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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미워했던 선생님

by 윤모음

나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앞줄에 앉아있던 아이가 조심스럽게, 그러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말투로 물었다. “… 진짜 아빠가 안 계셔?” 얼굴이 붉어졌다. 눈물도 순식간에 고였다. 나는 두 손을 허벅지 위에 올려두고 주먹을 꼭 쥐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눈물을 삼킨 뒤,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8살, 남들보단 많이 이른 때였다. 아빠가 긴 투병 생활 끝에 우리 가족 곁을 떠난 것은. 나는 작은 몸에 몹시도 컸던 검은색 한복을 입고 장례식장에 서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과 선생님, 부모님들이 차례로 조문을 왔다. 장례식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나를 둘러싼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다들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말하는 듯했다.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아빠 이야기가 나오다가도, 몹시 당황하며 갑자기 다른 주제로 넘어가거나, 횡설수설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떴다. 그때 알았다, 내가 아빠가 없다는 것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 무렵 어른들은 내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을 아빠의 부재와 연결시키려고 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내가 가끔 숙제를 하지 않거나, 반항심에 엄마에게 대드는 것은 아빠가 없기 때문이었다. 동네 길고양이나 강아지를 이뻐하는 것도, 밥을 잘 먹지 않는 것도, 심지어 혼자서 책을 읽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때때로 내게 착한 아이가 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병든 남편을 간호했고, 이제는 어린 자녀들을 혼자 지켜내고 있는 엄마를 안쓰러워했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없는 삶은 남들과는 많이 다른 특징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점차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게 되었다. 저녁 8시까지는 반드시 집에 들어오라고 말하는 엄격한 아빠, 혹은 어두운 저녁에 버스 정류장에 마중을 나오는 친구들의 딸바보 아빠 얘기엔 그저 맞장구를 쳐주었다. 내겐 얘기할만한 경험담은 없지만, TV나 책,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선생님이 교탁 옆에 놓여있던 자신만의 책상에 앉아서, 이런저런 학급 소식을 전하다가 갑자기 내게 아빠가 언제 돌아가신 거냐고 큰 소리로 묻는 것은 명백한 반칙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으니까. 더구다나 선생님은 평소 우리에게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의 질문은 나를 더 당황스럽게 했다. 붉어진 볼, 눈물 고인 얼굴로 나는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지금,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막 깨달은 것처럼.


그날 이후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선생님은 끝내 내게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를 정말 미워했다. 가끔 어찌할 수 없이 교무실에 함께 갈 일이 생기면 핑계를 대고 내 자리로 급히 도망올 정도로.


시간이 지나 그 일은 친구들에게서도, 나에게서도 서서히 희미해졌다. 그리고 어느덧 겨울방학이 되었다. 방학 동안 특별히 가야 할 곳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지냈다. 보일러도 제대로 키지 못해서 집안은 늘 추웠고, 방바닥은 발이 놀랄 정도로 차가워서 양말을 신고 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따뜻한 장판 위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뿐이었다. 여느 때처럼 그러고 있었는데 집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이었다. 그는 별다른 설명 없이 우리 집 근처의 공터에 와있으니 잠시만 나와보라고 말했다. 어쩐지 집 앞에까지 찾아온 어른을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세수만 대충 하고 툴툴대며 공터에 나갔다.


그는 자기 상체만큼 큰 쇼핑백을 들고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쇼핑백을 내게 건넨 후 “겨울방학, 잘 보내”라는 짧은 말만 남기고 뒤돌아 갔다. 집으로 돌아가 쇼핑백을 열어 보니, 하얀색의 두툼한 겨울 패딩이 들어 있었다. 그는 사과를 어떻게 할지 모르는 어른이었다. 그래서 본인이 살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것을 내밀었을 거였다. 그때 나는 그런 선생님의 사과 방식이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났었다. 그가 진심으로 나한테 사과를 하고 싶긴 했을까 의심을 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추울 때 입을 옷이 없었는데 참 다행이란 마음도 들었다.내게는 조금 컸던, 하지만 어느새 몸에 알맞게 되었던, 그 흰색 패딩은 꽤 오랫동안 잘 입고 다녔다.


기억나는 선생님들은 꽤 있지만, 이름을 잊지 않은 건 그 선생님뿐이다. 이상하게 그 이름은, 거의 25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진짜로 좋아했고, 진짜로 나를 아껴주었던 선생님들의 이름은 가물가물한데도 말이다. 내가 그를 정말 미워해서였는지, 아니면 처음으로 누군가를 용서했었기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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