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두 켤레가 전부인, 선물함 없는 생일의 기록
스페인에서 생일을 맞이한 건 처음이었다.
마트에서 산 냉동 초콜릿 케이크를
친구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플라스틱 접시에 조각을 나누고, 다 같이 둘러앉아
햇살이 잘 드는 거실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도 장식된 파티룸을 예약하지 않았고,
사진을 찍자고 먼저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조명이 예쁜 곳을 찾느라 자리를 옮기는 일도 없었다.
그저 각자의 언어로, 각자의 방식으로,
한 사람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주었다.
내 앞에 놓인 작은 선물은 양말 두 켤레였다.
작고 귀여운 오리와 강아지가 그려진 양말.
“귀여운 동물들을 보고 너가 생각 났어.”
그 말 한 마디와 함께 건넨 그 선물은,
값보다 마음이 먼저 전해지는 선물이었다.
순간, 한국의 생일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면
카카오톡 선물하기 목록을 먼저 열어본다.
적당한 가격대,
센스 있어 보이는 브랜드,
내가 평소에 잘 주지 않던 아이템.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그 사람보다는 ‘나의 평판’에 가까웠다.
30,000원에서 50,000원, 많게는 100,000원.
사실 우리의 월급을 생각하면
그건 결코 작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생일이니까’라는 말로
그 부담을 조용히 넘기는 문화.
직접 만나지 않아도 선물을 보내는 것이
관계 유지의 최소 단위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그 안에서 “나는 너를 생각했어”라는 마음보다
“나도 이 정도는 해야겠지”라는 계산이
앞서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그 안에도 진심이 있었다.
다만, 그 진심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쩐지 점점 무거워지고,
관계가 아니라 역할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마트에서 산 케이크도 충분했고,
양말 한 켤레에도 이유가 있었다.
“네가 떠올랐어.”
그 마음 하나로 충분하다는 듯,
그들은 선물을 준비했고,
나는 그 마음을 받아들였다.
진심은 크기나 브랜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 사람을 떠올리는 마음의 온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온도는
대단하지 않기에 오래 남는다.
소박하기에, 진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날 받은 양말은
아직도 내 서랍 안에 고이 있다.
그 양말이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 같이 마트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던 그 순간,
그리고 “너가 떠올라서”라며
양말을 건넨 친구의 얼굴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계산되지 않았기에, 오래간다.
그 마음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서랍 속 양말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