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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Feb 24. 2024

고장 난 렌터카

나이60, 미국 한 달 살기 #2

캐리어만 집에 갖다 두고 점심을 먹기 위해 벅헤드 지역에 있는 레녹스 몰(Lenox Square)로 향했다. 조지아주에서 3번째로 큰 쇼핑몰이지만 연말을 지나고 큰 이슈가 없어서인지 좀 썰렁했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덩치 크고 피부부터 옷까지 새까만 무장한 가드가 서너 명씩 눈동자를 굴리고 있어서 썰렁함은 곧 살벌함으로 바뀌었다. 쇼핑몰에서 이런 감정 느끼기 쉽지 않은데.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21년도에 무려 7건의 총격사건이 이 레녹스 몰에서 발생했고 그 이후 무기탐지기, 900대 감시카메라, K-9(대포가 아니라 경찰견)를 배치했다 한다. 사고가 모두 3시 이후에 발생했기 때문에 오후 세시부터는 청소년들은 보호자가 없으면 출입을 못하는 무시무시한 장소를 아무 생각 없이 막 돌아다녔다. 정보가 있었다면 가지 않았을 테지만 아무것도 몰라서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있었다. 사건 이후 더 경비가 강화되었으니 오히려 더 안전한 장소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쓰는 속담 '모르는 게 약' 영어로는 'Ignorance is bliss'.  


명품매장도 있고 주말이라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흑인가족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애틀랜타에서의 첫 식사. 가격이며 맛이며 시장조사할 겸 고를 것이 많은 푸드코트로 갔다. 아들은 치킨, 프라이세트를 난 데리야키치킨과 볶음밥세트를 주문했다. 비행기에서 가운데 낀 좌석에 앉은 탓에 화장실 가지 않으려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았더니 계속 갈증이 나서 콜라를 잔뜩 마셨다.


서민음식이 보통 1인분 12~15달러. 16000원~20000원 정도다. 아들이 여기 물가  비싸다며 매일 징징거리는 게 실감이 났다. 식당에서 먹으면 15%에서 30% 가까운 팁을 지불해야 하고 식대는 훨씬 더 뛴다. 우리나라도 물가가 치솟아 칼국수 한 그릇 가격이 서울에서 9000원을 넘어섰다는 기사를 봤다.  

애틀랜타의 최저시급은 7.25달러로 한국보다 약간 적다. 실제로는 그것보다 많이 받겠지만 말이다.

어디든 고물가로 서민들 살기가 팍팍해졌다.

예전에 5불 쓰듯이 요즘 20불을 써야 한다고 분노의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미국인유튜버도 있더구먼.    

   

가기 전에 공부한 바로는 요즘 한국기업의 공장들이 많이 세워져서 애틀랜타가 주도인 조지아주에서 통용되는 언어 3위가 한국어라 했지만 벅헤드나 미드타운 쪽은 해당지역이 아닌지 한국인이 거의 없어서 시선을 많이 받았다.      

 

식사를 마친 후 Mall을 한 바퀴 돌았다. 시간에 쫓기는 여행객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살만한 것을 찾아보겠지만 언제든 또 올 수 있는 장소라 생각하니 급할 것이 없었다. 문화 답사하듯 하체가 엄청나게 크거나 지극히 현실몸매를 가진  마네킹을 구경하며 신체차이를 실감했다.     


몰에서 나와 마트에 가려고 차를 빼는데 차에서 쉭쉭하는 이상한 잡음이 들렸다.  엔진룸 밑바닥을 막은 플라스틱 판이 떨어져서 땅에 끌리며 나는 소리였다. 예전에 내 차였던 시빅에서도 이런 적이 있었다. 찾아간 정비소에서 그냥 판을 떼어내고 타고 다니면 된다 했었기 때문에 별 일 아니란 걸 알아 당황하진 않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 현상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생겼는지 신기할 뿐이다. 혼다 시빅은 잔고장이 없었으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좀 밀리는 경향이 있었고 새 차인 이 렌터카 역시 브레이크가 밀렸다. 이래서 일본기업이 망하는 건가. 10년 전과 비교해 나아진 것이 없고 똑같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정비소를 찾을 수도 없고 다시 공항에 가서 차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공항까지 거리가 멀지 않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공항 가는 길에 예전에도 이런 경험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들과 둘이 미서부를 여행하며 산호세공항에서 차를 빌렸을 때 이번과 똑같이 렌터카를 빌려 나오자마자 무언가 차에 문제가 생겨 다시 공항으로 돌아갔던, 지금과 완전히 동일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다.

구글맵도 없던 시절 길을 물어보라면 통 묻질 않아서 갈등을 빚었던 20대 초반의 어린 아들과의 여행이었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얼마나 성장했는지. 무엇보다 제 덕에 이렇게 미국까지 와서 살아보는 것 아닌가.

회사에서 월세를 내주니 주거비에 부담이 없어 좋다,     


공항 렌터카 주차장으로 들어서서 설명을 하자 바로 차를 바꾸어주었다.

'차가 고장 났으니 교환해 줘' 이 말만 해도 다 일처리가 되었겠지만 못 알아듣고 무시당하고 한동안 버벅거리다 눈총을 받으며 차를 몰고 나왔겠지. 영어 잘하는 아들덕에 별 걱정 없이 일 처리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고 차도 업그레이드해서 닛산 로그로 바꾸어줬다. SUV를 처음 운전하게 되어서 당황했지만 1987년에 운전면허를 고스톱으로 딴 건 아니니(나만큼 오래된 농담이다) 별 무리 없이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에 이 차로 바꾸어주신 하늘의 뜻을 깨닫게 될 일이 생긴다.


집으로 와서 차 세워두고 근처 홀푸드마켓에 가서 물과 커피, 수선화화분을 하나 사가지고 집에 들어와 가져온 짐을 풀었다. 아들이 사둔 화장지며 수건이며 제자리 찾아 넣어두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빨래도 개켜 넣어두었다. 집에 살게 해 줬으니 방세 내는 마음으로 노동력을 제공해야겠지. 미국에서의 첫날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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