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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딘가에 자리 잡기 위해

익숙한 질서가 통하지 않는 세계, 그 빈틈에 내가 있었다

by 필로



스페인에 살고 있다고 하면, 흔히 받는 질문들이 있다.

날씨는 어때요? 음식은 입에 맞아요? 거기 사람들은 좀 느긋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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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다.

햇살은 많고, 커피는 싸고, 저녁은 느리고, 사람들은 자주 인사를 건넨다.

사실 이 정도면 대부분의 유럽 생활기가 다루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머무는 이유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이 공간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내가 누구인지 조금 더 분명히 느낄 수 있는 틈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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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정체성이 너무 촘촘히 짜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방식, 싫어하는 이유,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고,

나도 모르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방식 안에 나를 맞춰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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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에게 스페인은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질서가 통하지 않는 세계였다.

그래서 어떤 빈틈이 생겼고,

그 틈 안에서 나는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말이 완벽히 통하지 않아서,

규칙이 다르기 때문에,

자꾸 길을 헤매고 실수를 반복하는 그 자리에

묘하게도 내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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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외국 생활기처럼 쓰고 싶지는 않다.

어디서 무엇을 먹었고, 무엇이 달랐는지를 적는 대신,

그 낯섦 속에서 어떤 생각이 시작되었는지를 따라가보고 싶다.


같은 풍경도, 어떤 날엔 낯설게 다가오고

어떤 순간엔 오래된 질문을 불러오기도 한다.

나는 그 질문을 붙들고 써 내려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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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글에는 스페인이라는 공간이 자주 등장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배경일 뿐이다.


내가 다루게 될 이야기들은

꼭 스페인이라는 장소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세계에서 조금 비껴났을 때,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볼 수 있는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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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에서의 삶을 부정하거나,

스페인의 삶을 이상화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이 둘을 비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둘 사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감각을 기록하고 싶었다.


어딘가에 완벽히 속하지 못하더라도,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계속 선택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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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브런치에 처음으로 글을 쓴다.

익숙한 질서에서 조금 벗어나고,

삶을 비틀어 묻게 된 생각들을 따라가 보려 한다.


앞으로 쓰게 될 이야기들은

돈키호테 같은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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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언어가 어긋나고,

뜻은 분명하지만 자꾸 현실과 충돌하며,

주변으로부터는 오해받고,

스스로는 나름의 이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


나 역시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조금씩 어긋난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 감각에서 이 글들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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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