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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Apr 11. 2021

4장 세워야 하는 이기심

이기심에서 행복을 찾다

얼룩덜룩한 색


‘노력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는 게 뭐가 그리 잘못된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 설명한 이기심을 무너뜨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다시 설명하자면, 지위나 부, 이미지를 거부하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선택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다. 그러나 가지기를 욕망하는 것은 반드시 기대하는 결과와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무너뜨리라고 말하고 싶다. 심지어 당신의 행복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모든 지위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나는 고민의 끝을 ‘삶을 잘못된 방법으로 색칠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우리 사회는 한동안 잘 살기 위한 비결이 무조건 많이 고생하며, 고생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이라 여겨왔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도가 너무 심해졌다. 취업이나 사회적인 가치(몸값)라는 보상을 거머쥐기 위해 미친듯한 경쟁을 시작했고, 곧 자신의 안위 따위는 져버리게 되었다. 이런 모습이 한동안은 고결하게 받아들여질 만큼 말이다. 그만큼 어렸을 적 꿈에 그렸던 알록달록한 색은 잊히고 개인적인 색이 가미되지 않은 노력이 성행하게 되었다. 아마 대다수의 노력은 어두운 색을 띠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삶의 대부분이 그런 노력으로 이뤄져 있다면, 어두운 감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테니 말이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나타난 이유는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는 수많은 열정적 우울증 환자를 양산해냈고, 사람들은 이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었다. ‘이제는 못 하겠어’라며 마치 포기라도 하는 것처럼 동시에 워라밸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워라밸을 추구하는 목소리는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직업을 정한다는 것은 본래 자신이 살고 싶은 방식을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자신의 일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색깔은 알록달록해야 옳다. 하지만 오늘날은 일과 삶을 따로 분리해서 바라봐야 할 만큼 사람들이 일을 바라보는 색깔이 어둡다. 그 색의 이름은 ‘억지로’이다. 아마 억지로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남는 시간이라도 알록달록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이 경쟁 시대의 워라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람들의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어두운 색으로 칠하고도 꿈속의 알록달록한 색을 잊지 못했고, 어두운 색에 알록달록한 색을 덧칠해보기로 했다. 취미를 가져보고, 여행을 가보거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어두운 색에 위에 새로운 색을 칠해봤자 나오는 것은 얼룩덜룩한 색이었다. 결국 어두운 색과 얼룩덜룩한 색을 오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였고, 인간적인 생존을 쫒았던 이기심의 결말은 자신에게도 이기적 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꽤 멀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다시, 이기심


그렇다면 개인적인 이득과 같이 무너뜨려버린 이기심 위에는 무엇을 다시 세워야 할까? 그건 당신 이 세상에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고 염원하는 ‘그 무엇’이다. 표현이 모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비록 모호한 문장이지만 정확히 짚어야 할 곳은 가리키고 있다. 중요한 초점은 바로 당신이다. 세상이 나아지기를 바라되, 유독 나아졌으면 하는 특정한 범위가 어디인지를 생각해보자. 지극히 당신의 입장에서 말이다.     






희열과 고통


세상이 나아지기를 염원하는 것은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한 영역은 고통이다. 과거에 당신이 겪은 불편이나 고통스러운 경험을 떠올려보자. 당시에 그 고통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가? 만약 그렇다면 타인도 똑같이 느끼지 않을까? 분명 지금도, 또 미래에도 당신이 겪은 고통을 똑같이 겪는 사람들이 분명 나타날 것이다. 직접 나서서 당신이 겪었던 고통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거나 줄여버리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당신의 존재를 원하게 된다면, 당신은 기꺼이 그 짐을 짊어질 수 있겠는가? 다른 영역은 희열이다. 시간이 흐르지도 못할 만큼 당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 그 즐거움을 퍼뜨리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또는 간절히 그 즐거움을 바라지만 환경이나 지식이 충분하지 못해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방법이 있을까? 당신의 내면에 분명히 존재할 이 두 영역을 탐구한다면 당신의 삶은 전체적으로 밝아질 것이다. 세상에 당신의 알록달록한 색을 펼치기 때문이다. 진정한 당신을 실현함으로써 어두웠던 당신의 내면은 제 색을 찾아 밝아질 것이고, 당신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도 이전보다 밝아질 것이다. ‘우리’의 세상을 이루는 것은 ‘너’와 ‘나’ 그 둘이다. 당신의 알록달록한 색깔로 인해 세상은 밝고 좋은 곳으로 변할 수 있다.     


 




질문을 곰곰이 고민하며 노트에 써보세요.


Q.1 경쟁으로 얻은 것이 무엇인가?

Q.2 아직도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고통이 무엇인가?

Q.3 그 고통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무엇을 배웠는가?

Q.4 당신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가?

Q.5 무엇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더 즐거워할 수 있을까?  덜 고통스러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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