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요.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우주 만물 중 제일 자유로운 존재임을 반증하니까요. 그 어떤 과거로부터도, 운명으로부터도, 인과로부터도…”
-내가 진아를 추모해 물리학을 공부하는 게 당신 눈에 거슬린다면 얼마든지 날 내쳐도 됩니다! 하지만 나만큼, 아니, 친구로서는 나보다 더 진아와 친했던 빛나까지 내치는 건 무슨 저의입니까? 의연한 척, 어른스러운 척은 혼자 다 하는 주제에, 사실은 진아에 대해 떠올리게 하는 우리를 마주하기 싫을 뿐인 게 아닙니까? 겁쟁이! 비겁자! 아무리 입에 현학을 올리며 고고한 척, 통달한 척 해 봤자, 살아 있던 사람을 처음부터 없던 사람으로 치부할 순 없어! 진아는 죽었어! 하지만 우린 살아가야 하잖아!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완벽히 파악된 초기 조건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상계에서 초기 조건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미래를 완벽히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야말로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부유하며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미래보단, 미약한 나비의 날갯짓으로나마 자신의 의지로 개척하고자 하는 미래가 보다 인간적이고 또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진아는 죽었다. 하지만 진아가 남긴 사랑은 죽지 않았다. 지상에 남은 사랑은 직간접적인 에너지원으로서 남은 사람들을 북돋아 준다. 사람들은 사랑을 기억할 때마다 살아나갈 힘을 얻고 이윽고 태고부터의 죽음의 충동을 이겨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