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보다는 만화책을 더 좋아하는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 거의 매일 대여점에서 만화를 빌렸던 것 같습니다. 유명한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작품은 물론이고 인기 있지만 조금은 매니악한 "해피", "마스터 키튼", "암즈" 같은 작품도 좋아했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다 보다 보니 대여점 한 귀퉁이에 꽂혀있는 마이너 한 "독신자 기숙사", "묵공" 같은 작품도 좋아했는데, 아키라도 그런 느낌으로 빌려보게 된 만화책이었습니다.
나중에 아키라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만화책으로 볼 때는 다소 징그러울 정도로 사실적인 선이 난무하는 조금 거부감 있는 그림체 였습니다. 그럼에도 박진감 넘치는 연출과 점점 말도 안 되게 커지는 스케일의 줄거리에 빠져서 끝까지 보게 되었던 갓 같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본 정도의 이 작품은 나중에 일본 대중문화 절정기를 상징하는 대단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줄거리는 여러 다른 문서를 찾아보면 알 수 있으니 스포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문화계에서 본 작품이 차지하는 의미와 위치도 여러 문서에서 나오지만, 제가 가장 놀랐던 부분은 지금도 이 퀄리티의 애니메이션 영상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섬세한 오토바이와 폐허가 된 도시 묘사, 역동감 넘치는 움직임 묘사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현재에도 이런 수준의 작화는 예산 문제로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과거 일본 버블 경제 시절에 엄청난 자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네요.
아키라 만화책은 첫 장면부터 충격적입니다. 원자 폭탄이 터진 듯한 대 폭발이 일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몇 권이 지나서 드디어 아키라가 등장할 때 한번 더 같은 폭발이 일어나면서 첫 장면의 이유가 설명이 되게 됩니다. 초능력 같은 비현실적인, 단순한 초능력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비현실적인 초능력을 다루고 있음에도, 작화가 사실적이고 이야기 논리 구조가 딱딱 맞아서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특히 약물 남용에 의해 생기는 초능력과 이를 실험하는 장면 등은 당시의 최신 뇌과학을 반영한 것 같아서 현실감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에 원작의 복잡한 스토리를 다 담기에는 분량에 한계가 있다 보니 다소 단선적인 구성과 부족한 개연성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아쉬운 부분입니다.
주인공인 카네다와 데츠오가 싸우는 장면 역시 인상 깊었습니다. 카네다는 모든 능력이 뛰어나서 폭주족의 리더 격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고, 데츠오는 카네다와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지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2인자 였습니다. 어느 순간 데츠오가 인간을 뛰어넘는 초능력을 가지게 되고, 카네다와 싸우게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능력치로는 서로의 대결이 불가능할 정도의 차이가 있음에도, 주변 상황과 카네다의 기지, 데츠오의 애증의 감정 등이 결합되어 긴박한 대결 구도가 형성됩니다. 드래곤 볼처럼 카네다의 능력이 인플레이션 되지 않고도 긴박한 싸움 구도에 몰입이 되게 할 수 있는 연출은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키라는 작품이 만들어진 1988년에 31년 후인 2019년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점이 아키라에서 그려진 미래와 비슷한 시기입니다. 현재는 아키라에서 그린 미래와는 많이 다른 세상이지만, 과학의 발전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부터 복제양 돌리, 황우석 사태를 거쳐서 유전 공학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고, 현재의 기술은 매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리 문제 때문에 인간에 대한 실험을 금지하고 있어서 그렇지 이미 인간은 창조의 영역에 발을 들인 듯합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크리스퍼 캐스 9라 불리는 유전자 가위로 조작된 인간을 탄생하게 하여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었죠. 스스로 인간이 억제하지 않았다면 아키라와 비슷한 미래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일본 문화의 전성기를 경험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경제가 결국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철학/예술/과학 사조를 보면 항상 의문이 들었습니다. 철학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이 유행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든 예술 분야도 비슷한 유행이 오게 되고, 과학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됩니다. 어떤 분야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보면 항상 전혀 상관없는 분야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전에는 이를 이끄는 선봉장이 철학이었다면, 지금은 경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1, 2차 세계 대전의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실존주의가 등장한 것을 보면 환경이 인간의 생각에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큰 것 같으며, 요즘 이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키라, 공각기동대, 총몽 같은 철학적,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이 일본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 역시 80년대 일본 경제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리고 요새 한류가 점점 뜨고 있는 것 역시 물론 그러한 업적을 이룬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큰 부분을 차지하나,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그만큼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많아져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이끌어가던 일본이 요즘 특별한 상품을 못 만드는 것은 경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구 선생님이 꿈꾸던 문화 강국은 사실상 경제 대국의 꿈과도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대여점에서 아키라를 처음 집어 들었을 때 전혀 제 마음에 드는 그림체가 아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다시 꽂아 놓았을 책을 마침 볼 게 없어서 마지못해 집어 들었지만 명작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주위 사람들이 점점 취향이 고정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음식은 쳐다도 안보는 경우가 많고, 한 번 맛없었던 음식은 다시 먹지를 않습니다. 음악 역시 예전 음악만 듣는 사람도 많습니다. 좋다고 과하게 권하다가는 꼰대를 면치 못하죠. 저 역시 늘 먹던 것을 먹고 늘 듣던 음악을 듣지만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새로운 음식을 먹는다고 하면 항상 찬성하는 편이고, 내 취향이 아닌 음악도 가끔 듣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 기대하지 않은 것에서 뜻밖의 대박을 몇 번 경험해보고 갇혀있으면 많은 즐거움이 사라진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바운더리 내에서도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겠지만, 가끔 너무 좁은 범위에서 회의를 느끼며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괜찮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새로운 것을 해보고,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는 것을 억지로라고 해보기를 추천해봅니다. 정체돼있는 자신의 삶을 바꿔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