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도서] 밤새서 읽은 책

태백산맥

by 평범한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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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반공 사상이 절대적이어서 학교에서 북한 사람은 도깨비라는 식으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실제로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이 드신 담임 선생님이 북한 사람은 뿔이 달렸고, 아주 악마 같은 사람이라고 가르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믿으며 두려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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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당연히 북한 사람들이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어린 시절의 교육의 영향으로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는 두려움이 박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두바이 옥류관을 가서 북한 사람과 같은 언어로 이야기를 했을 때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고 신기한 기분을 느꼈고, 김정일과 회담을 하는 장면에서 통역 없이 회담이 진행될 수 있는 모습을 보고 동질감과 함께 이상한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지금과 다르게 정의감이 강하고 잘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저렇게 분명하게 잘못된 것을 옹호하는지, 잘못이 아닌 것을 비난하는지 이해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저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 대해 분노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 집어 든 태백산맥을 읽으며 제 생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전에 읽어서 사실 내용은 거의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읽으면서 왜 이 책이 문제가 되고 박해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진영의 인물들은 무식하고 상식적이지 않게 등장하였고, 공산주의 진영의 인물은 똑똑하고 매력적으로 등장하였으니까요. 물론 그런 내용을 가지고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있고, 내가 나쁘다고 생각한 가치관이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비판적인 입장에서 이해를 하려는 입장이 되었고, 이후에는 정의에 대한 개념, 진리에 대한 개념 등으로 확장시켜 생각을 했으며, 요즘에는 최신 과학을 접하면서 자유 의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생각의 변화의 시작을 따지고 보면 중학생 때 읽은 태백산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책이 카뮈의 이방인이나 샤르트르의 구토같이 써졌다면 그렇게 밤새워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대여점에서 빌려 한 권을 밤새 읽고 다음 권을 빌리고 했었습니다. 작가의 뛰어난 묘사와 치밀한 인물 간의 관계, 그리고 조금씩 나오는 야한 장면은, 사실은 다소 슬프고 잔혹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왕성한 10대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재미가 있었기에 이후 아리랑, 한강을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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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나지 않지만 벌교와 꼬막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별교=꼬막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갖게 만들었고, 꼬막을 이보다 맛있게 표현한 작품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간이 되면 한번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린 시절 충격으로 다가왔던 소설이 지금, 성장하여 모든 내용을 잊고 처음 읽는 것과 다른 상황에서 또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지, 아니면 지금은 큰 감흥이 없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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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조정래 작가의 작품 천년의 약속을 읽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평가가 그러하듯이 태백산맥을 따라가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압도적인 것을 보면 꿈조차 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압도적인 마이클 잭슨의 춤과 노래를 보고 가수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고, 압도적인 태백산맥을 읽고 글은 특별한 사람만 쓸 수 있다는 생각이 오래 자리 잡아 왔습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 별로 재능이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이 생겼고, 그 덕분에 이렇게 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봐주시는 분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생각에 충격과 균열을 일으킬 정도의 파급력은 아닐지라도, 약간의 영향이라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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