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문자가 왔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일을 하다 말고 헐레벌떡 현관으로 뛰어 나가 문을 열었다. 사과 박스만 한 크기의 상자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두 팔로 번쩍 들어 집 안으로 들이고 조심스레 테이프를 뜯었다. 상자 안에는 정기적으로 배송되는 사또와 바바의 물품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먹인 지 5년은 되어가는 고정 사료 한 봉지와, 섞어서 먹이는 IBD 처방식 사료 한 봉지, 그리고 헤어볼과 구강 관리를 위한 간식들까지. 여기까진 언제나처럼 늘 비슷한 구성이었다.
노묘의 집사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의 경우에는 ‘편안하고 잔잔한 일상’과 ‘지독하게 늘어나는 미안함’의 합인 것 같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사또바바의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는 간식과 사료를 찾아주려고 안달 나 있지 않다. 오히려 새로운 간식을 먹일 때면, 설사를 하진 않을까, 구토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먼저 앞선다. 작년만 해도 그랬다. 몸에 좋다는 사료를 호기롭게 시도했다가 바바가 일주일 내내 구토를 해서 병원을 들락날락하지 않았나.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결과를 기다리던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사또와 바바에게 안전하다고 확인된 사료와 간식만 무한으로 구매하게 된다.
문득 겁 많은 집사 탓에 노묘의 삶이 지나치게 단조로워진 건 아닌지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익숙한 밥과 익숙한 집, 익숙한 집사까지. 혹시 삶이 너무 무료하진 않을까. 사또바바가 나와 함께 사는 것이 지루하진 않을까. 이런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시큰해진다. 그래서 가끔은 사또와 바바가 단잠에 까무룩 빠져 들어있거나,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이상하게 슬퍼진다. 아주 많이 미안해진다.
그럴 때면 괜히 곤히 자고 있는 고양이들에게 가서 얼굴을 비비고, 안아 들어 올려 장난을 치고, 깨워서 엉덩이를 팡팡 치고, 빗질을 해준다. 장난감을 흔들어 보이며 같이 놀자고 조르기도 한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게으름을 정당화하지 않으려고, 조금이라도 노묘의 삶 속에 작은 즐거움이라도 하나 더 심어주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장난감만은 새로운 것을 걱정하지 않고 사줄 수 있다는 점이다. 휙휙 구부러지며 움직이는 낚싯대부터, 살짝만 쳐도 저 멀리 굴러가는 폼폼이 공, 어떤 걸 좋아할지 몰라서 크기별로 준비한 캣닢 쿠션과 쥐돌이 장난감, 그리고 스크래쳐와 캣터널까지. 사또와 바바에게 여러 장난감을 사주는 중이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사또와 바바는 살면서 벌써 다양한 장난감을 경험해 본 놀이 베테랑들이었다. 그러니 뭐든지 흥미가 영 올라가질 않는 거다. 어떤 장난감이든지 10분 컷이었다. 그나마 흥미를 보인 장난감도 두 번, 세 번째가 되면 눈길도 주질 않았다. 언제나 집사만 진심으로 장난감을 흔들며 놀아보자고 열심이었다.
하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이번 택배 상자에도 새로 장만한 오뎅꼬치 장난감이 세 가지 종류가 들어있었다. 토끼털로 만든 오뎅꼬치와, 스틱 부분이 와이어로 된 오뎅꼬치, 그리고 오뎅 부분이 강아지풀처럼 생긴 장난감이었다. 테스트를 위해서 하나씩 꺼내서 사또와 바바의 반응을 살펴봤다. 첫 번째, 두 번째 장난감은 역시나 모두 실패였다. 그나마 조금은 관심을 보이는 바바와 달리 사또는 아예 무관심 상태였다. 그저 심드렁하게 바닥에 누워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오뎅꼬치를 꺼내든 순간, 사또가 달라졌다. 눈동자가 커지고, 숨소리가 빨라지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오뎅 꼬치를 따라다녔다. 그러더니, 입을 살짝 벌리고 까라까라까- 새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려 7년 만에 듣는 사또의 채터링 소리였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또 반갑고, 소중해서 나는 살짝 울컥하기까지 했다. “아, 나 너무 행복해. 눈물 날 것 같아.” 그 순간 내가 남편에게 눈물이 글썽글썽해져서 했던 말이다.
사또의 채터링은 정말 오랜만이었고, 또 희귀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장난감은 자주 꺼내지 않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아주 특별한 날처럼. 일상에서는 다른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이 장난감은 ‘기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로 남겨두었다. 잊을 만 할 때쯤 꺼내서 열심히 흔들어제끼는 중이다.
집사는, 우리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그게 이상할 만큼 신난다. 나는 사또의 채터링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엄마와 언니에게도 보내주었다. 엄마와 언니는 완전히 힐링했다며 감동을 받아했다.
노묘의 채터링은 집사를 지나치게 행복하게 만든다. 요즘의 나는, 사또와 바바가 매일 조금이라도 즐겁길 바란다. 함께 살아온 날보다, 이제 살아갈 날이 적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그 사실 때문에 더 애틋하고 진심을 다해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의 영원한 아기 고양이, 사또와 바바가 내 곁에서 편안하기를, 사소한 행복이라도 매일 느꼈으면 좋겠다. 나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게 집사의 행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