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en verano, 나만 빼고
나는 지금, 휴가 간 회계법인이 저질러놓은 똥을 처리하느라 야근 중이다.
그들은 일주일 전,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곧 여름휴가에 들어갑니다.
인보이스와 세금 관련 업무는 9월 이후에 처리 부탁드릴게요.
Buen verano!”
대충 번역하면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정도다.
문제는, 정말로 그렇게 말만 남긴 채 사라졌다는 거다.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고,
전화를 걸면 벨만 울린다.
auto-reply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Hola, 지금은 여름휴가 중입니다.
8월 28일 이후 다시 연락 주세요.
그전까지는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습니다 :)”
이게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다.
거래처에 메일을 보내면 열 명 중 여덟은 자동응답이다.
어떤 곳은 PDF로 지역 축제 일정을 보내오기도 했다.
메일은 안 보지만,
파티는 빠지지 않겠다는 확고한 메시지.
낮 3시.
플립플랍과 맥주잔이 넘실대는 거리.
나는 탁한 사무실 안에서 엑셀 파일을 열고,
영수증을 정리하고 있다.
모두가 여름의 언어로 이야기할 때,
나만 다른 계절에 있는 기분이다.
처음엔 억울했다.
왜 나만 일하고 있는가.
왜 한국에서 배운 성실은 이곳에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문득,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우리는 왜 쉬는 게 불안할까.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잘 쉴 수 있을까.
스페인 사람들은 일을 놓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시스템이 멈춰도 허둥대지 않고,
부재가 허락되는 사회 안에서
자신의 리듬대로 살아간다.
반면 나는,
메일을 늦게 확인하면 눈치가 보이고,
하루만 알림을 꺼도
‘일 안 하냐’는 질문이 날아올까 봐
늘 존재를 증명하듯 반응하며 살아간다.
이건 단지 내 성격 때문이 아니다.
한국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리듬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 = 좋은 사람’이라는 등식.
‘쉼’은 곧 나태함이라는 감각.
자리에서 잠시 사라지는 것이
경쟁에서 밀리는 일처럼 여겨지는 사회.
그 밑바닥엔 오래된 기억들이 있다.
전쟁 이후의 폐허, 산업화의 질주,
그리고 IMF 외환위기 이후 퍼진 고용 불안.
정규직은 곧 생존이 되었고,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못 돌아온다”는 공포가 사회 전반에 퍼졌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일을 성과가 아니라, 자리 지키기의 수단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래서 지금도,
휴가 중에도 메일을 확인하고,
남들 쉬는 날에도 일을 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누군가 나 없이도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사실보다,
‘나 없어도 된다’는 감각이 더 불편하니까.
스페인은 전혀 다른 궤적을 걸었다.
프랑코 독재의 억압을 지나
민주화와 함께 ‘쉴 권리’를 제도로 정착시켰다.
법정 근무시간, 유급휴가, 퇴근 후 연락 금지.
이 모든 것은 단지 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은 노동 너머에도 존재한다”는 사회적 합의 위에 서 있다.
그래서 auto-reply는
무책임이 아니라 신뢰의 표현이 된다.
누군가의 부재를 견딜 수 있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휴가가 눈치가 아닌 권리가 되고,
쉼은 생산성과 무관하게 존중받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지금, 그 두 세계 사이에 있다.
한국인으로 자라
일을 놓는 것이 늘 불안했던 사람.
그리고 스페인에서,
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틈에 앉아 있다.
그 틈에서 묻게 된다.
나는 왜 쉬는 게 불안할까.
나는 왜 자꾸 일을 놓지 못할까.
나의 시간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일은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활동이다.
하지만 그것이
존재의 전부일 필요는 없다.
‘쉬어도 괜찮다’는 감각.
그건 단지 권리 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
그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그게, 이 여름이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