 '총명한 기운'이 느껴진다.
"변호사 필요하세요?"
"네? 누구요?"
"변호사 도움이 필요하신가 해서요."
"아뇨. 변호사가 왜?? 아뇨. 됐어요."
어렸을 때 동네 병원 앞에서 보았던 환자복 입은 사람과 양복 입은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싸우던 모습이 생각났다.
낯선 남자가 자리를 뜨고 나서 남편이 나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몰라. 나한테 사고당한 거냐면서 변호사 필요하냐고. 뭐야. 무섭게."
"흠... 한국에도 있네. Ambulance Chaser!"
"앰뷸런스 체이서? 헉, 그렇네..."
낯선 사람에게 너무 친절하다며 남편이 나에게 쓴소리를 한다.
전신마취 후유증인가. 나 왜 이렇게 '멍해졌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좀 전에 길에서 만났던 부부가우리에게 작은 봉투를 건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