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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Oct 12. 2022

혼술은 죄가 없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가장 의견이 분분한 부분은 소주파냐, 맥주파보다는 바로 혼술을 좋아하냐, 아니냐가 아닐까 한다.


유유상종인지라 주변에 술꾼이 꽤 많은 편인데, 내가 혼술을 한다는 걸 알면 심각히 걱정을 하거나 말리는 이들이 상당했다. 그래서 나는 술꾼들과 술을 마실 때마다 자주 ‘혼술’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다. 그리고 오랜 기간 다양한 사람들과 담론을 나눈 뒤 아무리 술을 좋아하더라도 혼술은 싫다는 의견이 더욱 많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받았다.


뭐든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혼삼(혼자 삼겹살)도, 혼술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혼술의 매력에는 이러한 것들이 있다.



1. 오롯이 음식과 술의 맛에 집중할 수 있다.

2. 특히 집에서 마시는 혼술은 완벽하다. 편한 옷차림과 민낯으로 마실 수 있고, 화룡점정은 바로 옆이 침대라는 것. 집에 가는 길에 술이 깰까 걱정할 필요 없고, 택시비도 들지 않는다.

3. 비용 절감. 위에서 언급한 택시비와 더불어 혼술은 안주나 술값도 세이브된다. 그리고 분위기에 휩쓸려 2차, 3차를 가는 일이 없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적어도 세 배 정도는 식비가 많이 드는 셈이니 집에서의 술은 약간의 강제성을 띠고 좋아해야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술꾼이지만 혼술을 싫어하는 이들의 이유는 대략 이러이러했다.


-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은 처량한 것이다!

- 술은 여럿이 마시는 맛이다.(분위기파)

- 혼술까지 좋아하면 정말 중독이 될 것 같다.



혼술 찬성파와 반대파의 의견을 종합해보면서, 나는 술을 좋아하는 이유를


1. 술 그 자체

2. 분위기

3. 취한 기분


이렇게 셋으로 나눌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중 3번의 취한 기분은 웬만큼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사항일 테니, 1번과 2번 중 비중이 큰 것으로 혼술을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가 나뉠 것이다.

 



혼술을 지지하는 입장으로서 조금 더 혼술의 매력을 제시하고 싶은데, 이 매력을 혼술의 레벨을 나눌 수 있는 식당에서의 혼술과 집에서의 혼술로 나눠서 말해보자면,


1. 식당에서의 혼술

 보통 집에 바로 들어가기엔 뭔가 아쉽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만나기엔 힘이 없거나 마땅히 함께 할 사람이 없을 때 간단히 한 잔 하러 식당이나 술집을 찾는다. 평소 내가 부단히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는 것은 이때를 위한 시장조사였다고 할 수 있으며, 그렇게 알게 된 곳은 높은 확률로 나의 단골집이 된다.

그리고 이런 단골집은 내 집같은 편안함, 단골집> 편에 나오듯, 내가 이 동네를 사랑하고 서울을 사랑할 수 있는 가족이자 집이 되어준다. 그리하여 나는 이 단골집을 더욱 자주 가게 되면서 사랑의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2. 집에서의 혼술

내가 애정하는 혼술 전용 술집들마저 북적한 날이거나 금요일 혹은 토요일 밤에는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때를 위하여 좋아하는 술집 분위기로 집을 꾸며두었고, 그 덕에 마음에 쏙 들게 된 나의 방은 자타가 공인하는 역마계의 최고인 내가 집에 조금이나마 애정을 붙일 수 있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술 자체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게 이런 매력들이 성립될 수 있는 디폴트 값이겠으나, 생각해 보라.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와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과자를 씹으며 마시는 맥주 한 잔! 그러다 졸리면 바로 잠들 수 있다니. 아름답지 않은가.




물론 내가 수면장애와 우울증을 앓던 시절, 매일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워 감정을 지우고 잠을 자려고 마신 술은 내게 독이었다. 그로 인해 적정 복용량의 약을 초과해서 먹고 매일 기억을 잃으면서 내 기억력은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니까. 그때의 나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라도 지금의 내가 돌아봤을 땐 힘겹더라도 나는 술을 자제했었어야만 했다.


지금의 나는 당시와 똑같이 혼술을 즐긴다.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잠을 못 이룬다거나 괴롭지는 않다. 좀 더 재미가 없는 건 확실하나, 혼술의 위험은 오늘 내가 마실 술을 나 스스로 선택하냐, 선택하지 못하냐의 차이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은 평소 술에 대한 태도에도 적용이 되는데, 어디서든 주량껏 술을 조절하고 술이 날 마시는 게 아닌 내가 술을 마실 수 있다면, 혼자 술을 마시는 것도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그리고 나는 반대의 경우가 더욱 의미 있으며 꼭 겪어보아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대개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본모습이 드러나는 법이고, 술은 나의 내적 자아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마법의 용액이니까.


건강한 음주문화는 삶을 더욱 윤택하도록 돕는다. 혼술도, 여럿이 함께 마시는 술도.

혼술을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그전에 이 찬반 논쟁은 과연 유효한 것일까. 인종차별 문제나 남녀차별 문제와 같이 사람들에겐 죄가 없다. 그리고 술도 죄가 없다. 그러므로 혼술도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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