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투리 안 쓴다!”
“… 오빠, 그 말조차 사투리인 거 알아?”
“이기 왜?”
“서울 사람들은 ‘내’라고 안 해. ‘이기’라고도 안 할걸.”
그가 잠깐 멈칫하더니, 민망한 듯 윗잇몸을 잔뜩 드러내며 웃었다. 그 웃음에 전염돼서 슬며시 나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결국 둘이 배꼽을 잡고 눈물까지 흘리며 깔깔 웃어버렸다. 남편은 자신이 사투리를 안 쓴다고 주장하는 대구 출신 사람이다. 그럴 때마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억양을 애매하게 감추며 문장을 내뱉는데, 사용하는 단어들만큼은 숨기질 못한다. 서울말을 흉내 내는 개그를 던지는 건지, 아니면 진짜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다고 믿는 건지 구별이 안 간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내 사투리 안 쓴다.”라고 말할 때마다 서울말에 가까워질 수 있는 몇 가지 꿀팁을 알려주고, 그의 말투를 따라 하면서 같이 웃어버린다.
소개팅 때 그는 표준말을 하려고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 모습이 꽤 귀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연애를 하면서 마음의 문이 서로에게 활짝 열린 이후부터는 그의 생활 사투리를 맘껏 듣고 있다. 어쩐지 나와는 억양도 다르고, 쓰는 단어도 다르다는 게 웃기고 신기하다. 최근 유행하는 추리 예능을 같이 보다가, 긴장감이 도는 장면에서 남편은 “돌았삤다 돌았삤다, 빨랫줄에 널렸다 널렸어”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 신박한 표현은 뭐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가 뜬금없이 웃음이 터졌다. 때로는 그만의 표현 방식이 궁금해져서, 내가 먼저 남편을 붙들고 묻는다. “오빠! 이거는 사투리로 뭐라고 해? 저런 문장은 사투리로 어떻게 말해?” 그러면 남편은 개구장이같은 표정을 짓고 신이 나서 설명한다. 더더욱 자신의 언어를 내 앞에서 뽐낸다.
남편은 성인이 될 때까지 대구에서 토박이로 살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친구들도 대부분 대구 사투리를 쓴다. 남편이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으면, 나는 그게 웬만한 예능보다 재밌다. 얼마 전, 남편의 빈티지숍 매장에 대구 친구가 놀러 왔다. 그는 남편이 소유한 엄청난 물건 수에 놀라고 어이없어했다. “직이네, 이기 다 네꺼가?”라고 묻고는, “네는 진짜 미친 갱이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리듬과 멜로디가 얼마나 경쾌했던가. 대화를 듣고 있으니 재밌다는 내 말에 그 둘은 장난스럽고,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는 사투리가 심하진 않잖아? (한쪽에선 ‘-맞지’ 라며 맞장구쳤다) 우리 정도면 서울 아 같지. (또다시 한쪽에서 ‘-맞지’라고 했다.) 말투도 보드랍지, 보드랍잖아? (또 ‘-맞지’하는 호응이 들렸다.)”
그들의 만담이 웃겨서 또 빵 터졌었다.
당연히 시댁 분들도 모두 사투리를 쓴다. 한창 남편이 다이어트를 하던 때, 아버님은 남편에게 말했다. “네 좀 애빘네.” 누님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네. 뭐든 적당히 해야 안카나. 저녁에 고기 좀 물래?” 대충 눈칫밥으로 알아듣긴 했다. 하지만 남편과 단둘이 있을 때 다시 한번 물어봤다. “애빘다가 정확히 무슨 뜻이야?” 남편은 살이 빠졌다, 야위었다와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해 줬다. 애빘다,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외웠다. 그렇게 모르던 사투리 하나와 또 슬금슬금 친해졌다.
사투리를 쓰는 남편과 붙어있다 보니, 내 억양과 쓰는 단어도 조금씩 바뀐다. “너 말투가 남편 닮아가네. 자꾸 말하다가 ‘아이가, 아이다’ 이렇게 말하네.”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새삼 놀라며 얘기했다. 나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필살기 공격을 맞은 캐릭터처럼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우리는 수도권에 있는데 왜 남편이 서울말을 안 따라 쓰고, 내가 사투리를 따라 하게 되는 거지. 심지어 나는 아나운서와 기자를 꿈꾸던 친구들에 둘러싸인 채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는데 라고 생각했다.
“오빠야, 나 오빠랑 있다 보니까 사투리 쓰게 되나 봐. 우짜지?”
그날 저녁 남편에게 말했다. 그는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집게손가락을 차인표처럼 들어 올리고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쓰는 말은 대구 사투리가 아니란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며, 언뜻 잘못 들으면 연변 사투리 같기도 하다며 놀려댔다. 남편 덕분에 나는 서울말도 아니고, 대구 말도 아닌, 제3의 외계 말투를 구사하게 된 듯하다. 그게 억울해서 씩씩거리다가도, 내 말투를 따라 하는 남편을 보고 참을 수 없이 깔깔 웃게 된다.
우리는 서로의 말투를 듣고 자꾸 웃음이 터진다. 집안일을 서로 잘하자고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집안 경제 상황에 대해 서로 진지하게 얘기하다가도 방어할 틈 없이 터져버린다. 남편은 작은 집안일을 하고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서 “내삐없지?”라며 당당한 포즈로 말한다. 두 주먹을 허리에 대고, 잇몸 미소를 날린다. 그러면 나는 결국 웃음이 새어 나와서, 서울 말을 못쓰는 나의 남편을 꼭 껴안고, 칭찬을 해준다. “아이고, 네, 사장님요, 정말 잘했어요!”
요즘 내 말투가 참 요상하다. 서울말도 진짜 어색해진 거 같다. 이렇게 제3의 외계 말투를 구사하다가, 결국 나는 어떤 말투를 갖게 되려나, 이제는 그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