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란 말은 세상이 여성에게 준 모욕적인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내 친구들 왈, 길에서 누가 ‘아줌마!’하고 부르면 덜컥 겁부터 난단다. 아줌마란 말 안엔 맘충, 자기 관리 못함, 망가진 몸매, 늙음, 수다스러움, 오지랖이 지나치게 넓음, 억척스러움, 성가심, 이기적임, 유난스러움, 운전 못하는 사람, 무시해도 될 사람 같은 의미들이 담겨있어 그 중 어떤 의미를 담아 불렀을지 몰라 걱정부터 된다는 거다.
나도 가장 기분 나쁜 ‘아줌마’소리를 들었던 것이 몇 년 전 접촉 사고가 났을 때니까(아줌마! 운전 똑바로 하고 다녀!), 아줌마란 말은 여자에게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육두문자보다 더 은유적으로 기분 나쁜 말일 것이다.
사실, 남에게 불리우는 아줌마라는 호칭은 나이나 외모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누구든 여자를 무시하고자 마음먹은 순간 결혼 여부나 자녀 여부와 상관없이 여자는 아줌마가 되곤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아줌마란 존재는 주로 양푼에 마구 밥 비벼먹는 사람, 남편 바가지 긁는 사람,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사람, 지 자식만 잘난 줄 알고 나대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는 타인에게 불리우는 ‘아줌마’라는 호칭은 부정할지언정 아줌마라는 정체성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아줌마라는 단어를 다른 사람에게 들을 때는 기분이 나쁘지만 내가 쓸 때는 한없이 친절한 단어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에게 ‘아줌마가 이거 해 줄게요’, ‘아줌마가 이거 도와줄까요?’ 같은 말을 쓸 땐 아줌마라는 단어 안에 약자에 대한 수용, 관대, 환대가 가득 담겨 있다. 어린이들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 아줌마라는 단어로 나를 소개하면 아이들의 얼굴엔 친근감의 미소가 감돈다. 어려운 책 읽고 딱딱한 글쓰기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엄마 같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아줌마’라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아줌마라는 말은 참 사랑스러운 단어였다. 내 머릿속에 있는 아줌마라는 단어는 통통하고 야무진 손 매무새로 순식간에 일을 척척 해내는 여성, 늘 웃음기를 머금고 타인의 이야기를 즐겁게 귀기울여 들어 주는 여성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옛날 텔레비전에서 나온 ‘호호 아줌마’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생각했다. 아줌마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타인 돌봄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면서도 나름대로 즐겁게 세상을 살아가는 아줌마의 다양한 삶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사람들은 아줌마에 대해 더 들을 필요가 있다고. 아줌마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더 불리워져서 자꾸 자꾸 의미가 갱신되게 만들어야겠다고.
뭐, 그런 비장한 마음으로 아줌마의 사회를 연구한 내용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