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이스
제가 중3 때로 기억합니다. 실력파 여가수 양파가 데뷔를 하여 엄청난 히트를 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고등학생으로 데뷔를 했습니다. 고등학생 데뷔가 무슨 놀라운 일이냐고 요즘은 생각하겠지만, 당시 가요계는 완전 성인의 영역이었습니다. 노래를 나름 잘한다고 자부했던 저이기에 고등학생 가수의 데뷔는 신선한 자극이었으며, "나도 한 번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을 정말 아주 잠시 하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동네에서 노래 좀 하는 정도지 가수가 될 정도가 아니라는 자각이 들고 바로 현타가 왔었죠. 특히 당시 양파는 고등학생임에도 너무 노래를 잘했기에 이러한 비현실적인 생각은 바로 접었습니다. 게다가 외모도...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주위에 이런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고1 시절, 저랑 같은 고등학교, 같은 학년에 연예인으로 곧 데뷔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친구 한 명은 회원증 같은걸 보여주면서 팬클럽에도 가입한다고 하는 등 학교가 시끄러웠는데, 곧 FINe, Killing Liberty라는 듣도보도 못한 오글거리는 뜻을 팀명으로 하는 그룹이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방송실에서는 매일같이 점심시간에 "Blue Rain"을 틀어줬었네요.
이후 핑클이 인기리에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냥 평범했던 제 동년배가 스타가 되는 모습을 보며, 게다가 당시에는 더욱 희귀한 고등학생 신분의 스타를 보며 생각보다 스타는 나와 아주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우후죽순으로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탄생하고 사라져 갔고, 거리감보다는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스캔들이나 좀 안 좋은 소문이 돌아도 나와 비슷한 사람인 이상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앞서는 편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편임에도 특별히 빠지고 덕질하는 가수는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매우 현실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도 특별히 덕질을 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만화책을 그렇게 좋아했지만 몇 번씩 보고 깊이 파는 일은 없으며, 2D 캐릭터에 덕질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고, 아무리 걸그룹을 가깝게 느끼더라도 나와는 관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앨범을 사거나 덕질을 한 적이 없습니다. 무엇을 해도 상당히 라이트 하게 즐기는 편인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 바쁜 생활 속에서 특별히 가요에 많은 관심을 쏟지는 않게 되었지만 간간히 눈에 띄는 그룹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전부 JYP에 걸그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더걸스야 말할 필요도 없이 건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었으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확 눈에 들어오는 수지의 외모를 보고 미쓰에이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두 그룹 모두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완성형이라기에는 약간 부족한 느낌이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트와이스를 보고, 이 정도면 JYP에서 완성형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성형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물론 멤버들의 화려한 외모, 좋은 곡, 실력 등도 크게 작용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많은 곡을 단시간 내에 히트시킨 점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크게 새로운 일이 없을 해외 파견 생활 중이라서 신곡이 나올 때마다 찾아볼 수 있었는데, 거의 1년에 3~4곡이 나오고 모두 히트를 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준비 시간이나 곡을 만드는 기간 등을 고려할 때 불가능한 속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JYP에서 트와이스에 최초로 적용한 시스템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시스템을 주관적이기보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중심으로 절차에 맞춰서 흘러가게 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JYP 조차도 곡을 내고 까이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직책에 상관없이 공정한 평가를 하여 곡을 선정합니다. 그리고 그런 절차에 따라 철저히 분업화된 시스템을 통해 놀라운 속도로 곡 작업 및 준비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기 가수의 큰 수입원인 행사를 최소화하여 멤버들에게는 휴식과 준비 기간을 갖추는 방식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사실 아이돌 업계는 한 그룹이 히트를 치게 되어 10그룹을 키우는 구조가 일반적이고, 운도 크게 작용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술 쪽에 속하기 때문에 완전히 시스템화를 해버리면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러한 업계에 시스템을 처음 갖춘 것이 SM으로 알고 있고, 아이돌을 찍어낸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습니다. SM 그룹을 덜 좋아하는 이유도, 거의 모든 가수들이 창법이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이 가장 큽니다. 그럼에서 시스템화는 수익 구조가 불안정하고, 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돌 업계에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고, SM은 상장 기업으로서 비교적 안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JYP의 이러한 시스템은 이를 좀 더 진보시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스템화가 어려운 아이돌계도 저렇게 잘하는 것을 보면 제가 다니는 회사 역시 획기적인 개선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에 더 흥미롭게 그들의 방식을 지켜보았습니다.
해외에서 코로나로 이동도 불편하게 된 암울한 상황에서 숙소에 처박혀 트와이스 뮤비를 보며 힘을 얻고 홈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럴듯한 이유를 쓰긴 했지만, 사실 그냥 좋아하는 팬이고 오래도록 좋은 활동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