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랑 나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마치 원숭이들이 서로의 털을 꼼꼼히 살피는 것처럼, 우리는 족집게를 들고 서로의 머리카락을 뒤적이며 흰머리를 찾았다.
“아니, 우리는 나이도 어린데, 왜 이렇게 흰머리가 나는 거야? 엄마도 어릴 때부터 흰머리가 났어?” 엄마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아니, 엄마는 아니었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아빠 쪽이다. 워낙 어릴 적에 돌아가신 탓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단정했다. 만약 아빠가 조금만 더 살아계셨다면 분명 이른 나이에 백발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럼 아빠 때문이네!” 퉁명스럽게 외치곤 다시 언니의 뒤통수를 뒤적이며 흰머리를 열심히 찾았다.
하지만 누굴 탓해봤자 뭘 어쩌겠나. 우리는 그저 거울 속의 흰머리를 들여다보며 나라 잃은 사람처럼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뒷가마 쪽에, 언니는 양쪽 귀와 이마 근처로 흰머리가 가득 보였다. 이제는 뽑아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란 거였다. 꼼꼼히 살펴보지 않아도, 얼굴을 도리도리 하면서 스치듯 보더라도 흰머리가 눈에 띌 정도였다. “이참에 그냥 다 흰머리로 만들어서, 은색 머리 하고 다닐까?” 농담처럼 던진 말에, 언니는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날 바닥에 뽑혀있는 흰머리 몇 가닥이, 마치 우리의 젊음을 뿌리째 뽑아낸 것 같아서 조금은 서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검색을 해보니 스트레스니 영양이니 여러 이유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이유라면, 도대체 왜 사라지질 않을까. 그러니 이건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 이건 그냥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는, 빼박 흰머리였다. 얼마 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새치용 염색약을 구매했다. 엄마의 집에도, 언니의 집에도, 내 집에도 염색약이 두둑이 쌓였다. 한두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염색을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테니까.
혼자 염색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나는 뒤통수에 염색약을 정확히 바르기 위해서 고개를 숙이면서 거울 속에 있는 나를 가자미눈이 되어 째려봤다. 셀프 염색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니. 옷과 바닥에 떨어진 염색약은 잘 지워지지 않았고, 염색을 완료한 머리털은 얼룩덜룩해져 버렸다. 조명이나 햇빛 아래 서 있으면 어딘가는 노랗고, 어딘가는 갈색 희끄무레하고, 어딘가는 새까맣게 보였다.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셋 중에, 깔끔하게 염색한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우와 뭐야. 엄마, 왜 이렇게 염색을 잘해?” 언니는 신기한 듯 엄마의 머리카락을 여기저기 들춰보며 말했다. 엄마는 혼자 염색을 한 지도 벌써 20년은 되었겠다며, 이만큼의 시간을 반복했으면 뭐가 되었든 고수가 되는 거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구나, 우리가 모른 채 엄마가 그 시간 동안 혼자 염색약을 무수히 발랐겠다는 생각이 들자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우리는 그동안 엄마의 흰머리는 잘 들여다본 적도 없었던 거였다.
언젠가 엄마가 혼자 염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엄마는 혼자 검은색 가운도 챙겨 입고, 염색할 때마다 쓴다는 노란 고무통에 약을 부은 후 염색 빗으로 잘 저었다. 그리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왼쪽, 오른쪽으로 얼굴을 돌려가며 꼼꼼히 염색약을 발랐다. “어휴, 거울이 너무 작다.”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손길은 제법 익숙해 보였다. 혹시나 도와줄까 싶어서 엄마를 바라보던 나는, 엄마의 그 손길이 몹시도 재빨라 보여서 슬며시 거실로 돌아갔다.
요즘 언니와 나도 혼자 염색하는 게 꽤 익숙해졌다. 아직 얼룩덜룩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염색약을 가지고 엄마에게 간다. 엄마에게 염색을 해달라며 염색약을 건네주고 방바닥에 철퍼덕 앉는다. 엄마는 바닥에 약이 떨어지지 않게 신문이나 전단지 같은 것을 깔아 두고, 우리에게 가운을 입힌 후 염색약을 세세하게 발라준다. 그러고 우리는 미주알고주알 밀린 이야기를 하고, 함께 티브이 프로그램을 본다. 엄마가 쓱 머리를 빗어주다가 조금이라도 아프게 머리카락을 당기면 언니와 나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꺅 소리를 지르고, 엄마 살살해 주세요라고 장난스럽게 외친다. 엄마는 웃으며 우리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만진다. 딸내미들의 새치를 쓱싹쓱싹 지워준다.
예전에는 엄마가 우리의 머리를 묶어주고, 학교 가기 전에 빗겨주곤 했었다. 이제 엄마는 그 손으로 딸내미들의 흰머리를 덮어주고 있다. 그게 이상하게 느껴지다가도, 든든하기도 하고 그렇다. 거울을 보니, 또 이놈의 새치가 눈치 없이 빠르게 자랐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염색약을 들고 엄마를 찾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