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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Oct 24. 2021

비긴 어게인 (Begin again)

어제 영화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을 다시 봤다.

내겐 이 영화에 얽힌 재밌는 일화가 있다. 비긴 어게인 개봉 당시 청담 씨네시티에서는 닥터드레 헤드셋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이벤트 기획전이 마련되었더랬다. 각자 헤드폰을 쓰고 음악 영화를 본다니.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와 나는 닥터드레 상영관을 예매하고, 영화 시작 전 이 흥분과 기대감을 더욱 고조시킬 요량으로 저녁을 먹으며 소주를 한잔 하기로 했다. 곧 듣게 될 음악들에 대한 기대는 한 잔이 두 잔이 될 때마다 덩달아 함께 고조되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도착한 청담 씨네시티. 이런 영화에 어디 맥주가 빠질 수가 있나. 맥주를 사서 떨리는 마음으로 헤드폰을 썼다. 영화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빠져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만난 친구 집에서 잠을 자다가 친구가 튼 영화 소리에 깨어났다. 시작부터 너무나도 내 취향인 영화를 보며 “우와, 이 영화 제목 뭐야?”라고 물으니, 놀란 얼굴로 친구가 하는 말. 

“이거 비긴 어게인이잖아!”

정말 너무 황당하고 웃겨서 둘 다 한동안 멈출 수 없던 웃음.

도대체 그날의 나는 무엇을 하고자 했나.

목표는 닥터드레관에서 비긴 어게인을 보는 것뿐이었는데. 원하던 곳에서 바라던 영화를 보긴 했으니 소기의 목표는 달성된 듯 보이지만, 영화 내용을 첫 장면부터 모조리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니 명백한 실패였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던 실패로, 나에게서 비긴 어게인이라는 영화가 다른 영화들보다 더욱 특별한 영화로 기억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어제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OST인 ‘lost stars’에 등장하는

“왜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엔 낭비인가요”라는 가사를 보며 생각했다.

영화를 보기 위한 것이라며 마셨던 술과 결국 통째로 잃어버린 영화 내용, 여전히 아쉬운 닥터드레 속 애덤 리바인의 목소리. 그리고 이 모든 걸 함께 추억하며 웃어주는 친구. 이 네 가지는 내 청춘을 대변한다.

청춘이기 때문에 용서되던 의미 없는 날들,

청춘이기 때문에 웃을 수 있던 실패들.

청춘이기 때문에 ‘다음’과 ‘언젠가’라는 단어로 기약할 수 있는 미래들.

돌아갈 수 없는 과거,

몰라서 헤맬 수밖에 없던 청춘의 날들.

청춘이 낭비될 수밖에 없는 이유고,

청춘이 청춘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필연적으로 우리가 청춘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가 나이 듦을 아쉬워하며 청춘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더 이상 실패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잘 해내야 하고,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며, 어느 만큼의 돈을 벌어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세상에 대한 벽을 차갑게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닐까.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해 뛰어가며, 그 외의 모든 과정과 실패를 의미 없다고 여기면서 우리는 청춘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실패를 실패로만 단정하지 않고 그 속에서 여유를 잃지 않는 것,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지는 것,

그 마음만으로 우리는 언제든 청춘일 수 있다.

청춘, 다시 시작하자. (begin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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